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따금 하게 되는 술자리에서 새롭게 만나는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다 보면 30, 40대의 장성한 성인임에도 부모와 함께 살고 있다는 사람들은 만나게 된다. 대부분은 미혼자들이다. 물론 부모와 같이 산다는 것이 뭐 큰 흉이라든가 타인의 따가운 시선을 받을 만한 일은 아니다. 그리고 이런 상황에 있는 분들 역시 부모와 평생 같이 살 거라 생각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다만 본인들의 현재 상황에 따라 부모와 더불어서 함께 살아가는 것이겠지만 부모와 함께 산다는 분들의 말 속에서 뭔가 가능성의 한계가 내포되어 있다는 것을 느끼곤 한다. 하나 그분들도 독립의 필요성을 주장한다. 하지만 스스로 독립을 선포하려는 의지의 발동과 삶에 변화를 모색한다는 것 자체가 그분들에게는 '아프리카 초원에서 스스로 자유롭게 살아가세요'라는 말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부모와 동거하고 있는 분들의 공통된 상황 중에 부모와 화평한 관계를 유지하는 경우가 거의 드물다. 부모와 동거하는 30, 40대 거의 대부분의 공통된 특성이다. 스스로 개인의 삶과 환경을 만들어야 할 나이가 한참 지나도록 이루어지는 부모와의 동거는 불편함과 더불어 암묵적인 스트레스의 과다 생산으로 이어진다. 서로 분리될 시기가 지난 이후 이뤄지는 불필요한 에너지의 소비, 스트레스, 트러블의 과식 상태. 더 이상 부모의 체취가 흥건히 묻어 있는 구역에서 살아가기 어렵다는 것을 스스로도 알지만 버틸 수밖에 없는 상태.
호랑이나 사자 같은 동물을 살짝 비교해 보자면 이 짐승들도 사람과 마찬가지로 새끼를 낳아 애지중지 예뻐하며 귀하게 키운다. 하지만 자신이 낳은 새끼가 제 덩치만 하게 커져 스스로 살아갈 수 있는 성체가 되면 가차없이 본능을 앞세워 자신의 영역에서 새끼를 쫓아내 버린다. 새끼 입장에서야 엄마가 두 눈 부릅뜨고 야멸차게 자신을 쫓아내는 것이 야속할 수는 있겠으나, 어미의 입장에서는 더 나은 미래의 예견을 본능적으로 한 것일 뿐이다. 세대의 연속성 안에서 길러진 이런 지혜로운 어미의 본능으로 인해 어미와 자식은 자연스레 분리되고 각자 스스로의 삶을 오롯이 겪어 나간다. 분리된 어미와 새끼 둘 다 수많은 과정과 상황에 놓일 것이다. 하지만 어미는 본능과 체험의 현명함과 지혜로, 새끼는 홀로 겪게 되는 자립적 환경 안에서 신고식을 치러 나가며 자신 역시 어미의 현명함과 지혜를 깨우치게 되는 것이다.
다시 앞의 이야기로 돌아가서 이야기하자면, 한국 사회 안에서 독립을 하지 못한 30, 40대들은 대부분 스스로 살아가기를 두려워한다. 그 연유로 오랫동안 억울하고 답답했던 역사 그리고 사회의 커다란 변화로 인해 순수한 부모의 본능이 사라져 버리면서 이미 품을 떠났어야 할 자식들에게 너무 오랫동안 젖을 내어준 부모를 들 수도 있겠으며, 한 번도 자신에게 으르렁대며 쫓아낸 적이 없는 부모의 영역 안에서 트러블 정도는 감수해 버린 채 자신의 삶과 영역을 만들어 가는 일에 관심을 기울이지 않게 된 젊은이들의 습관화된 나약함도 있을 것이다.
독립하지 못한 30, 40대들과의 대화 도중 꽤 여러 번 번복해서 듣게 되는 말이 있다. 그것은 바로 혼자서 단 한 번도 여행을 떠나보지 못했다는 것이다. 그들은 단 한 번도 낯선 경험을 위해 홀로 버스를 타고 기차를 타고 비행기를 타고 자신만의 여행을 떠나보지 못했다. 사회라는 틀의 방호벽을 뚫지 못한 채 스스로의 경험을 차단해 버린 것이다.
독립을 한다는 것. 대부분의 인생 안에서 단 한 번 겪는 도전. 그것은 내가 태어나 안전하게 자란 환경의 영역을 벗어나 나 자신이 성인으로서 스스로 나의 길을 걸어나가 보겠다는 것이다. 이것은 반드시 언젠가는 겪게 될, 겪을 수밖에 없는 도전인 것이다. 튼튼한 이빨을 갖기 위해선 처음 얻은 이빨을 빼내야 하는 것처럼 아파도 참아내 가며 과정을 겪어야 하는 것이다. 그리고 우리가 독립을 해야 하는 부분에서 정말 중요한 한 가지가 또 있다. 그것은, 독립을 나 스스로에게 요청하여 그 독립의 과정을 잘 마무리 지었을 때 비로소 부모 역시 자식이라는 존재에게서 독립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과정을 밟지 아니한 채로 부모의 영역에 기한 없이 들어앉아 있는 것은 결국 부모가 누려야 할 부모로서의 독립의 권리까지 강제하고 있는 것이라는 걸 우리는 알아야 한다.
양익준/영화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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