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시 중구 수창동의 대구예술발전소 별관에서는 개관 준비 문화 행사가 한창이다. 지난해 11월 말부터 2월 24일까지 1부 행사가 끝났고, 3월 8일부터 내달 28일까지 2부 행사가 진행 중이다. 아카이브실인 3층을 제외한 5층 전관과 야외에서 여러 전시 행사가 열리는데 2층에 '만권당'(萬卷堂)이라는 공간이 있다. 요즘 말로 하면 북 카페쯤 될 터이다.
만권당은 고려말 충선왕(1275~1325)이 아들 충숙왕에게 양위한 다음해인 1314년 원나라 수도인 대도(大都'베이징)에 세운 서재다. 고려와 원의 학자가 학문을 연구하고 교류하는 곳이었다. 700년 전, 충선왕이 만든 만권당이 학문 연구와 문화 교류가 목적이었다면 이곳은 책과 공간을 매개로 문화예술인과 시민이 만나는 사랑방 정도로 이해하면 될 듯하다.
널찍한 'ㄱ' 자 공간의 시원함과 북성로 상인들로부터 기증받은 나무 팔레트로 만든 탁자, 벽면 책장에 꽂힌 책이 자유롭게 어우러져 있다. 바깥에서의 팽팽한 삶의 톱니바퀴가 이곳에서는 조금 느슨하게 돌아가는 듯한 여유를 느낄 정도다. 매주 화, 토요일에는 젊은 문화예술인들이 만권강(萬卷講)이라는 강연을 한다. 전문 예술문화 분야 강연과 함께, 각각 30권의 책을 추천하면 만권당이 구입하고, 강연자는 3권을 장서로 기증한다.
이 공간이 소중하게 보이는 것은 다른 이유가 있다. 사실 대구에는 문화예술인이 함께 어울릴 공간이 없다. 과거에는 대구문화예술회관 내의 카페가 어느 정도 이 역할을 했지만, 1990년대 후반 이후는 명맥이 끊겼다. 늘 아쉽던 차에 이 공간을 잘 살리면 적격일 것이라는 생각이다. 이곳은 본관을 리모델링 중이다. 또 10분 거리에 오페라하우스와 전문 콘서트홀로 개관 예정인 시민회관이 있어 만권당을 잘 이용한다면 자연스럽게 문화예술인과 애호가가 직접 만날 수 있는 곳이 될 듯하다.
만권당이 자리 잡으려면 대구시의 노력이 필요하다. 현재 대구예술발전소는 운영 주체를 정하지 못했고, 만권당도 이번 개관 준비 행사의 하나로 꾸며졌을 뿐이다. 행사가 끝나고 나서 어떻게 할 것인지는 아직 결정되지 않았다. 그러나 모처럼 꾸민 괜찮은 공간을 일회성 행사만 치르고 없애는 것은 낭비다. 이를 잘 활용하는 것도 대구 문화예술정책의 중요한 과제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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