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종교칼럼] 8월의 크리스마스

"내 기억 속의 무수한 사진처럼 사랑도 언젠가는 추억으로 그친다는 걸 난 알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당신만은 추억이 되질 않았습니다. 사랑을 간직한 채 떠날 수 있게 해준 당신께 고맙단 말을 남깁니다."

영화 '8월의 크리스마스'에 나오는 대사다. '8월의 크리스마스'라는 제목의 의미는, 여름처럼 성장해야 할 젊은 주인공이 크리스마스가 있는 겨울에 죽음을 앞두고 있음을 뜻한다고 한다. 이렇게 한창 성장해야 할 나이에 죽음을 맞이하는 사람들이 있다. 제가 아는 그 아이도 그런 사람들 중의 하나였다.

'근이영양증'(Muscular dystrophy'筋異營養症). 글자 그대로 근육에 공급되는 영양이 서서히 중단되는 것, 그래서 결국엔 호흡근도 위축돼 죽어가는 병이다.

'완엽'이란 아이가 이 병으로 재활원에서 스물한 살이라는 아주 어린 나이에 죽음을 맞이했다. 그 아이의 고통은 그 나이에 받아들이기엔 너무나 힘겨운 것이었다. 죽음을 미리 겪고 있는 사람의 고통, 그것이었다. 그 아이가 자신의 죽음을 맞이하는 과정 속에서 어떤 감정의 변화가 일어나고, 무서운 풍랑이 몰아치며 그를 괴롭혔는지 짐작만 할 뿐이다. 그럼에도, 자신의 생명을 살아있는 동안 열심히 간직해야 함을 느끼게 되는 그 감정의 변화들을 누가 상상이나 할 수 있었겠는가? 볼 때마다 가슴이 시린 느낌을 주는 아이였다.

그 아이는 예정된 생의 운명처럼 고요하게 숨을 멈췄다. 그동안 자신을 보살펴준 재활원 선생들에게 일일이 마지막 인사를 하고, 편안한 얼굴로 지상의 삶을 마감했다. 그 아이의 고요하고 편안한 얼굴은 남아있는 우리에게 크고 귀한 선물이 됐다. 아픈 투정을 제대로 받아주지 못해 미안했던 마음과, 더 많은 시간을 함께 있어주지 못해 아쉬웠던 마음을 모두 용서해주는 시간이 됐다. 이제는 고통이 없는 곳에서 참 행복을 누릴 것이라 믿을 수 있게 해주는 마지막이었다.

31일은 예수님의 부활 대축일이다. 'Resurrection', 다시 산다는 의미의 이 말은 재활이란 말 속에도 그대로 들어 있다. 그래서 재활원에서 꿈꾸는 일도 다시 활력을 얻는 일이다. '완엽'이란 아이를 통해서, 그 아이가 매일 매일 그렇게 살아가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고, 나 또한 그렇게 살아야 할 것을 배울 수 있었다. 그 아이도 나의 삶 속에서 훌륭한 스승 중의 하나였다.

매일 매일의 삶이 사실은 부활이다. 다시 살아내는 일을 시작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일의 성공 여부는 아마도 우리 삶의 마지막 시간에 판가름날 것이다. 재활원의 그 아이처럼 남아있는 사람들에게 사랑과 평화, 화해와 용서의 마음을 전해주고 떠나게 된다면, 훌륭하게 그 일을 완수한 셈이 될 것이다.

김상조(대건 안드레아) 신부, 구미직업재활센터 시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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