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에서 씨앗이 자라고 있다. 이것이 어떻게 된 일일까. 이것은 봉산문화회관 4전시실에서 열리는 '기억공작소'의 김주연 작품이다. 작품의 제목은 '유기체적 풍경'.
"2002년부터 씨앗으로 작업해왔어요. 처음 시작은 단순했죠. 동양 사상에 심취하면서 자연스럽게 채식을 하게 됐어요. 집안 곳곳에 씨를 뿌려 채소를 길러 먹기 시작했는데, 여기저기 씨를 뿌리다 보니 그 씨앗이 떨어져 수세미에서도 싹이 나곤 했죠. 그래서 이 작업을 시작했어요. 제 삶에서 자연스럽게 스며져 나온 작업입니다."
김주연은 독일에서 16년, 서울에서 10년 작업하다가 지금은 광주에서 활동하고 있다. 그는 지금까지 거대한 드레스, 1천300권의 책에 씨앗을 뿌리곤 했다. 이번 전시에는 4천500부의 신문에 씨앗을 뿌리고 정성스럽게 물을 주었다. 그랬더니 씨앗에선 단 며칠 만에 신문 전체를 덮어버릴 만큼 싹이 났다.
"신문은 단순히 종이가 아니에요. 시대성을 품고 있죠. 신문은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날씨 등 이 시대의 단상을 대변하는 매체로, 여기에 씨를 뿌려 생명체의 생존 의미를 연결했어요. 실은 종이 역시 나무에서 비롯됐기 때문에 씨앗과 크게 다르지 않은 존재이기도 합니다."
신문 작품과 함께 2년 전 남극을 여행했을 때 찍은 사진을 전시했다. 전시장 천장에 탱자나무를 거꾸로 매달아 놓기도 했다. 자라면 자랄수록 상대방을 아프게 찌르는 탱자나무 안에 지구가 위태롭게 걸려 있다. 어쩌면 인간의 이기심이 지구를 이처럼 아프게 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빙산이 하루아침에 사라지고 나타나는 것, 그리고 그 빙산의 형태가 작가에겐 가장 강렬한 유기체적 풍경으로 펼쳐졌다. 4천500부의 신문을 쌓아놓은 방식 또한 빙산의 모양을 닮았다. 전시가 진행되면서 신문 전면뿐만 아니라 뒤쪽에도 씨앗을 뿌릴 예정이다.
씨앗과 생명에 대한 그의 관심을 보여주는 영상작품도 전시되고 있다. 폐허가 된 어떤 집 안에 그는 정성스럽게 씨앗을 뿌렸다. 사람이 떠난 소파와 옷, 카펫 위에 씨앗을 뿌리고 물을 주며 카메라로 정밀하게 관찰했다. 폐허의 공간에서 씨앗이 자라기 시작하는데, 작은 싹들은 햇빛을 따라 몸을 움직이며 생명을 위한 적극적인 모습을 보여준다. 또 살아있는 유기체를 상징하는 낙지를 그 공간에 두고 관찰한다. 작가의 그 낙지는 정물화의 사진 작품에도 등장한다.
"정물화는 정지된 풍경이에요. 여기에 살아있는 낙지를 놓고, 이 움직임을 관찰함으로써 정물화의 개념을 뒤엎는 거예요."
작가의 삶에서 우러나온 현대미술 작품이 따스하게 느껴진다. 작가가 뿌린 씨앗은 전시실 안에서 생의 주기를 다할 것이다. 그 과정을 지켜보는 관람객들에겐 생명에 대한 신선한 접근이다. 이번 전시는 5월 5일까지 열린다. 053)661-30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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