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바다내음을 따라 가는 울진
시내버스를 타고 영양에서 울진으로 가려면 영덕이나 봉화를 거쳐야 한다. 영덕군 영해면에서 갈아타고 울진군 후포읍으로 가는 길이 훨씬 수월하다. 오전 9시 40분 영양버스정류장에서 영해로 가는 버스에 올랐다. 요금이 5천700원이다. 시내버스 요금치곤 꽤 비싼 듯싶다.
버스는 영덕군 창수면과 영양군을 잇는 창수령(해발 700m) 고개를 넘는다. 이문열이 소설 '젊은 날의 초상'에서 극찬했던 그 창수령이다. 창수령은 조선시대 영해'영덕'울진'흥해 사람들이 한양으로 가는 관문이었다. 재가 하도 높아 '울면서 넘는다'는 '읍령'(泣嶺) 또는 '울티재'가 본래 이름이다. 버스는 적송이 울창한 수십 길 낭떠러지를 구불구불 돌아간다. 버스 뒷자리에서 내려다보면 아찔해 다리가 후들거릴 정도다. 창수령만 넘으면 주변 풍경이 확 달라진다. 산촌인 영양과는 다르게 너른 들판이 시원스레 펼쳐진다. 오전 10시 35분 영해버스정류장에 도착해 오전 11시 20분 후포행 버스로 갈아탔다. 창 밖으로 옥빛 바다가 펼쳐진다. 영해에서 후포항까지는 30여 분이 걸린다.
◆꽁치 따라 줄고 커졌던 후포항
후포항 한마음광장에서 내렸다. 수협 위판장과 접한 광장 주변은 트로트 노랫소리와 상인들로 시끌벅적했다. 노점에는 붉은 대게를 사려는 사람들이 오갔고, 점심시간을 맞은 어시장도 활어회를 사려는 인파로 북적였다. 후포항은 울진군에서 가장 큰 항구다. 오징어와 대게, 광어, 꽁치, 오징어 등 동해에서 나는 수산물 대부분이 모인다.
후포항은 본래 남호(南湖)항이었지만 일제강점기인 1930년대에 후포항으로 이름이 바뀌었다. 1970년대 이전까지 후포항은 정어리나 꽁치, 오징어 등을 잡던 작은 항구였다. 광복 전까지 70~80가구가 사는 작은 어촌 마을이었고, 배도 소형 어선 수십여 척이 전부였다.
후포항이 커진 건 1970년대 이후다. 특히 1977년까지는 후포항의 전성기였다. 당시 어민들은 꽁치와 오징어를 주로 잡았는데, 꽁치가 통조림과 원양어선의 미끼로 각광받으면서 호황을 누렸다. 100여 가구도 되지 않던 주민이 700~800가구 가까이 늘었다. "당시 '포항 경제가 후포에 의존한다'고 할 정도였니더. 후포항의 어선들이 배에 실을 부식이나 식량을 포항에서 가 왔거든, 돈이 넘쳐나서 주체를 몬한다고 그랬지. 내도 꽁치어선 3척을 갖고 있을 정도로 크게 사업을 했어요." 남호동 경로당 후포노반계 이원태(83) 회장이 당시를 회상했다. 하지만 1978년부터 호황은 한풀 꺾였다. 원양어선들이 꽁치 미끼를 저렴한 일본산으로 대체하면서 수요가 크게 줄었기 때문이었다. 꽁치 가격은 떨어졌지만 수요는 살아날 줄 몰랐고 많은 이들이 후포를 떠났다. 이후 1980년대 말이 되면서 대게잡이 어선이 크게 늘어났다.
이 회장이 있는 후포리 노반계의 역사는 200년 이상을 거슬러 오른다. 1803년 흉년에다 어리석은 관리로 인해 마을이 폐허가 될 지경에 이르자 최진우, 우계현, 안세태, 김천익 등 4명이 모여 노반계를 결성하고 마을을 살려냈다. 노반계는 후포리의 중요한 사안을 결정하는 최상위 조직이었다. 지금은 매년 정월 대보름날과 9월 중정일에 열리는 마을 제사를 주관한다. 노반계는 매년 지역 초등학생들에게 장학금 300만원을 주고, 어려운 이웃들을 돕기 위한 성금 1천만원도 해마다 내놓는다.
◆짭조름한 미역은 해풍에 말라가고
후포항 어시장에서 마을 쪽으로 조금 걸으면 등기산으로 오르는 길이 나타난다. 해발 64m 야트막한 언덕 위에는 후포등대가 삐죽 서 있고, 그 옆으로 후포항 전체를 한눈에 조망할 수 있다. 올라온 길 반대편으로 내려가면 갑바위전망대가 있고, 해안도로가 이어진다. 그대로 2.5㎞ 정도 걸어가면 울진군의 대게원조마을인 거일2리 차유마을이 나온다.
한적한 해안도로 가로 듬성듬성 튀어나온 갯바위에는 낚시꾼들이 다닥다닥 낚싯대를 드리우고 있다. 낚시꾼 옆에서 긴 대나무 장대에 매단 갈고리로 파도에 밀려나온 미역을 건져내는 할머니의 모습이 이채롭다.
해안도로 옆에는 울진대게를 상징하는 조형물이 이어진다. 투명한 옥빛 바다와 한가로이 갯바위에 앉은 갈매기, 바다 위 한 줄 선을 그으며 항해하는 고깃배는 말 그대로 그림 같다. 구름 한 점 가릴 곳 없는 햇볕이 따갑고, 거센 바닷바람이 파고들어 옷깃을 헤칠 여유가 없는 게 흠이었다. 좁은 도로 가로 딱딱한 아스팔트 포장길을 걷는 일도 고역이다.
차유마을에서 1.4㎞ 정도를 더 걸으면 거일1리다. 4월은 미역 채취가 한창인 시기다. 때마침 미역을 가득 실은 배가 들어오고 있었다. 미역 채취는 마을 어촌계에서 주관한다. 미역이 자라는 '짜미'(바닷속 암초)마다 마을 사람들을 배당한 뒤 해녀들이 각 짜미에서 채취한 미역을 배에 실어오면 사람 수 대로 나누는 방식이다. 해녀들은 물에서 나오자마자 초코파이부터 찾아 베어 물었다. "배고파 죽겠다"는 말이 끊이지 않는다.
주민들은 플라스틱 상자당 5만원씩을 내고 미역을 받아가기 바빴다. 말린 미역 20장을 묶은 한 뭇에 15만원을 받고 판다. 미역 말리는 일은 고된 노동이다. 미역을 물에 씻은 뒤 하루종일 쭈그리고 앉아 채반에 널어야 한다. 미역을 말리는 것도 기술이다. 미역 줄기를 딱딱 분질러 네모지게 각을 맞추고 미역을 깐다. 빈틈없이 채워야 하고 너무 얇게 얹어서도 안 된다. 한창 카메라 셔터를 누르는데 미역을 널던 할머니가 손짓을 했다. "이거 자연산이래. 한번 묵어봐." 대답할 새도 없이 치덕치덕한 미역이 입안으로 쑥 들어왔다. 부드럽게 씹히는 맛이 일품이다. 고개를 주억거리며 삼켰더니 또 주고, 또 주고. 입안 한 가득이 미역 줄기다. 혀가 얼얼하도록 짜다.
오후 5시 20분 거일1리에서 버스를 타고 평해읍에서 환승해 월송정에 들렀다. 입구에서 400여m를 걸으면 울창한 솔숲이 나타난다. 솔숲 끝에 계단을 올라 조선시대 관동팔경으로 꼽힌 월송정이다. 2층 누마루에 오르면 넓은 솔숲 사이로 바다가 시야에 들어온다.
◆비바리가 제주도에만 있나
울진 해녀 김칠영(64) 씨와 천옥란(62) 씨를 만났다. 두 사람 모두 물질을 한 지 30년이 넘었다고 했다. "예전에는 물에 들어가면 전복이나 해삼을 따서 20만원씩 벌었는데 요즘은 턱도 없어요. 대신 예전보다 값이 많이 올라서 그나마 유지하는 편이에요." 흔하던 멍게나 홍합, 전복은 바다 밑 백화현상 때문에 생산량이 크게 줄었다고. 대신 지자체에서 지원하는 해적생물 구제사업에 투입된다. 불가사리나 성게 등을 건져내는 작업이다.
해녀들은 보통 수심 7m 정도의 연안에서 작업을 한다. 멍게를 딸 때는 수심 10m까지 들어간다. "아이고, 저승 보다가 이승 보다가 하는 거라요. 워낙 힘이 드니까 혀가 갈라지고 입술이 다 터진다 카이."
울진 등 동해안에는 원래 해녀가 없었다. 그저 해산물을 따기 위해 바닷속으로 들어가던 게 전부였다. 30~40년 전부터 제주도 출신 해녀들이 동해안으로 일을 하러 많이 왔고, 그들로부터 물질을 배운 이들이 적지 않다. 울진에는 현재 30여 명의 해녀들이 물질을 하고 있다. 대부분 60대 이상의 고령이고, 어촌계마다 남성 스킨스쿠버들이 해녀를 대체하는 추세다.
'억척스러움'은 해녀들의 몸에 밴 DNA다. 제주도 비바리처럼 동해의 해녀들도 그렇다. 바다에서 돌아오면 녹초가 된 몸으로 집안 살림을 하고 자녀들을 챙기고, 바다에 나가지 못하는 날에는 밭에 나가 농사를 짓는다. 진통제를 입에 달고 살아도 "집에 있는 것보다 바다에 갔다 오면 기운이 난다"는 그들이다.
해녀들에게도 미역 캐는 일은 가장 고된 일이다. 오전 4시에 일어나 준비를 한 뒤 오전 6시가 넘으면 바다로 들어간다. 바닷속을 오르락내리락하길 대여섯 시간. 잘라서 거둔 미역은 배에 올려줘야 한다. 30년이나 한 물질이지만 여전히 파도는 겁이 난다. 파도에 휩쓸리다 물안경이 벗겨질 때가 가장 아찔하다. 파도가 심한 날에는 수면 아래도 물결이 친다. 이리저리 조류에 휩쓸리면 어지러워 몸을 가누기도 힘들다. "미역을 캐다 보면 정말 몸이 힘들고 아픈데, 이렇게 힘들게 돈 버는 걸 자식들이 알아주나 싶어 서글프기도 해요. 애들은 바다에 나가지 말라지만 안 갔다, 안 아프다 거짓말하고 또 바다로 나가는 거죠." 오리발에 부대낀 김 씨의 발등은 시커멓게 멍들어 있었다.
글'사진 장성현기자 jacksoul@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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