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올바른 韓·日역사 가르치기. 교사들의 7년 노력 있었다

전교조 대구지부·히로시마현 교조 두 나라서 '공통 역사교대' 펴내

한일공통역사교재 제작팀을 만들어
한일공통역사교재 제작팀을 만들어 '조선통신사'와 '한국과 일본, 그 사이의 역사'를 펴낸 대구과 히로시마의 역사 교사들. 한일공통역사교재 제작팀 제공
일본 히로시마 교사들과 함께 역사 교과서 만들기에 참여한 장대수(대구 시지고) 교사가 양국에서 출판된 역사 교과서
일본 히로시마 교사들과 함께 역사 교과서 만들기에 참여한 장대수(대구 시지고) 교사가 양국에서 출판된 역사 교과서 '한국과 일본, 그 사이의 역사'와 '배움으로 이어가는 일본과 한국의 근현대사'를 보여주며 웃음짓고 있다. 채정민기자 cwolf@msnet.co.kr

최근 일본 정부가 독도 영유권 주장을 담은 고교 사회 교과서 검정안을 통과시키면서 한국과 일본 사이에 다시 냉기류가 흐르고 있다. 잊을 만하면 반복되는 일본의 역사 왜곡은 양국민들 간 감정의 골을 더욱 깊게 만들고 있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한국과 일본의 초'중'고교 역사 교사들이 함께 역사 교과서를 펴내 화제다. 전국교직원노동조합 대구지부와 일본 히로시마현교직원조합 소속 역사 교사들이 모인 한일공통역사교재 제작팀이 공통된 역사 인식을 투영한 교과서를 만들자는 목표 아래 '한국과 일본, 그 사이의 역사'(일본어판: 배움으로 이어가는 일본과 한국의 근현대사)를 펴냈다. 이 작업에 참여한 시지고 장대수 교사를 만나 책을 펴내기까지의 과정과 어떤 내용을 책에 담았는지 들어봤다.

◆7년여 간 함께한 여정, 끝을 맺다

"이 책을 통해 일본 학생들과 소통하는 기회를 갖게 된 것에 의미를 두고 싶습니다. 일본 선생님들도 우리 마음과 같다고 하더군요."

장 교사는 큰 짐을 내려 놓은 기분이라고 했다. 2001년 대구와 히로시마 역사 교사들이 공통의 역사 인식에 기초한 교과서를 만들어 보자고 의기 투합한 이후 두 가지 작업을 모두 끝냈기 때문이다. 대구에선 장 교사 외에 강태원(호산고), 박재홍(성광고), 빈수민'윤민근(이상 매천고), 이은홍(명덕초교) 교사와 최근 퇴임한 조윤화 전 대건중 교사가 이 작업에 참여했다.

첫 번째 작업의 결과물은 2005년 출판한 '조선통신사'. 2006년부터 다시 작업을 시작, 지난해 말 '한국과 일본, 그 사이의 역사'를 내놓은 데 이어 지난달 말에는 이 책의 일본어판인 '배움으로 이어가는 일본과 한국의 근현대사'를 선보이기에 이르렀다.

"양쪽의 시각 차이가 큰 근현대사를 바로 쓰긴 힘드니 평화로웠던 시기에 대한 정리 작업을 먼저 하면서 호흡을 맞춰 보자고 시작한 것이 '조선통신사'였죠. 그래도 힘든 게 한 두가지가 아니었어요. 현직 교사들이다 보니 시간은 모자라고 자주 만나 의견을 나눌 여건이 안돼 작업 속도도 더뎠고요. '조선통신사'를 펴낸 뒤 그만하자는 이야기까지 나왔습니다."

하지만 이들은 초심을 되새기며 두 번째 작업을 시작했다. 여름방학 때는 히로시마 교사들이 대구를 찾았고, 겨울방학 때면 대구 교사들이 히로시마를 찾아 2박 3일씩 모임을 가졌다. 자주 모일 수 없다 보니 회의를 한 번 열면 10시간을 훌쩍 넘기기 일쑤였다.

"도시락을 먹어 가며 의견을 나누고 원고를 검토하다 보면 어느새 돌아가야 할 시간이 되곤 했죠. 돌이켜 보니 양쪽 교사들 모두 대구와 히로시마 시내 관광 한 번 제대로 해보질 못했네요. 그래도 책이 나왔으니 기쁘고 홀가분합니다."

과거를 회피하거나 왜곡하지 않고 제대로 바라보며 성찰하는 것은 한국과 일본이 평화로운 관계를 지속해나가기 위해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할 과정. 장 교사는 '한국과 일본, 그 사이의 역사'가 그 과정을 밟는 데 작은 디딤돌이 되길 기대하고 있다.

"격론 끝에 독도 문제가 빠진 점은 아쉽지만 다양한 역사적 논쟁거리들을 담았어요. 두 나라 청소년들이 서로 같은 내용의 책을 읽으며 더 나은 미래를 함께 가꿔 나가려는 노력을 하길 바랍니다."

◆'한국과 일본, 그 사이의 역사', 무엇을 담았나

이 책에서 사용하는 용어들은 두 나라 교사들의 의견을 모은 결과다. 가령 한국 교사들이 자연스레 쓰는 '친일파'라는 용어를 두고 일본 교사들이 자국 청소년들은 단순히 '일본과 친하다'는 의미로 받아들여 왜 그 같은 행동들이 나쁜 것인지 이해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지적했다. 결국 혼란을 주지 않기 위해 '친일반민족행위자'라는 용어를 쓰기로 합의했다.

이 책이 다루는 시기는 개항기부터 1945년 이후 현대까지다. 일본이 미국의 강요로 문호를 개방하고 불평등조약을 맺은 것과 비슷한 방식으로 조선에 개항을 요구한 시기를 다룬 '개항과 근대화'를 비롯해 ▷일본이 아시아의 리더가 되기 위해 청일'러일전쟁을 벌이는 격동기를 적은 '침략과 저항' ▷일본의 대한제국 병합과 독립운동 등을 기록한 '식민지 지배와 독립운동' ▷1945년 이후 한국과 일본의 현대사, 한일 우호 관계 증진을 위해 풀어야 할 역사 과제 등으로 엮은 '전쟁에서 평화로' 등 모두 4부로 구성돼 있다.

역사 이해를 돕기 위해 두 나라에서 비슷하게 일어난 역사 사건과 사회 운동을 함께 실었다. 단발령(일본 경우 산발탈도령), 소작쟁의와 노동쟁의 등이 그 예다. 일본 청소년들이 거의 접하지 못한 일제 치하 조선인의 독립운동, 제국주의와 전쟁에 반대한 일본인들의 이야기와 전쟁으로 고통받은 일본 민중의 모습 등 한국 청소년들이 잘 모르는 사실에 대해서도 상세히 기술했다.

특히 국가 차원을 너머 대구와 히로시마라는 지역과 그곳에 살던 사람들의 역사까지 기록했다는 점이 돋보이는 부분이다. 대구에서 시작된 국채보상운동(100쪽), 히로시마 고보댐 공사에서 희생된 징용 조선인들과 이들에게 사죄하는 히로시마 사람들(152, 153쪽) 등 두 지역 사람들의 이야기가 실렸다.

일제강점기 대구 모습은 히로시마 출신인 노세키 니키조가 경영했던 요정 '도수원'(130쪽) 이야기에서도 엿볼 수 있다. 칠성시장 인근에 자리한 이곳은 지역 유명 인사들이 드나드는 사교 장소로 유명세를 떨쳤다. 이 책은 지역 출신 저항 시인 이상화 선생이 '대구행진곡'이라는 시에서 '숲 그늘 우거진 도수원 놀이터에/오고 가는 사람이 많기야 하여도/방천둑 고목처럼 여윈 이 얼마랴'라며 도수원의 화려한 모습에 빗대 조선 민중의 비참한 삶을 노래했다고 적었다.

채정민기자 cwolf@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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