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의 얼굴' 동성로가 변하고 있다.
동성로는 대구의 대표적 거리로서 1990년대까지 패션'의류'액세서리 골목으로 전국적인 명성을 날렸다. 그러나 IMF 구제금융에 이어 대구지하철 방화참사, 글로벌 금융위기 등 숱한 악재가 겹치면서 침체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그러나 최근 들어 상권회복이라고까지는 보기 어렵지만 특성화'차별화를 내세우며 다시 인파가 몰리는 지역으로 변하고 있다. 떠났던 30, 40대의 발길도 이어지고 있다.
◆30, 40대의 귀환
그동안 동성로는 늘 스무 살 안팎이었다. 최신 유행의 집결지였던 이유로 유동인구 대부분이 젊은이들이었다. 그러나 최근 희끗희끗한 머리의 중년 남성들과 아이들을 데리고 나온 30, 40대 주부들의 모습이 눈에 띄게 늘어나고 있다.
사업상 수성구 쪽에서 사람들을 만나다 보니 동성로에 나올 기회가 거의 없었다는 김성수(41) 씨는 "주로 수성구에서 저녁 회식을 했는데 최근 괜찮은 바가 많이 생기면서 이곳에 자주 온다. 비용이 싼데다 젊은 직원들과 함께 즐길 수 있는 공간이다"고 했다.
구매력을 갖춘 30, 40대의 귀환으로 동성로 상권을 이끌던 주력업종과 점포들의 판매 전략도 변하고 있다. 이들을 위한 선술집이나 카페 등이 늘어나는가 하면 '바'(bar) 형태의 술집들도 늘어나고 있다. '동성로 시계'도 빨라졌다. 아동복 가게를 운영하고 있는 김진형 씨는 "예전에는 주 고객이 학생들이라 매장 오픈 시각이 오후 3시였지만 지금은 주부층을 겨냥해 이들이 집안 정리를 하고 나오는 오후 1시쯤부터 문을 열고 있다"고 했다.
또 이국적인 음식에 한국의 맛을 가미시킨 퓨전 음식을 전문으로 하는 식당도 속속 들어서면서 10, 20대는 물론 30, 40대 손님들로부터도 인기를 끌고 있다. 인도요리 전문점, 중국요리를 술안주로 저렴하게 제공하는 중국요리 전문점, 일본식 회전초밥'선술집 등을 쉽게 접할 수 있다. 레스토랑 '이닝'의 주인 김옥주 씨는 "1년 전만 해도 10, 20대가 주요 손님이었다면 올 들어 30, 40대 주부들의 발길이 부쩍 늘고 있다. 과거 동성로에서 보냈던 젊은 날의 추억이 이들의 발길을 모으고 있는 것 같다"고 했다.
◆골목들 '핵분열'
동성로를 동성로답게 했던 것은 갖가지 특화된 골목. 제 색깔을 가진 이들 골목은 동성로를 더욱 매력적인 거리로 만들었다. 이 골목들이 다양화되며 '핵분열'을 거듭하고 있다. 기존 골목에다 여러 가지 색깔을 가미한 골목들이 잇따라 등장하고 있다.
통신'야시'늑대'로데오'분식'민속 골목 등 그동안 이곳을 대표했던 골목들에 추가해 카페'네일'클럽'점집'애견 골목 등이 형성되고 있다. 불과 10여 년 전만 해도 이름을 가진 골목이 10여 개였지만 현재 20여 개로 2배 정도 늘어났다.
'금곡삼계탕'을 중심으로 생겨난 커피 골목은 이제 동성로를 대표하는 골목이 됐다. 최근 세를 급격히 확장해 인근 로데오 골목이나 야시 골목 등 전 지역으로 퍼져가고 있다.
몇 년 전 생긴 대구백화점 본점 맞은 편의 애견 골목도 사랑받는 곳이다. 이곳에 있는 'dog vs cat'은 40여 마리의 개'고양이와 함께 놀 수 있는 카페로 전국적인 관광명소가 되고 있다. 직장인들이 늘면서 1인 전용식당들도 우후죽순 생겨나고 있다. '콤마'를 비롯해 최근 1년 사이에 1인용 테이블을 마련하고 '나 홀로 손님'을 받는 곳이 10여 곳 정도 생겼다. 또 1인 전용식당은 아니지만 1인용 테이블들을 갖춘 음식점들도 생겨나고 있다.
1인용 카페도 하나둘 생겨나고 있다. 통신 골목 인근의 '카페 본' 등은 1인용 테이블을 갖추고 나 홀로 족을 맞고 있다. 기존 카페들은 여럿이 모여 이야기할 수 있는 공간으로 조성돼 있어 혼자 시간을 보내기에는 다소 부담스러웠기 때문이다.
◆뜨는 골목, 지는 골목
동성로를 대표하던 골목들의 명암도 엇갈리고 있다. 통신 골목, 야시 골목, 늑대 골목, 로데오 골목, 분식 골목, 민속 골목 등 그동안 이곳의 터줏대감 역할을 했던 골목들은 침체한 반면 카페 골목, 네일 골목, 클럽 골목, 점집 골목, 애견 골목 등은 떠오르는 골목으로 평가되고 있다.
삼덕119안전센터 뒤편에 10여 년 전부터 서울 '홍대'풍의 카페들이 들어서면서 만들어진 카페 골목은 브런치 카페로서 유명세를 떨치고 있다.
맞은편 경북대병원 방향 주택가 골목은 동성로 정취를 담은 최고의 맛집 상권으로 뜨고 있다. 한'중'일식, 퓨전 등 맛집 대부분은 감칠맛 나는 메뉴를 선보이면서 젊은 층은 물론 중장년층의 입맛을 사로잡고 있다. 즐거운 비명을 지르는 업종도 속속 생겨나고 있다. 네일아트, 카페, 비디오방, 노래방, 클럽 등이다. 10여 년 전부터 클럽들이 하나둘씩 들어서며 형성된 클럽 골목은 대구 클럽 문화의 중심지로 떠올랐다. 현재 클럽 5, 6곳이 성업 중이다. 시간대별로 나눠 음악을 트는 DJ만 30여 명 이상 활동하고 있다. 처음에 소수 마니아만 드나들던 클럽은 이제 대학생들이 막걸릿집 대신 '개강 파티'를 열 정도로 '핫 존'이 되고 있다.
반면 휴대폰, 영 캐주얼의류, 중저가 화장품 브랜드 등은 침체해 있다. 한때 60여 곳이 영업을 했던 통신 골목은 최근 몇 년 사이 그 수가 절반 이하로 떨어졌다. 현장을 확인한 결과, 8곳이 폐점한 상태였다.
사라지는 골목들도 있다. 계명대 무용학과 여학생들이 많이 찾으면서 '야시 골목'으로 불렸던 이 골목은 최근 이름조차 '네일 골목'으로 바뀌었다. 10년 전만 해도 동성로를 이끈 패션의 거리였지만 대형 의류쇼핑몰의 등장, 인터넷 쇼핑몰의 강세 등으로 직격탄을 맞은 것이다. 맞은편 늑대 골목도 사정은 마찬가지. 한때 남성복과 잡화들을 파는 소규모 가게들이 밀집되어 있었지만 지금은 썰렁하기만 하다. 패션에 민감한 남성들의 모습을 자주 볼 수 있었지만 요즘은 많은 가게가 대형 의류쇼핑몰로 옮기면서 예전 같은 활기를 찾아보기 어렵다. 동성로에서 가장 잘 나갔던(?) '로데오 골목'도 예전만 못하다. 아직 젊은이들의 패션과 문화를 한눈에 가늠할 수 있을 만큼 옷가게, 술집, 클럽, 음식점 등이 몰려 있지만 젊은이들의 발걸음은 크게 줄었다. 또 아카데미극장 옆 분식 골목, 호프 골목, 민속 골목은 몇몇 식당들이 명맥만을 유지할 뿐이다.
◆동성로에 문화를 심다
동성로의 변신은 앞으로가 더욱 주목된다. '근대 골목' 등으로 재미(?)를 본 중구청이 동성로의 개발과 발전에 관심을 두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중구청은 2010년 말 동성로 공공디자인 개선 사업을 끝냈다. 대구의 얼굴 역할을 하고 있는 도심 거리, 동성로를 '테마가 있는 걷고 싶은 거리'로 조성하기 위해 추진된 사업이었다. 일단은 성공적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거리의 흉물로 지적돼온 지상의 전선 배전반을 모두 철거해 지하에 묻고, 그 자리에 대왕참나무 등 나무를 심고 벤치와 바닥분수, 야외무대 등을 설치했다. 또 동성로가 100여 년 전 대구 읍성 동쪽을 허물고 만든 도로라는 역사성을 살리기 위해 읍성이 있었던 자리에 장대석을 이어 깔았다.
중구청은 앞으로 동성로에 '문화'를 심을 예정이라고 한다. 동성로 주위에 들어선 국채보상운동기념공원과 도서관, 젊은이 쉼터, 2'18기념공원을 연계해 공연문화 거리를 조성한다는 것이다. 젊은이들만의 거리가 아니다. 과거 동성로를 주름잡았던 화랑과 소극장 등을 유치할 방침이다.
서상돈 중구청 전략경영실장은 "2007년부터 2010년까지 추진한 공공디자인 개선 사업은 동성로의 변화를 성공적으로 가져왔다고 자평하고 있다. 여기다 인근 공원 등을 활용해 문화 공간으로 조성할 수 있도록 역량을 집중할 계획이다"며 "이미 2'18공원 등에는 연간 200여 차례의 공연이 펼쳐지고 있다. 더불어 대구의 역사인 각종 골목을 육성해 시민들과 관광객을 위한 거대한 전시관으로 만들 생각이다"고 했다.
글'사진 최창희기자 cchee@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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