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민송기의 우리말 이야기] 성인들 정말 반말했을까?

우리말에서 높임법이 잘 발달되어 있다는 것은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이다. 그러다 보니 싸움이 났을 때의 흔한 상황, "너 몇 살이야?/ 왜 반말하십니까?"와 같은 상황을 외국어로 번역을 하면 정확한 상황이 잘 전달되지 않는다. 외국어를 번역할 때도 마찬가지인데, 남자가 처음 보는 여자에게 "You are so beautiful"이라고 한 말을 "너 참 아름답구나!"라고 번역을 하면 뜻은 맞을지 몰라도 우리나라에서는 따귀 맞을 일이 된다.

이런 점을 생각해 보면 한 가지 의문이 든다. 경전을 보면 부처님이나 예수님과 같은 성인들은 제자들에게 늘 반말을 한다. 심지어 군중들 앞에서도 "너희들은 잘 듣거라", "너희 중 죄 없는 자 돌을 던져라"와 같이 반말을 한다. 항상 온유하면서 세상의 가장 낮은 곳으로 임했던 성인들이 사람들에게 실제로 그렇게 말했을 것 같지는 않은, 지나치게 권위적이고 고압적인 말이다.

예전에 성서학자가 이런 점들을 바로잡아 새롭게 성서를 번역하는 작업을 하기도 했지만, 사람들은 성인들이 하는 반말에 크게 신경을 쓰지 않는다. 그 이유는 경전을 우리말로 번역한 사람들이 성인들에 대한 존경의 마음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좀 더 높은 위치에 두기 위해 그렇게 존대를 하지 않는 번역을 하였을 것이고, 경전을 대하는 사람들 역시 같은 마음이었기 때문에 번역된 말에 아무런 거부감이 없었을 것이다.

대학 시절 문학평론가인 김윤식 교수는 수업시간에 가끔씩 "붕어빵에는 붕어가 없어!" 이런 썰렁한 농담을 하셨다. 보통 사람이 했으면 그냥 썰렁한 농담이었을 것 같은데 국문학계의 대가가 하는 말이라 뭔가 굉장한 의미가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이처럼 말이라는 것은 그 말을 하는 사람과 함께하는 것이다. 그래서 결점이 많은 일반인들이 하는 말에는 비판의 눈초리를 먼저 보내지만, 성인들이 하는 말은 언제나 받아들이며, 반말을 하는 것도 깊은 이유가 있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세상에는 성인은 아니지만 성인들처럼 아무런 비판도 받지 않으며 자유롭게 반말을 할 수 있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이다. 어릴 적 시골 동네 어디든 바보 하나쯤은 있었는데, 그들은 어른들한테도 "할배 어데 가여?" 이렇게 반말을 쓴다. 떠돌이 개장수들도 "개~ 팔아라~, 고~양이도 산다~"와 같이 독특한 가락으로 동네에 외치고 다녔다. 그렇지만 동네 어른들 누구도 그 말에 불쾌해하지는 않았다. 왜냐하면, 아무것도 잃을 것이 없는 동네 바보나 개장수라면 그럴 만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성인과 동네 바보가 가진 것, 사람들이 대하는 마음가짐은 다르겠지만, 반말을 할 만하다고 인정하는 데는 공통점이 있는 것 같다.

민송기<능인고교사 chamtc@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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