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한준희의 교육 느낌표] 명문대 진학이 길이다?

나는 25년 동안 경주마처럼 길고 긴 트랙을 질주해왔다. 우수한 경주마로, 함께 트랙을 질주하는 무수한 친구들을 제치고 넘어뜨린 것을 기뻐하면서. 나를 앞질러 달려가는 친구들 때문에 불안해하면서. 그렇게 소위 '명문대 입학'이라는 첫 관문을 통과했다. 그런데 이상하다. 더 거세게 나를 채찍질해봐도 다리 힘이 빠지고 심장이 뛰지 않는다.(김예슬의 '김예슬 선언-나는 대학을 그만둔다, 아니 거부한다' 중에서)

'초등 4학년부터 시작해야 SKY간다' '명문대가 좋아하는 포트폴리오는 따로 있다' '명문대 가는 중학생 공부 비법' '명문대 포트폴리오' '주말활동이 명문대를 결정한다' '명문대 합격생 100인의 공부 비결'…. 최근에 나온 명문대 진학 관련 책이다.

'우정 파괴' 광고로 비판의 대상이 되었던 사교육 업체의 입시설명회는 대성황을 이뤘다. 대한민국에서 이러한 풍경은 아주 특별한 풍경이 아니라 일상적인 풍경이다. 학교 교육의 틀 안에서조차 이러한 풍경은 일상이다. 결국 우리나라의 교육 문제란 실상 '대입 문제'다.

"조금만 참아라. 대학생이 되면 연애도 하고 친구들하고 마음대로 놀아도 되잖아"라고 어른들은 지속적으로 강조한다. 하지만 대학생, 그것도 명문대생이 된다 해도 결코 그런 시간이 온전하게 다가오지 않는다. 학점을 잘 받기 위해, 좁은 취업 문을 통과하기 위해 또 경쟁해야 한다. 고3을 겨우 버텨낸다 해도 더 지독한 경쟁이 기다리고 있는 셈이다.

고등학생들을 대상으로 의미 있는 토론 시간을 가졌다. 주제는 '명문대 진학은 성공을 위해 반드시 필요하다'였다. 현장에서 토론 과정을 흥미롭게 지켜보았다. 찬반으로 나누어 토론을 진행했는데 지도교사는 찬성보다 반대하는 학생들의 주장이 우위에 있을 것이라 예상하고 토론 경험이 많은 학생들을 찬성 측에 배치했다.

토론은 아주 뜨겁게 진행되었다. 그런데 예상하지 못한 현상이 나타났다. 토론이 진행될수록 오히려 반대 측의 주장이 힘을 잃기 시작한 것이다. 아이들을 둘러싸고 있는 현실의 힘은 아주 강했다. 승패를 결정하는 토론은 아니었지만 결국 찬성 측의 완승과 같은 분위기로 토론이 끝났다. 교사조차도 예상하지 못한 현상에 당황했다.

하지만 아이들의 진실은 토론 과정에 나타난 마음과는 달랐다. 토론이 끝난 다음, 긴장했던 마음도 풀 겸 자유롭게 자신의 마음을 표현하게 했다. '경쟁이 너무 힘들다' '부모님들의 기대에 어깨가 너무 무겁다' '기대에 부응하지 못해 부모님께 너무 죄송하다'는 말을 하면서 교실은 결국 울음바다로 변했고, '사회적인 구조가 명문대 진학을 하지 않더라도 행복을 보장하는 방향으로 변했으면 좋겠다'는 말이 뒤이어 나왔다.

'그러면 왜 공식적인 토론에서는 그런 주장을 하지 않았느냐'는 질문에 '그래 봤자 변하지 않으니까요. 그게 현실이니까요'라면서 울음을 삼켰다. 아이들도 울고, 교사도 울었다. 이런 아이들의 속마음은 피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피해서도 안 된다. 아이들이 현실을 인정한다고 해서 그 현실에 동의한 것은 결코 아니다. 아이들은 어른보다 먼저 그들을 억압하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를 찾아낸다.

접속의 방법은 하나다. 교육 정책을 이끌고 있는 사람들이 변화하는 시대를 먼저 배워야 한다. 교육은 미래를 위한 투자다. 내가 그렇게 살았으니 너희들도 그렇게 하라고 강요해서는 안 된다. 아이들은 다른 시대를 살아야 할 주인공이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해서 무조건 경쟁은 배제해야 한다는 주장도 의미가 없다. 오히려 누가, 언제, 어떻게, 무엇을 위해 경쟁을 하느냐는 본질적인 질문을 던져야 한다. 그것이 2013년 현재의 교육 풍경이 우리에게 던지는 질문이다.

한준희 대구시교육청 장학사

최신 기사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