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무명칼럼] 매킨지의 개구리

괜히 세계 최고가 아니었다. 글로벌 컨설팅 업체인 매킨지가 지난 14일 내놓은 '한국 보고서'에 포함된 중산층에 대한 설명을 이름이다. 우리 집 경제 사정을 확대경으로 들여다보는 듯이 알고 있는 것 같아 신기하기도 했고, 치부를 들킨 것 같아 부끄럽기도 했다.

매킨지는 이 보고서에서 "한국 중산층은 주택 구입 대출금 상환에 막대한 돈을 쓰고 전 세계 어느 나라보다도 많은 사교육비를 내고 있다"며 "매달 수입을 초과하는 지출로 중산층 가정의 55%가 적자 상태"라고 했다. 족집게가 따로 없었다. 새겨들어야 할 옳은 말들뿐이었다. 그나마 내가 속한 집단(55%)이 소수(45%)가 아니어서 위안이라면 위안이었다.(속도 좋지) '빈곤한' 중산층에 대한 설명은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딱 내 이야기였다.

매킨지는 심지어 "북한 핵보다 경제성장이 멈춰버린 게 진짜 위기다"라는 지적도 했다. 당장이라도 불바다를 만들 것처럼 험악한 말들을 쏟아낸 북한 정권보다 더 위험한 존재라니. 매킨지는 이를 가리켜 "멈춰버린 한강의 기적"이라는 표현도 썼다.

그런데 출범 두 달을 맞은 새 정부는 '제2의 한강의 기적'을 이야기한다. 여기서 한 걸음 더 나가 '국민행복시대를 열겠다'고 대통령부터 총리, 각료들까지 나서 국민들에게 반복 학습을 시키고 있다. 이런 가운데 매킨지가 보고서를 불쑥 내민 것이다. 누구 말을 믿어야 하나. 매킨지의 지적에 눈길이 자꾸만 간다. 새 정부로서는 매킨지가 야속했으리라. 천신만고 끝에 요직 인선을 마치고 이제 잘해 보자고 신발끈을 고쳐 매려는 마당에 찬물을 확 끼얹어 버린 것이나 다름없었으니 말이다.

반응은 정치권에서 먼저 나왔다. 그나마 철밥통이라는 관료들보다는 국민들 눈치를 봐야 하는 국회의원들이니까. "불안하다. 고민해야 한다. 대책이 필요하다"는 반성이 많았다. 그 정도의 반응이라도 나와서 그나마 다행이다. 하지만 대책다운 대책이 언제 나올지는 의문이다. 매킨지가 무너져 내린다고 한 중산층을 살려낼 묘안을 도출해 낼 수 있을지는 더더욱 의문이다. 솔직히 기대 난망이다. 그보다는 "또 저러다 말겠지"라는 생각이 앞선다. 국민행복시대를 입이 아프게 외쳐대던 정부 차원에서는 '열공' 중이기 때문인지 예상대로 아무런 반응이 없다. 장고 끝에 악수를 두지는 않을지 걱정도 된다.

이 사회 상위 10%에 속할 것 같은 저들에게 중산층과 서민들의 어려운 사정을 제대로 알아달라고 한들 무슨 소용이 있으며 어떤 반향이 돌아올까 회의도 든다. 설령 안다고 해도 몸과 마음으로 아는 게 아니라 입으로 머리로 알 뿐이어서 당사자들처럼 절실하지도 않을 것이다. 내가 아파 봐야 남이 아픈 줄도 아는 법인데.

아이 학원비 보태려고, 올라만 가는 집세가 모자라서, 열악한 '알바' 전선에 내몰려야 하는 주부들의 처절함과 절박함을 알기나 할까. 백수 생활이 싫어 대학 문을 나서지 못하는 청년들을 실업자가 아니라 학생이라고 우기는 것은 아닌지 답답하다. 또 낮은 출산율이 여자들의 미용 제일주의 때문이라는 가당치도 않은 생각을 하지나 않을까도 궁금하다.

공자 말씀처럼 구구절절이 옳은 지적만 담았다는 매킨지의 보고서 가운데 다음 한 구절만큼은 걸린다. "지금 한국 경제는 뜨거워지는 물속의 개구리와 같다"는 대목이다. 물이 서서히 데워지면서 죽어가는 줄도 모르는 개구리의 운명과 닮았다는 뜻이다. 그만큼 심각하다는 상황 진단은 백번 지당한 말씀이다. 그러나 한국 사회 전체가 현실도 직시할 줄 모르는 개구리라는 지적에는 동의할 수가 없다. 개구리라고 다 같은 개구리가 아니라는 말이다.

고위 공직자를 포함해서 '잘나가는' 사람들의 재산은 늘어만 간다. 저들은 하나같이 지금만 같으면 된다고, 미래도 지금과 같을 것이라고 믿고 있는지도 모른다. 굳이 분류하려 들자면, 매킨지가 말하는 개구리들이다. 국민행복시대는 저들에게 해당되는 말이다.

반면 하루하루 힘겹게 살아가는 이들은 다르다. 내일도 오늘 같으면, 미래도 현재 같으면 어쩌나 걱정한다. 현실에서는 어쩔 도리가 없어 답답해한다. 이들은 매킨지의 개구리와는 다르다. 현실을 너무 잘 알아서 행복하지 않은 개구리들이다. 행복이 정치적 구호처럼 그리 쉽게 찾아오지는 않는다는 사실이 이들을 더 힘 빠지게 만든다.

최신 기사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