텔레비전 방송에서 내가 본, 장애를 이겨낸 분의 사연을 소개하고자 한다.
그는 이십 대 후반에 불의의 사고로 시력을 잃은 뒤 교통사고까지 당한다. 그로 인해 한쪽 손까지 성치 않게 되자 당연히 술과 자살 시도 등 절망에 빠졌지만 결국 삶의 의욕을 되찾으려고 다시 노력하게 된다. 그 암흑의 긴 인생 터널을 지나자 육십이 다 된 즈음에 이분은 수술에 성공하여 기적처럼 시력을 되찾는다. 그 사이 그의 곁을 지키면서 새 가정을 꾸며준, 그의 표현대로 '천사' 같은 아내 얼굴도 볼 수 있게 되었다.
그가 '처음도 감사, 끝도 감사'라는 말로 시작한 강연 방송에 내가 몰입하는 사이 나는 나도 모르게 '하늘의 뜻이 쉽게 생명의 싹을 자르는 것은 아니구나!'라는 안도감을 느끼고 있었다. 지금 소박한 강연 내용을 곱씹어보니, 그때 내가 느낀 안도감 안에는 나처럼 나이 쉰을 두고 흔히 말하는 지천명(知天命)의 의미도 부분적으로 포함되어 있었던 것도 같다.
사람마다 세상을 보는 태도는 각자 다른 현실에 대한 체험과 해석 능력에 따라 같을 수 없을 것이다. 다만 역경을 극복한 이분의 개인적 역사를 반영한 강연에서 내가 읽은 그의 인생 태도는 단순한 감각과 지적 판단 이상의 굴곡 깊은 인생사의 여러 요소들에 의해 좌우된 것처럼 보인다. 그의 인생관의 요약은 강연 끝머리에서 다음처럼 표현되고 있었다. 그는 지성인은 아닐지라도 강연을 마치면서 방청객에게 '세상의 예쁜 것을 많이 보셨으면' 하고 희망하였는데, 바로 이것이 그 나름의 인생관의 표현이라고 생각된다.
요사이 내가 쓰는 글도 역시 내가 현재 세상을 보는 태도에 따라 쓰이기 마련이라서 어떤 방식으로건 나도 지금의 우울한 사회적 분위기 가운데서 희망을 더 표현하고 싶었다고 할 수 있다. 즉 나의 소망은 우리가 때때로 삶에서 절망의 시기가 길더라도 곧 희망의 기운을 예감할 수 있으리라는 것이다.
오늘따라 십 년 넘게 책꽂이 구석에 박혀 있는 대학 시절 교재였던 시집 한 권이 눈에 띈다. 나는 행간에 해석이 빼곡한 셸리의 '서풍에 부치는 시'의 마지막 시행 "겨울이 오면 봄이 멀리 떨어져 있을 수 있을까?"가 펼쳐진 쪽을 읽어본다. 역사를 뜻하는 '춘추'(春秋)가 '봄과 가을'의 순환과 교체를 뜻하는 동양적 입장에서도 이 영국 시인의 시적 예언은 쉽게 공감이 간다.
아파트 놀이터 주변 버드나무들이 지난 계절을 털고 있는 지 오래된 모양이다. 나는 한동안 이 연둣빛 계절의 다리 위를 서성이며 봄바람이 희롱하는 저 실머리를 희망으로 빗어볼 작정이다.
장두현(시인·문학박사 oksanjang@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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