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택담보대출 상담을 받으러 지난주 은행을 찾은 회사원 박 모(37) 씨는 중도상환수수료 부담에 대한 설명을 듣고 발걸음을 돌려야 했다. 조만간 목돈이 들어오는 박 씨는 6개월 뒤 갚는 조건으로 연 4.3% 금리에 1억원을 빌릴 생각이었지만 '대출 기간이 3년 미만이면 125만원을 수수료로 물어야 한다'는 말에 마음을 접었다.
#.회사원 K 씨 역시 중도상환수수료 때문에 속이 탔던 사람이다. 몇 년 전 사들인 대구시내 아파트는 전세를 놓고 직장이 가까운 경산시에서 전세를 살던 중 올해 초 계약 기간이 끝나자 급한 대로 주택담보대출을 받아 보증금을 돌려줬다. 두 달 뒤 새로운 세입자에게 받을 보증금으로 빚을 갚으러 은행에 간 그는 중도상환수수료가 수백만원대에 달한다는 얘기를 듣고 "원리금을 떼먹은 것도 아니고 일찍 갚는다는데 왜 수수료까지 받느냐"며 어이없어했다.
연간 수천억원에 이르는 대출금 중도상환수수료를 놓고 논란이 재점화되고 있다. '월가 점령시위'로 금융권 수수료 체계를 개편한 지 2년 만이다. 금융당국은 불합리한 부분을 한 번 더 뜯어고치겠다고 나섰다. 저금리 추세에 조금이라도 낮은 금리로 갈아타려는 대출자들의 불만이 터져 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업계와 전문가 사이에서는 중도상환수수료가 마치 '탐욕'의 대명사처럼 여겨지는 데 대한 불만의 목소리도 높다. '금리 쇼핑'만 유발하다가 결국에는 대출금리로 전가될 수밖에 없다는 회의론이 만만치 않다.
◆'배보다 배꼽이 더 큰' 중도상환수수료
연 4.3% 금리에 6개월 뒤 갚는 조건으로 1억원을 빌리면 내야 하는 중도상환수수료 125만원은 지난 2011년 9월 개편된 '잔존일수 기준 체감방식'의 수수료 체계에 따른 것. 수수료를 매기지 않는 3년을 기준으로 남은 기간에 비례하는 방식이다. 최대 1.5%의 수수료가 매겨지는데 대출한 지 6개월이 지났으니 6분의 5인 1.25%의 수수료율이 적용된다. 수수료를 고려하면 6개월간 1억원을 빌릴 때 적용되는 실제 금리 부담은 6.8%까지 치솟는다는 게 은행 측의 설명이다. 대출금리 4.3%를 적용하면 6개월 만에 갚을 때 내는 약정이자는 215만원(1억원×4.3%÷2)이다. 여기에 중도상환수수료 125만원을 더하면 340만원이므로 연 환산 금리가 6.8%인 셈이다.
은행들은 대출금의 1.4~1.5%를, 제2금융권은 2~4%를 중도상환수수료로 받는다. 만기에 가까워질수록 수수료는 줄어든다. 1년 만에 대출금을 조기 상환하면 3분의 2인 약 1.0%가, 2년 만에 조기 상환하면 3분의 1인 약 0.5%가 수수료율로 책정된다.
중도상환수수료 수입은 짭짤한 편이다. 17개 시중은행의 중도상환수수료 수입은 지난 3년간 1조2천억원이다.
◆금융권은 "계약위반에 따른 손해배상" 주장
금융회사도 중도상환수수료에 대해서는 할 말이 있다. 금융회사는 3년 뒤 받는 조건으로 돈을 빌려주려고 비용을 치러 자금을 조달한다. 그런데 대출자가 돈을 일찍 갚아버리면 '노는 돈'이 돼 자금운용 계획에 차질이 빚어진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주택담보대출의 경우 근저당권 설정 비용, 담보가치 평가에 드는 비용, 인건비 등을 고려하면 대출 기간이 최소 3년은 돼야 이자 수입으로 비용을 맞춘다"고 설명했다.
중도상환수수료는 대출자의 계약 위반을 방지하고 위반할 경우 일방적으로 이런 비용을 떠안게 되는데 따른 손해배상의 개념이지, 덮어놓고 은행의 수익으로 봐선 안 된다는 것.
실제로 영국에서는 최대 5%에 달하는 중도상환수수료가 적용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금리가 높으면 중도상환수수료가 낮고, 대신 금리가 낮으면 중도상환수수료가 높은 식이다.
금융당국도 이런 설명에 상당히 설득력이 있다고 보고 있다. 다만 상품의 종류나 대출 기간 등에 따라 수수료를 굳이 받지 않거나 조금만 받아도 되는 경우는 없는지 살펴보기로 했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중도상환수수료를 폐지해야 한다는 것이 아니라 수수료율을 획일적으로 적용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는 취지"라며 "특히 서민 대출에 고율의 수수료를 매기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지적했다.
조남희 금융소비자원 대표는 금리쇼핑과 관련해 "중도상환수수료를 부과하는 것은 보이지 않는 '벽'을 만들어 대출자의 '저금리 갈아타기'를 막으려는 것"이라며 "소비자의 선택권이 제한된다"고 지적했다.
유광준기자 june@msnet.co.kr
댓글 많은 뉴스
한동훈 "이재명 혐의 잡스럽지만, 영향 크다…생중계해야"
尹 담화 날…이재명 "시청역 가득 메워달라, 나라 바로잡는 건 국민"
위증교사 선고 앞둔 이재명, '피고인 진술서' 제출…"매우 이례적"
[속보] 윤 대통령 "모든 게 제 불찰, 진심 어린 사과"
尹, 트럼프와 12분 통화…트럼프 "빨리 만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