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야고부] 삼마(三馬) 태수

고려시대에 '헌마'(獻馬)라는 풍습이 있었다. 지방 관리가 이임할 때 좋은 말 여러 필을 골라 딸려 보내는 게 관례였는데 직에 따라 차등을 두었다. 부사(府使)는 8필, 부사(副使)는 7필, 법조(法曹'재판 실무와 법률 자문을 맡은 관리)는 6필을 골라가게 했다. 그런데 당시 이런 관행에 대해 폐습이라는 지적이 많았다. 넉넉잖은 고을 살림에 많은 말을 추렴하다 보니 나온 불평이다.

현재 순천시에 남아 있는 팔마비(八馬碑)는 이런 폐습을 경계하는 기념비다. 고려 충렬왕 때 승평(昇平) 부사 최석(崔碩)이 선정을 베풀다가 내직으로 전임하자 부민들이 말을 고르라고 청했는데 최석은 "개경까지 갈 수만 있으면 충분하다"며 대충 꾸려서 집에 도착한 뒤에 말을 모두 돌려보냈다. 아전이 받지 않자 최석은 내 암말이 낳은 새끼까지 데려왔으니 이 또한 욕심이라며 망아지까지 돌려주니 사람들이 그 덕을 기려 비석을 세웠는데 이후 폐단이 없어졌다고 고려사는 기록하고 있다.

'삼마태수'(三馬太守)라는 말도 있다. 청백리를 이르는 호칭으로 조선 중종 때 송흠(宋欽)의 고사에서 유래했다. 조선시대에는 지방관이 사용하는 역마의 수를 법으로 정해 놓았는데 경국대전에 부사의 경우 3필의 말을 쓸 수 있도록 했다. 당시 많은 관리들이 여러 말을 몰고 떠들썩하게 오고 갔지만 송흠은 늘 3필로 단출하게 행차하니 백성들이 삼마태수라고 부른 것이다.

지방의원 유급보좌관제 도입을 추진하겠다는 유정복 안전행정부 장관의 발언이 여론의 비판을 받고 있다. 지방의원이 열심히 일할 수 있으려면 보좌관제가 필요하다는 취지는 나무랄 수 없지만 대법원 위법 판결까지 나온 마당에 또다시 논란을 불러일으키고 있어서다. 일각에서 공동보좌관제나 불성실 의원에 대해서는 의정 활동비를 삭감해 책임 의식을 높이자는 타협안까지 나오고 있다.

경국대전의 예처럼 아무리 타당하고 필요한 법령이라 하더라도 팔마비나 삼마태수라는 역설이 나올 공산이 더 큰 게 현실이다. 자칫 좋지 않은 관행이 되거나 심지어 악용될 소지가 크다는 소리다. 유급보좌관제가 지방의회를 진정 시민을 위해 헌신하는 공직으로 거듭나게 하는 촉매제가 될 수 있다면 다행이지만 현실은 반드시 그렇지 않다. 새 제도 도입을 서두르기보다 의원들이 공직의 의미나 공직자의 자세를 한 번 더 되새기고 먼저 발로 뛰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옳은 순서가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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