푹신한 환자였다. 46세 간암 환자인데 몸무게가 100kg은 족히 될 것 같았다. 간암 환자에게 생기는 복수와 부종이 있기는 했지만, 그녀 말에 의하면 원래가 살집이 있었단다. 살면서 한 번도 선생님처럼 날씬한 적이 없었다고 하면서 털털 웃었다.
3년 동안 간암 투병 생활하면서 죽을 고비를 수십 번 넘겼다. 초등학교 5학년인 쌍둥이 아들이 걱정된다고도 했지만, 고모가 꾸김 없이 잘 키워주고 있어서 안심도 된다고 했다. 그녀를 닮았을 것 같았다. 오른쪽 폐에 암이 전이돼 콜록콜록 기침을 하면서도 늘 "난 괜찮아요"였다. 몸뿐만 아니라 마음까지 구름처럼 푹신한 여인이었다. 그런데 그녀는 뜻밖에 이혼녀였다.
고물상 하는 남편이 치료비로 허덕이는 걸 보고 선뜻 이혼을 결심했다. 의료보호 환자가 되면 거의 무료로 치료할 수가 있기 때문이다. 어떤 여자가 어떻게 그럴 수 있을까? 완치되는 병도 아니고 죽을 병인데. 나 같으면 이혼녀로 죽을 용기가 있을까?
나는 그런 그녀의 넉넉함이 좋았다. 하지만 갑자기 폐에 물이 차서 호흡곤란이 시작되자, 편안해보였던 그녀도 "약간 무섭기는 하네요"하면서 울먹였다. 안정제를 쓰는 대신, "당신, 그동안 인생 참 잘 살았고, 정말 예쁘고 아름다운 여인이라는 걸 나는 알아요"라며 침대 위로 두 팔을 벌려서 안았다. 솜이불마냥 푹신했다.
내가 진실로 부러운 사람은 돈이 많거나, 아이들이 잘되어 있거나, 예쁘고 날씬하고 건강한 사람이 아니다. 그저 어떤 삶이 내게 다가오더라도 잘 받아들이고, 다른 사람하고 비교하지 않고 당당하게 살아내는 사람이다. 경쟁이 끝을 모르고 치열한 세상이다. 내게 주어진 시간도 남들보다 많아야 성공한 인생인 것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내 환자들은 아무도 부러워하지 않는 아픈 겉모습보다 훨씬 훌륭할 수 있다. 나는 이제는 주목받지 못하고 세상이라는 무대 뒤편에서 서서히 꺼져가는 생명에게서 그 누구보다 당당하게 성숙한 인간미를 느낀다.
혹자는 잘된 사람을 부러워하면서 인생의 꿈도 생기고 삶을 개척할 의지도 생긴다고도 하지만, 꼭 그런 것만은 아니었다. 각자의 인생의 향기가 따로 있었다. 그 누구도 부러워하지 말자. 인생의 마지막에는 행복했던 자신의 과거조차도 부러워하지 않는 마음가짐이 필요하다. 그 시간에는 그 시간에 누릴 수 있는 나만의 행복이 따로 있는 것이다.
이렇게 마지막이 온 것도 견딜 수 없을 만큼 아쉬운데, 여러 가지 잣대로 부러워하면 병들어 있는 자신이 너무 불쌍하다. 부러워하지 말자, 그대여! 인생이 아파도 이 세상을 그 누구보다 당당하게 살아야 한다.
김여환 대구의료원 호스피스'완화의료센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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