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주 출신의 애국지사 심산 김창숙(1879~1962) 선생의 별호는 벽옹(躄翁)이다. 앉은뱅이 늙은이라는 뜻이다. 이 별호는 조선식산은행'동양척식회사 등 일제 수탈 기관들을 폭파한 의열단원 나석주의 거사에서 비롯됐다. 거사 배후로 지목돼 1927년 상해에서 체포된 심산은 대구형무소로 압송돼 모진 고문을 받았다. 그 후유증으로 앉은뱅이가 되면서 스스로 벽옹이라고 부른 것이다.
그는 '나는 대한 사람으로 침략자 일제의 법률을 부인한다. 일본 법률론자에게 변호를 위탁한다면 대의에 모순되는 일이다. 나는 포로다. 결코 지조를 바꾸고 남에게 변호를 위탁하여 살기를 구하지 않는다'며 선비의 지조를 굽히지 않았다. 이런 곧은 절개로 조선 유림을 이끌던 심산은 1946년 유도회 총본부위원장이자 성균관장으로 성균관대학 설립에 주도적 역할을 했다.
고려와 조선의 최고 교육기관이었던 성균관(成均館)은 중국 고대 주나라 왕실의 제도와 법식을 규정한 주례(周禮)에 따른 것이다. 황제의 교육기관인 벽옹(辟雍)'국자감(國子監)보다 낮은 제후국의 교육기관을 일컫는 명칭이다. 성균은 '인재를 기르고(成人才) 풍속을 고르는(均風俗)' 의미를 담고 있다. 고려 성종(992년) 때 국자감으로 출발했으나 1308년 원(元)의 압박으로 성균관으로 낮춰야 했다. 이후 조선조 500여 년을 이어오다 경술국치 때 일제의 강요로 경학원(經學院)으로 전락해 교육 기능을 잃고 석전향사 등을 주 임무로 하는 기관으로 바뀌었다 광복과 함께 성균관으로 되돌렸다.
최근덕 성균관장이 횡령 등 혐의로 구속됐다. 그러자 안동 등 지역 유림 단체들이 성명을 내고 성균관장과 운영진 퇴진을 요구했다. "윤리 도덕을 강조해온 성균관장이 자기 잘못을 감추고 책임 회피에 급급했다"며 성균관의 혁신을 요구한 것이다.
성균관 유생들은 학칙인 학령(學令)에 따라 언행을 조심했다. 학령에 '조정을 비방하는 자, 사장(師長)을 모독하는 자, 권세에 아부하는 자, 주색을 말하는 자는 벌한다. 또 오륜을 범하거나 절개를 굽힌 자, 교만하고 사치한 자, 교묘한 말과 보기 좋게 꾸민 얼굴빛으로 남의 환심을 사려는 자는 쫓아낸다'고 명시했다. 유생들조차 스스로를 경계한 마당에 명색이 성균관장이 범법 행위로 유림의 명예에 먹칠한 것도 모자라 아랫사람에게 잘못을 돌리며 낯빛을 바꾼 것은 실로 부끄러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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