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지역 4년제 대학교를 다니고 있는 손모(25) 씨는 지난해 A은행 취업에 성공해 친구들의 부러움을 샀다. 대학교 3학년 손 씨가 또래 친구들보다 빨리 취업할 수 있었던 비결은 '대졸 전형'을 과감히 포기했기 때문이다. A은행에 기록된 손 씨의 최종학력은 고등학교. 손 씨는 A은행에 '4년제 대학교 졸업'이 아닌 '고등학교 학력 이상'의 자격요건으로 입사 지원서를 제출했다. 손 씨는 "대졸자들 사이에서 치열하게 경쟁하다 실패해 백수로 지내는 것보다 급여'복지 등 대우는 못하더라도 고졸자로 하루빨리 취업해 한 푼이라도 빨리 버는 것이 더 낫다"고 말했다.
◆대학 졸업장 포기 잇따라=대학교 졸업장이 취업의 필수요건이라는 말은 이제 옛말이 됐다. 대학생들 사이에서 고졸 공채가 어려운 취업난을 뚫는 돌파구가 되면서 대학교를 졸업하지 않는 대학생이 늘어나고 있는 것. 정부와 대기업, 금융권에서 고졸 채용에 발 벗고 나서고 있기 때문이다.
기획재정부는 올 2월 '공공기관 고졸 채용제도 설명회'를 열어 공공기관에 입사한 고졸 사원의 보수를 대졸 사원 초임의 70% 이상으로 높인다고 밝혔다. 또 입사 4년 후엔 대졸 초임과 같은 수준의 보수를 받게 되고, 신분도 대졸 초임과 동일한 수준을 보장받는다. 올해 295개 공공기관에서 채용할 고졸 신입사원은 모두 2천100명. 지난해 채용한 1천900명에서 200명이 늘었다. 이 중 한국전력공사가 200명으로 가장 많다. 한전의 경우 고득점의 어학성적을 요구하는 대졸 채용과 달리 고졸 채용은 필요로 하는 어학 점수도 없다. 대졸 전형에 비해 입사 자격 요건이 완화돼 진입 장벽이 낮은 고졸 전형은 취업이 급한 대학생들에게는 대학 졸업장도 버릴 만큼 매력적이다.
공공기관 취업을 준비하고 있는 박모(28'여'대구 달서구 송현동) 씨는 2년째 대학 졸업을 미루고 있다. 고졸 신분을 유지하기 위해서다. 박 씨는 "이때까지 들어간 대학 등록금이 아깝지만 토익 900점 이상, 고학력, 따라잡기 힘든 스펙들을 가진 대졸자들을 쫓기 위해 버둥거리며 몇 년을 허비하는 것보다는 고졸 자격으로 입사해 4년을 보내는 것이 더 현명하다"고 말했다.
대학생들 사이에 취업 선호도 1위로 꼽히는 삼성도 올해 고졸 신입사원을 700명 채용할 계획이다. 지원요건은 고등학교를 졸업한 자나 내년 2월 이전까지 졸업 예정자이면 된다. 대학 입학 여부는 결격 사유가 되지 않는다. 입사 시점 최종학력이 고등학교이면 된다. 입사 후 대학교를 졸업하는 것은 결격 사유가 되지 않지만 대학교 졸업 여부와 관계없이 고졸 대우를 받는다.
◆고교 졸업자 설 자리 좁아져=대학 졸업자를 부담스러워하는 중소기업에 들어가기 위한 '학력 세탁'도 이뤄지고 있다. 대구지역 중소기업에서 사무직으로 일하고 있는 20대 여성은 "일부 중소기업에서 4년제 대학을 나왔다고 하면 금방 그만두고 나갈까 봐 채용하지 않는 경우가 있어 처음부터 고졸이라고 말하고 입사했다"고 털어놨다.
고졸 채용 시장에 대학생 입사자까지 몰리다 보니 가뜩이나 좁은 고졸 전형 자리가 점점 더 좁아지는 부작용도 나오고 있다.
대구지역 한 은행의 경우 지난해 '고등학교 졸업 이상'의 신입사원 17명을 뽑는데 1천328명이 지원했지만 이 중 실제 고졸 지원자는 85명에 불과했다. 나머지는 모두 대학생이거나 대졸 지원자다. 이곳 관계자는 "취업이 바늘구멍 뚫기보다 어렵다 보니 대졸 대우를 포기하고 고졸자 전형으로 지원하는 지원자가 늘어나고 있다"며 "대학생들 지원이 늘어나면서 고등학생들이 설 자리가 좁아지고 있어 걱정이다"고 했다.
기획재정부 인재경영과 관계자는 "고등학교를 졸업한 지 오래된 사람들의 취업 기회를 원천적으로 봉쇄할 수는 없다"며 "고졸 사원 채용에 고등학교 재학 중인 학생들을 대상으로 하는 채용확정형 인턴제도와 일반 채용이 골고루 섞일 수 있도록 할 방침이다"고 했다.
신선화기자 freshgirl@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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