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사설] 아니함만 못하게 된 청와대 사과

청와대가 인사 실패와 관련해 어설픈 사과를 했다가 오히려 여론의 역풍을 맞았다. 허태열 청와대 비서실장은 지난달 30일 김행 대변인이 대독한 사과문을 통해 "국민에 심려를 끼친 데 대해 인사위원장으로서 매우 송구스럽게 생각한다"며 "앞으로 인사 검증 체계를 강화해 만전을 기하겠다"고 밝혔다. 애초 사과는 없다던 입장에서 물러난 것이지만 형식과 내용이 크게 미흡해 비판을 불러일으켰다.

대국민 사과의 형식을 고려한다면 박근혜 대통령이 나서야 하나 대통령의 부담을 덜어주려고 허 실장이 대신 총대를 짊어진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허 실장 대신 김 대변인이 사과문을 대독하게 함으로써 그렇지 않아도 어색한 모양새가 더 이상하게 돼 버렸다. 사과문도 두 문장에 지나지 않았고 읽는 데 17초밖에 걸리지 않았다. 국민에 대한 예의가 아니며 사과의 진정성도 의심받을 수밖에 없다.

인사 실패 책임자 문책이나 검증 강화 대책 없이 앞으로 잘할 테니 믿어달라는 것은 제대로 된 사과라 할 수 없다. 사과하는 시점도 뉴스 주목도가 떨어지는 토요일 오전에 어물쩍 넘어가려는 듯 행해 적절치 않았다. 사과 안 하고 넘어가자니 찜찜하고 하긴 해야 할 것 같아 마지못해 한 사과로밖에 비치지 않는다. 결과적으로 아니함만 못하며 국민의 부아만 돋운 꼴이 되고 말았다.

인사 실패는 박 대통령의 '나 홀로 인사' 방식이 개선되고 청와대 비서진이 환골탈태해 제 역할을 다해야 되풀이되지 않는다. 그런 점에서 청와대의 사과 방식은 국민과의 소통에 소홀한 행태를 답습했을 뿐 아니라 대통령의 의중만 살피는 청와대 비서진의 한계를 역설적으로 재확인시켰다. 대통령과 국민이 소통할 수 있도록 청와대 조직이 전근대적인 운영 방식에서 벗어나 민주적 원리로 작동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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