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인터뷰通] 안톤 숄츠

일본이 더 좋다던 서양인들 한국 알면 생각 달라져

안톤 숄츠 씨는 10여 년째 한국에서 살면서 외국인들에게 한국을 알리는 문화사절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회사 업무에서도 협조를 구하는 고객을 클라이언트(client)가 아닌 게스트(guest)로 대한다는 기본 철학을 갖고 있다.
안톤 숄츠 씨는 10여 년째 한국에서 살면서 외국인들에게 한국을 알리는 문화사절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회사 업무에서도 협조를 구하는 고객을 클라이언트(client)가 아닌 게스트(guest)로 대한다는 기본 철학을 갖고 있다.
안톤 숄츠 씨는 전남 영암에서 열리는 포뮬러1 자동차 경주대회, 여수 엑스포, 올해 대구 세계에너지총회 등 국내에서 치러지는 각종 국제이벤트에 컨설턴트로 참여하고 있다.
안톤 숄츠 씨는 전남 영암에서 열리는 포뮬러1 자동차 경주대회, 여수 엑스포, 올해 대구 세계에너지총회 등 국내에서 치러지는 각종 국제이벤트에 컨설턴트로 참여하고 있다.

북해(北海)에서 불어오는 차가운 바람이 매서운 독일의 항구도시 함부르크. 고교 졸업 후 봉사활동과 여행을 통해 인생의 항로를 찾던 벽안의 청년은 어느 날 한국에서 온 스님과 우연히 마주쳤다. 신세계가 열리는 듯했다. 청년은 이내 불교에 심취하게 됐고, 동양사상에 대한 공부를 시작했다. 안톤 숄츠(Anton Scholz'41) 코리아 컨설팅 대표가 '고요한 아침의 나라' 한국과 인연을 맺은 계기였다. "아무래도 전생에 인연이 있었지 않나 싶습니다. 하하하. 이래 봬도 태권도도 검은띠랍니다."

◆고요한 아침의 나라로

숄츠 씨가 한국 땅을 처음 밟은 것은 1994년, 갓 스무 살을 넘겼을 때였다. 서울대 한국어학당에서 한국어를 배우는 한편 참선과 주역'노자 사상에 몰두했다. 동양철학에 대한 관심이 깊어지면서 1년여 간 일본에 건너가 수행(修行)하기도 했다.

"학교에서 철학과 외국어를 가르치셨던 부모님의 영향이 적지않았던 것 같습니다. 아들(5)도 절에 가는 걸 좋아해서 주말이면 가까운 사찰로 가족나들이를 가곤 하지요. 한국에서 유명한 현각 스님도 꽤 친하게 지냈고요. 외국어는 부모님 덕분에 소질이 좀 있는 것 같아요. 모국어인 독일어는 물론 한국어, 영어, 일본어는 소통에 전혀 문제가 없습니다."

광주시내 옛 전남도청 자리에 들어서는 국립아시아문화전당 인근 카페에서 2시간 동안 이어진 인터뷰 중간 중간 그에게 몇 통의 전화가 걸려왔다. 대화는 상대에 따라 영어와 독일어로 이뤄졌다. 그는 마침 생일이라 축하 전화가 많다며 양해를 구했다. 카페의 대표이자 숄츠 씨의 아내인 정유진(40) 씨도 곧 도착했다. 두 사람 역시 한국어와 독일어를 섞어가며 대화를 나눴다. 언어는 그때그때 떠오르는 대로 선택한다고 했다. 인터뷰 내내 그가 외국인이란 사실을 깜빡깜빡할 정도였다.

"아내는 1999년 한국 친구 생일파티에서 만났습니다. 제가 한국어를 빨리 습득한 것은 집사람의 공이 크죠. 2004년에 결혼했는데 장인, 장모님도 흔쾌히 허락해주셨습니다. 다만, 저희 어머니는 저를 자주 못 보게 됐다며 서운해하셨죠."

한국 생활에 어느 정도 적응했을 무렵 숄츠 씨는 독일로 돌아가 함부르크대학에서 한국학을 전공한 뒤 다시 한국을 찾았다. 당시 독일에는 한국학 전공이 개설된 대학이 서너 곳에 불과했다. "지난해 여수엑스포에서 독일관의 업무를 도와주다가 대학 동창을 만났습니다. 하지만, 저처럼 한국에서 사는 친구는 거의 없어요. 대부분 독일에서 한국기업과 관련된 일들을 하고 있지요."

◆한국인보다 더 한국적인

그는 10년째 한국에 완전히 정착해 살고 있다. 2003년 조선대에 교수로 부임하면서부터는 광주가 '제2의 고향'이 됐다. 지방도시에 사는 게 불편한 점은 없느냐고 물었더니 "대구 출장 갈 때를 제외하면 만족스럽다"고 농담으로 되받는다. 확장공사가 진행 중인 88올림픽고속도로의 불편함을 빗댄 것이다. 2012년 교수직을 그만둔 뒤 외국기업들의 한국 업무를 대행해주는 컨설팅회사를 운영하는 그는 세계육상선수권대회에 이어 세계에너지총회(WEC) 관련 일도 하고 있다. 대구 시내 맛집들을 대구 토박이인 기자에게 추천할 수준으로 관심이 많다.

"처음에 광주 내려올 때는 솔직히 걱정도 많았죠. 아내도 서울 사람이어서 광주에는 전혀 연고가 없었거든요. 하지만, 이제는 다른 곳으로 옮길 생각이 전혀 없어요. 물론 서울에서 비즈니스를 한다면 돈은 훨씬 많이 벌 수 있겠지만 빚 없이 사는 것만으로도 만족합니다. 어쩌면 불교 공부를 한 영향이기도 하겠지만, 교통체증에 허비하는 시간에 가족들과 시간을 더 보내는 게 낫지 않을까요?"

전라도의 명물, 홍어는 아직도 입에 맞지 않지만, 그는 한국사람보다 더 한국적이란 소리를 듣는다. 흠잡을 데 없는 한국어 실력과 함께 한국에 대한 깊은 애정 때문이다. 한국음식 가운데 무엇을 제일 좋아하느냐는 질문은 차라리 하지 않는 게 나을 뻔했다.

"2002년 월드컵 때였어요. 한국과 일본을 오가며 취재하던 독일 방송사 직원들이 일본이 더 좋다는 말을 하더군요. 한국사람은 약속을 잘 안 지키고, 예의가 부족하다는 오해였지요. 하지만, 주말에도 제가 함께 다니면서 한국 문화를 소개했더니 나중에 돌아갈 때는 한국이 훨씬 좋다고 하더군요. 한국을 사랑하는 눈을 갖게 해주고, 문화를 연결하는 데 보람을 느낍니다."

◆지속가능한 발전 모색해야

그의 회사는 외국기업들이 한국에서 일하는 데 불편한 점이 없도록 원스톱으로 도와주는 역할을 한다. 고객은 독일뿐 아니라 전 세계에 퍼져 있다. 당연히 굵직굵직한 국제행사가 많을수록 회사가 성장하는 구조다. 하지만, 그는 지방자치단체에서 앞다퉈 대형 프로젝트를 추진하는 것은 신중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대구의 핫 이슈 가운데 하나인 경북도청 이전지 개발도 마찬가지라고 설명했다.

"저는 한국 지방정부가 무엇을 더 추가하려 애쓰기보다 불필요한 지출을 줄이려는 노력이 더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치밀한 계획 없는 프로젝트는 결국 시민 부담만 키우기 마련이죠. 랜드마크 건축물을 짓는 것은 돈으로 밀어붙일 수 있지만, 주민들의 관심과 애정은 돈으로 구할 수 없지 않겠습니까? 독일뿐 아니라 선진국에도 비슷한 예가 있지만 정말 시민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에 대한 진지한 고민이 앞서야 합니다. 한국이 지속가능한 성장을 위해서 롱텀 플래닝(long term planning)을 세우길 바랍니다."

글'사진 이상헌기자 davai@msnet.co.kr

※안톤 숄츠는=1972년 독일 북부의 함부르크에서 태어났다. 함부르크대학에서 한국학과 비교종교학, 일본 오사카대학에서 일본학을 전공했으며 2003년부터 8년간 조선대에서 독일어와 국제커뮤니케이션을 강의했다. 광주문화재단 정책자문위원 등을 지냈으며, 지난해부터 매일신문을 비롯한 한국지방신문협회 소속사의 공동 칼럼인 '춘추칼럼'의 필진으로 활약하고 있다. 192㎝의 장신으로 취미는 여행과 오토바이 라이딩이다. 대부분의 아시아 국가를 포함, 40여 개 국가를 돌아봤으며 요즘 회사업무가 늘어나면서 여행을 자주 못 가는 게 아쉽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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