매일신문

[이성환 교수의 세상보기] 한국의 권력층이 버티는 법.

정권이 바뀌었으나, 새 정부를 구성할 장관 후보자들에 대한 인사청문회는 당분간 계속되고 있다. 인사청문회는 행정부의 고위 공직자를 임명하기에 앞서 국회(국민)의 검증을 받도록 하기 위한 것이다. 미국의 제도를 본뜬 것이나 실상은 전혀 다르다. 미국의 경우는 백악관 인사국, FBI, 국세청, 공직자윤리위원회 등을 통해서 사생활을 포함한 230여 개에 달하는 항목에 대해 철저한 사전 조사를 한다. 이 때문에 청문회에서 후보자의 도덕성이 크게 부각되지 않고 정책 중심의 검증이 이루어진다. 한국의 경우는 사전 검증이 부실하기 때문에 청문회는 기초적인 후보자의 도덕성을 중심으로 이뤄지게 된다.

인사청문회는 1787년 미국의 연방헌법 제정과 함께 시작되었다. 연방정부의 주요 공직자에 대한 임명권을 두고 대통령과 상원이 대립했다. 주(state)의 연합체적 성격을 띤 연방정부의 주요 공직자는 각주의 대표로 구성된 상원이 가져야 한다는 논리였다. 그 결과 대통령이 지명을 하고 상원이 인준을 하는 타협이 성립했다. 대통령의 인사권을 의회가 견제하는 구조이다. 우리나라 청문회에서는 부동산 투기, 위장 전입, 세금 탈루, 병역 비리 등 후보자의 '범죄' 경력이 논란의 핵심이 된다. 그런데도 대통령은 그들 '범법자'를 장관 자리에 앉힌다. 미국의 경우 2009년 오바마 대통령이 백악관 최고성과관리책임자(CPO)로 지명한 낸시 킬퍼가 10년 전 미납한 298달러의 세금을 2005년에 이자를 포함해 947달러를 납부한 사실이 청문회에서 밝혀졌다. "그때 깜박했다"는 그의 주장은 먹혀들지 않고 대통령도 사과를 했다.

어쨌든 16대 국회에서 시작된 청문회 제도가 후보자들에 대한 궁금증을 풀어주고 있는 것도 사실이나, 청문회에서는 한국 사회 권력자들의 인생 역정이 드러난다. 청문회에서 그들의 이야기를 들으면 한국 사회 권력자들의 공통적인 삶의 방식과 심리를 읽을 수 있다. 우선 그들은 남의 탓을 아주 잘한다. 자식 공부를 위해 어쩔 수 없이 위장 전입을 했으며, 당시의 관행에 따라 법무사가 다운계약서를 작성했다고 변명한다. 위장 전입이라는 '범죄'를 자식과 법무사 탓으로 돌리고 나는 잘못이 없다고 강변한다. 실제로 그들은 죄의식을 느끼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그들이 청문회를 거쳐 장관으로 임용되면서 버텨나가는 이유이다.

그들의 또 다른 특징은 거짓말을 잘한다는 것이다. "기억에 없다" "그렇지 않다"는 말은 그들의 상투적 표현이다. 병역기피는 단적인 예이다. 한국 사회에서 상류 권력층의 병역 면제율은 일반 서민들의 그것보다 훨씬 높다. 젊은 시절 군대도 못 갈 정도로 허약한 체질을 가졌던 그들이, 어떻게 돈과 권력을 가진 상류층으로 진입했을까. 멀쩡한 신체를 가지고 학력도 있으면서 군대를 안 간 것은 병역을 기피하기 위해 온갖 거짓 수단을 다 동원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럼에도 그들은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그때는 그랬다"고 한다. 머리 좋고 돈이나 권력이 막강한 그들의 거짓말을 당해낼 재간이 없다.

마지막으로 한국 사회의 권력층이 버티는 법은 편 가르기이다. 자기편이라 생각하면 어떠한 경우라도 뭉친다. 청문회에서 하자가 드러나도 자기편이라고 생각하면 무조건 감싼다. 자신이 속한 집단에 비판의 화살을 날리면 배신자라는 낙인이 찍히는 것을 두려워하며, 그 두려움은 상대방의 잘못에 대한 공격으로 이어진다. 그러면 자신들의 잘못은 없어진다. 바람을 피우다 들킨 남편이 반찬투정을 하면서 마누라를 공격하는 꼴이다. 정신분석학에서 이야기하는 가장 낮은 수준의 자기 방어기제이다. 그가 스스로 사임하기 전 여당은 국가 안보를 외치면서 비리 백화점이라는 김병관 국방부 장관 후보자를 내치지 못했다. 오랜 기간 동안 그가 임명을 기다리며 버틸 수 있었던 이유이다.

거짓말쟁이가 주류를 이루는 사회에서는 바르게 사는 이들이 소외감을 느끼고 가치관의 혼란을 겪는다. 이런 사회는 현재에 대한 불만과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 때문에 병들게 된다. 서양에는 "명예와 사욕(私慾)은 한꺼번에 가질 수 없다"는 속담이 있다.

이성환/계명대 교수, 국경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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