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기고] 법 없이도 살 사람

법 없이도 살 사람은 어떤 사람일까? 착하고 순하고 바른 생활만 해서 법의 제재를 받을 일이 없는 사람? 그런데 이런 사람에게는 정말로 법이 필요 없을까? '법 없이도 살 사람'은 '무법천지'에서는 살 수가 없다. 실제로 법의 보호가 가장 절실하게 필요한 사람은 '법 없이도 살 사람', 바로 이 사람이다.

사람들은 '유전무죄 무전유죄, 법보다 주먹이 가깝다'라고들 하면서 법은 강한 사람을 위한 것, 약한 사람을 제약하고 괴롭히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법은, 오히려 강한 사람에게는 하고 싶어 하는 것을 마음대로 못하도록 이리저리 가로막아 괴롭게 하는 반면에, 약한 사람에게는 보호막을 쳐서 강한 사람이 뿌리는 비바람을 막아주는 역할을 한다.

최강의 절대권력자인 왕이 통치하던 시절에는 왕의 한마디 한마디 명령이 곧 법이었다. 왕의 마음에 들지 않는 행동만으로도 왕의 기분에 따라서는 목숨도 내놓아야 할 정도의 큰 벌을 받을 수도 있었다. 또 왕이 자신의 필요에 따라 세금을 마음대로 올려서 거두어들여도 무거운 세금을 꼼짝없이 바치고 가난에 시달릴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우리는 지금 국민이 나라의 주인인 민주주의 시대, 국민이 만든 법에 따라 다스려지는 법치주의 시대에 살고 있다. 죄가 되는 행위와 처벌의 범위가 법에 미리 정해져 있다. 죄를 지었다는 의심이 아무리 강력하게 들어도 의심만으로는 처벌받지 않고 확실한 증거가 있어야 처벌받는다. 세금이 부과되는 소득의 종류와 세율도 법에 미리 정해져 있다. 기업에서 물건이나 서비스를 판매하려면 소비자를 보호하기 위해 법에서 정해놓은 여러 제한을 지켜야 한다. 땅주인은 자기 땅이라도 마음대로 높은 빌딩을 짓거나 골프장을 만들거나 공장을 지을 수 없다. 주변의 교통상황이나 환경, 주민들의 생활에 피해를 주지 않도록 법에서 정해 놓은 제한 사항을 지켜야 한다.

그런데도 왜 사람들은 법이 강한 사람에는 약하고, 약한 사람에게는 강하다고 오해할까? 법은 사회에서 일어나는 다양하고 복잡한 모양을 일정한 규칙으로 단순화해서 정해놓은 것이기 때문에 법 조문은 간결한 단어와 문체로 이루어져 있다. 그래서 법을 실제 생활에 적용하려면 법 조문의 의미를 해석해야 하는데 사람들은 이것을 매우 어렵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사람들의 일상생활에 적용되는 법은 심각하게 어려운 것이 아닌데도 사람들은 지레 겁을 먹는다.

'주택임대차보호법'을 보자. 주택임차인은 등기를 하지 않아도 주택을 인도받고 주민등록 전입신고를 하고 임대차계약서에 확정일자만 받으면, 임대차보증금에 대하여 마치 저당권을 설정한 것과 같은 정도로 보호받는다. 대구광역시의 주택 임차인인 경우 임대차보증금이 5천500만 원 이하이면 그중 1천900만 원은 먼저 설정된 저당권자들보다도 우선적으로 변제받을 권리가 있다. 또 원래 집주인이 새 주인에게 집을 팔았을 때 새 주인과 임대차계약서를 새로 쓰지 않더라도 임차인은 원래의 임대차기간까지 계속 살 수 있고 임대차보증금도 새 주인으로부터 받을 수 있다. 임대차보증금이나 차임은 사정에 따라 올리거나 내릴 수 있지만, 올리는 경우에는 1회에 5%를 넘을 수 없고 1년에 1회만 올릴 수 있다. 내리는 경우에는 액수나 횟수 제한이 없다. 거기다 주택임대차보호법에 위반된 약정으로서 임차인에게 불리한 것은 무효이다. 반대로 임차인에게 유리하고 임대인에게 불리하면? 물론 유효하다. 왜냐하면 임차인은 약자이고, 임대인은 강자이니까! 그리고 법의 이름 자체에서 이미 주택 임대차를 보호한다고 되어 있으니까!

주택임대차보호법뿐만 아니라 다른 법들도 모두 마찬가지이다.

법은 지키지 않으려는 자에게 불편한 것, 지키지 않는 자에게 무서운 것이지만, 지키는 자에게는 편안하고 아름다운 것이다. 법은 이렇게 따뜻하고 인정 넘치는 자태로 '법이 있어야 살 수 있는 사람들'인 보통 사람들을 감싸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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