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불안한' 사회안전망…생활고 40개, 쌍둥이 아들과 동반 자살

기초생활수급·차상위계층 혜택 못 받아

40대 가장이 갑작스런 부인의 병마와 이로 인한 생활고를 이기지 못하고 두 아들과 함께 세상을 떠난 사건이 발생해, 저소득층을 지원하는 사회안전망에 구멍이 뚫렸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22일 오전 8시쯤 대구 서구 중리동 한 아파트에 A(44) 씨가 두 쌍둥이 아들(8)과 함께 쓰러져 있는 것을 A씨의 어머니 B(61) 씨가 발견해 경찰과 119에 신고했다.

경찰에 따르면 B씨는 아픈 며느리 C(41) 씨를 대신해 손자들을 학교에 데려다 주려고 A씨의 집에 연락했지만 전화를 받지 않아 아들 집에 찾아갔다. 아들 집에 찾아간 B씨가 두 손자의 방을 열었을 때 불 꺼진 연탄 화덕과 그 주변에 나란히 쓰러져 있는 A씨와 두 손자가 있었다. 놀란 B씨는 곧바로 119에 연락했고, A씨와 두 손자는 병원으로 옮겨졌지만 결국 깨어나지 못했다. 경찰은 "발견 당시 A씨와 두 손자는 이미 맥박이 멈춘 상태였다"고 말했다. 현장에는 "먼저 가서 미안하다"는 내용의 유서 2장이 발견됐다.

A씨는 인테리어 설비 업자로 일하면서 가정을 꾸려왔다. 풍족하지는 않았지만 부인과 두 쌍둥이 아들을 키우면서 행복한 삶을 살고 있었다. A씨의 삶이 휘청거리기 시작한 것은 6개월 전 아내가 쓰러지면서부터였다. 아내가 갑자기 뇌출혈로 쓰러지면서 몸의 오른쪽을 전혀 쓸 수 없게 됐고 말조차 제대로 할 수 없게 됐다. A씨는 하던 일을 멈추면서까지 부인을 극진하게 간호했다. 아파트 우편함에는 밀린 아파트 관리비 고지서와 각종 공과금 고지서가 수북이 쌓여 있었지만 A씨는 이를 정리할 수 없을 정도로 부인의 간호에 매달렸다.

하지만 한계는 곧 찾아왔다. 부인의 간호 때문에 일을 할 수 없었던 A씨에게 한 달에 내야 하는 100만~150만원의 병원비는 엄청난 부담이었다. 경찰은 "생활고에 시달렸지만 지난달까지 부인의 병원비는 밀리지 않고 다 지불한 것으로 확인됐다"며 "아마 더 이상 병원비를 마련할 수 없다는 사실에 깊이 절망한 나머지 극단적 선택을 한 것으로 보고 있다"고 말했다.

두 아들의 학교 담임 선생님은 "머리도 명석하고 성격도 활발했던 아이들이었다"며 "사회의 인재가 될 아이들이었는데 이렇게 세상을 떠나 충격이 크다"고 안타까워했다.

익명을 요구한 아파트 주민은 "A씨의 부인이 아프다는 이야기는 얼핏 들었는데 그렇게 힘들어할 줄 몰랐다"며 "무엇보다 아이들까지 저세상으로 갔다는 이야기를 듣고 '아이들이 무슨 죄인가' 싶어 눈물이 났다"고 말했다.

각종 사회안전망은 A씨에게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했다. 생활고에 시달렸지만 A씨는 기초생활수급 대상자나 차상위계층으로 지정되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동주민센터나 구청은 A씨로부터 기초생활수급 대상자나 차상위계층 신청을 받지 못했고, A씨의 생활 실태에 대해서도 파악하지 못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단지 두 아들이 지난해부터 학교에서 '기타 저소득층 지원대상'으로 분류돼 각종 교육비를 지원받은 것이 전부였다.

권명수 대구 생명의 전화 상담소장은 "만약 A씨에게 사회안전망의 도움을 받을 수 있는 방법을 누군가가 알려줬다면 극단적인 선택을 하지는 않았을 것"이라며 "사회안전망을 촘촘하게 잘 만드는 것과 함께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을 보호할 수 있도록 하는 방법도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화섭기자 lhsskf@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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