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안상학의 시와 함께] 황홀-김연자(1970~)

당신이 떠난 봄에도

황홀은 남아서

이렇게 봄날 저녁이 오시고

나는 목련의 숨 거두는 소리를 듣는다

맥을 놓친 꽃잎처럼 나는 비스듬하고

탄생은 저렇게 격렬하게 왔다 가는 것

당신이 떠난 봄에도 황홀은 남아서

그렇게 봄날 저녁은 가시고

나는 당신의 숨 거두는 소리를 듣는다

-샘문학 동인지 6집 『물과 얼음 사이』(한빛, 2012)

봄은 와서 머물다 간다. 봄, 꽃은 와서 머물다 간다. 한 계절 안에도 이다지 온전한 기승전결이 있다. 일장춘몽, 우리 인생을 이렇게도 표현할 수 있는 근거다. 춘몽 속에도 꽃을 기다리다가 파묻혀 지내다가 홀홀 떠나보내는 모든 과정이 고스란하다. 허망한 인생일수록 적절한 비유가 된다.

봄이라고 해서 꽃이 피기만 하는 것은 아니다. 꽃을 기다리는 봄도 있고 꽃을 떠나보내는 봄도 있다. 기다리고 보내는 시간도 애틋할 줄 알아야 꽃을 황홀하게 즐길 수 있는 것이다. 화무십일홍, 그 짧은 날만 셈해서 봄이라고 우기는 사람들도 있다. 호호당 김태규는 그런 마음을 경계해야 한다고 갈파한 적이 있다. '황홀'한 절정은 오르는 과정이 충실하고 내리는 과정이 성실해야 비로소 완성된다. 인생은 화병에 꽂아둔 꽃이 아니다. 꽃이 어떻게 오고 가는지를 알뜰하게 살피는 마음이 동반될 때 향기와 빛깔을 더욱 소중하게 보듬게 되는 것이다.

이 시는 꽃이 지고 난 뒤에도 황홀한 시간의 여운을 되새기며 사위어가는 떨림을 음미하는 마음이 애잔하다. 꽃그늘도 좋지만 꽃이 "숨 거두는 소리"를 들으며 한잔 하자는 약속도 더러 하며 살 일이다.

시인·artandong@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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