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100세 시대 은퇴의 재발견] <2부>행복한 은퇴자들 ④골목투어 해설사 유재희 씨

노신사의 '배움 열정' 문화해설사로 '발산'

우리 역사의 소중함을 알리는 것에 보람을 느낀다고 말하는 대구 중구 골목투어 해설사 유재희 씨는 나이가 들수록 대구문화를 보는 눈과 마음이 더욱 깊어진다고 말한다.
우리 역사의 소중함을 알리는 것에 보람을 느낀다고 말하는 대구 중구 골목투어 해설사 유재희 씨는 나이가 들수록 대구문화를 보는 눈과 마음이 더욱 깊어진다고 말한다.
대구 중구 골목투어 해설을 위해 꼼꼼히 적어놓은 그의 비밀 병기 수첩.
대구 중구 골목투어 해설을 위해 꼼꼼히 적어놓은 그의 비밀 병기 수첩.

'다시 태어나도 이보다 더 열심히 살 자신이 없다'고 했다. 이런 말, 하기 쉽지 않다. 대개는 이런저런 이유로 후회가 남고 미련에 아쉬워한다. 그런데 유재희(73'대구시 수성구 파동) 씨는 달랐다. 정말 최선을 다한 삶이라고 했다.

살아온 내력이 궁금했다. 14살에 배가 고파 무작정 집을 뛰쳐나왔다고 했다. 고향 예천에서 걷고 또 걸어 도착한 곳이 상주. 그곳에서 세탁소 심부름을 하며 허기를 달랬고 배고픔이 채워지자 또 다른 갈망이 몰려왔다고 했다. 배움에 대한 열망이었다.

독학으로 공부에 대한 허기를 달랬다. 군을 제대하고 고향 예천에 돌아왔을 때 배움에 목말라하는 아이들이 눈에 들어왔다. 이들을 위해 교실을 빌리고 야간에 중학교 과정을 가르쳤다. 응어리가 서서히 풀렸다. '원수 같은 돈, 한번 실컷 벌어보겠다'는 욕심이 사라졌고 그 자리에 남에게 도움이 되는 삶을 살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찼다.

종이와 분필 값을 마련하기 위해 시작한 공직생활은 36년간 계속됐다. 2000년 6월, 퇴직한 유 씨는 대구문화지킴이로 대구의 역사를 알리고 그 소중함을 나누고 있다.

-퇴직 후 지금까지 매일 출근하듯 집에서 나오고 있다는데.

"퇴직 후 하루도 집에서 뒹굴지 않았다. 매일매일 계획을 세워 출근하고 있다. 할 일이 없으면 시내 도서관에서 책을 읽거나 가고 싶은 곳을 정해서 간다. 집에만 있으면 처음엔 앉아서 TV보다 나중에는 누워서 보게 된다. 집을 나오면 외모도 신경 쓰고 자세도 발라져 젊고 건강해질 수 있다. 긴장감을 유지할 수 있다는 이야기다."

-규칙적인 생활 때문인지 아주 건강해 보인다.

"매일 자전거를 타고 중구까지 온다. 파동 집에서 신천을 따라 중구까지 오면 자전거로 45분 정도 걸린다. 왕복 1시간 30분이다. 별도의 운동이 필요 없다. 자전거를 타면 술도 적게 먹게 된다. 정해둔 기준 이상 절대로 마시지 않는다. 사람들은 독하다고 하지만 건강하지 못하면 아무것도 할 수 없다. 가족 모두에게 짐만 될 뿐이다."

-아내가 좋아하겠다. 매일 출근하고 스스로 건강을 챙겨서.

"아니다. 아내는 늙어서도 혼자라며 불평한다. 또 자전거 때문에 늘 걱정이라고 말한다. 사실 아내에게 별로 인기가 없다. 하하하. "

-여행이 취미라고 했다. 여행이 결국은 문화해설사로 이끈 계기인가.

"여행을 좋아했다. 근무하면서도 틈틈이 전국을 여행했다. 은퇴하고 바로 1년 동안 전국을 돌아다녔다. 주로 사찰을 다니면서 우리 역사를 많이 이해하게 됐다. 무엇보다 재미있었다. 일일이 메모하고 자료를 모았다. 그러자 중구시니어클럽에서 문화해설사 양성 공고가 있어 3개월 교육을 받았다. 그리고 지금까지 하고 있다. 즐겁다."

-여행할 때 반드시 하는 습관이 있다 하던데.

"그 지역의 막걸리를 맛보는 것이다. 막걸리를 먹어보면 그곳의 인심을 알 수 있다. 대개 막걸리 맛이 좋은 곳은 인심도 좋고 음식 맛도 좋았다. 막걸리 맛에 물맛이 느껴지면 음식도 별로였다."

-가장 맛있는 막걸리는?

"상주에서 먹어본 막걸리 맛이 최고였다. 아주 깊고 좋았다. 대구 막걸리도 좋아한다."(개인의 취향일 뿐이라고 강조했다.)

-대구문화재지킴이회 활동도 열심이다.

"대구지역 문화재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모여 2008년 2월 창단했다. 처음에는 65명이던 것이 지금은 257명이 됐다. 부회장으로 일하고 있다. 가수 남일해도 회원이고 미도다방의 정 마담도 회원이다. 문화재청에서 지킴이 대상지로 선정된 경상감영과 달성토성을 매일 오전 오후 팀을 짜서 문화재를 돌본다. 청소도 하고 찾아오시는 분들에게 해설도 한다. 회원들 중 여성 비율이 20% 정도 된다."

-문화해설사가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

"매년 2월 말에 골목해설사 모집공고가 뜬다. 인기가 아주 좋아 경쟁률이 높다. 면접도 하고 시험도 본다. 1~3개월 교육과정을 거쳐 해설사로 일하게 된다. 교재 공부는 전체의 50% 정도밖에 안 된다. 스스로 공부해야 한다. 아는 것만큼 보인다고 하지 않는가. 많이 알아야 제대로 된 해설도 가능하다."

-일주일에 며칠쯤 해설을 하는가.

"한 달에 절반 정도는 일하고 있다. 중구 골목투어는 전국적으로 유명해 서울뿐 아니라 경기도, 강원도에서도 찾아온다. 대구에는 국보급 보물이 많지 않지만 옛날의 흔적이 곳곳에 남아있다. 중구골목투어 해설을 하다 보면 나 스스로 대구의 역사를 새롭게 알게 된다. 동부여성회관에서도 한 달에 한 번씩 문화유산답사팀을 이끌고 있다."

-보람도 많을 것 같다.

"나이가 들수록 우리 것에 대한 애정이 점점 커가고 있다. 대구의 역사를 알린다는 데 자부심을 가진다. 지난해 겨울 한 청년이 동산병원 선교사 사택 부근에서 청라언덕을 찾고 있었다. 청라언덕이라는 어감 때문에 굉장히 낭만적으로 생각하고 온 듯했다. 그런데 '청라'라는 것이 푸른 담쟁이인데 겨울에 담쟁이가 있을 수 없다. 그런저런 설명을 하고 선교사 무덤 등을 안내했던 기억이 있다. 그때 나를 만나지 못했다면 아주 실망하고 대구를 떠났을 것이다."

-신춘문예에도 당선됐다던데.

"1966년 동아일보 신춘문예 동시 부문에 당선됐다. 먹고사는 것이 급해서 그 꿈을 접었다. 퇴직 후 대구시 퇴직공무원들의 문학 모임인 오류문학회에 가입, 현재 회장을 맡고 있다. 회원이 16명인데 등단한 사람만 50%가 될 만큼 모두가 굉장하다. 자극을 받는 모임이다. 중구청에서 하는 생애기록사로도 활동하고 있다."

-지금도 책을 가까이한다는데.

"한 달에 서너 권을 읽고 구입한다. 주로 역사나 문화재에 관련된 책이다. 최근에 '간송 전형필'을 읽었다. 문화재를 지킨다는 것은 한 나라의 수준을 말해주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앞으로의 꿈은?

"경로당의 노인들을 대상으로, 그리고 어린이를 위해 문화해설을 하고 싶다. 특히 어린이들이 골목투어에 많이 참여해 대구에 대한 자부심을 가졌으면 좋겠다. 그리고 개인적으로 나의 생을 담은 수필집을 내고 싶다."(그는 동시집과 여러 가지 글을 한데 모아 책을 낸 바 있다.)

김순재 객원기자 sjkimforce@naver.com

사진: 김규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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