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에세이 산책] '도광의 시인'

1976년 3월 대구 남문시장 부근의 한 고등학교. 첫 수업 국어시간이 되었을 때 큰 키의 선생님 한 분이 교실 앞문을 열고 들어오셨다. 도광의 시인이었다. 양복을 잘 어울리게 입은 선생님은 미남형에다가 목소리까지 맑고 우렁찼다. 그런데 늘 선생님은 인상을 찡그리며, 눈을 가늘게 뜨고 수업을 했다. 훗날 알게 되었지만 전날 폭음으로 인한 속쓰림과 안경을 잊고 출근한 탓이었다.

선생님은 수업시간이면 교과서 진도보다는 주로 문학과 시인과 시에 대해서 많은 이야기를 했다. 교과서 진도를 나가다가 이야기가 문학 쪽으로 흐르기 시작하면 자신도 모르게 빠져드는 식이었다. 한창 문학적 열정을 주체 못하던 30대의 시인 교사는 자신이 국어 교사인지 문학병을 앓는 시인인지 구분을 못 할 정도로 도취되어 갔다. 눈을 지그시 감고 특유의 목소리로 시를 낭송하거나, 시적 낭만에 대해 열변을 토하면 감수성 예민하던 우리들은 집단 최면이나 걸린 듯 빠져들었다.

선생님의 제자 중에는 유독 글쓰기를 업(業)으로 하는 이가 많다. 문인이 많이 배출되었다는 건 다 알지만, 기자가 많다는 건 잘 모를 것이다. 필자의 동기 중에만 해도, 한때 기자가 10여 명이 넘었다. 올해 조선일보 편집국장이 된 강효상 기자와 칼럼니스트 최보식 기자, 뉴시스 박민수 편집국장, 윤동렬 MBC 비서실장, 국민일보 성기철 부국장, 한국경제 정동헌 기자 등은 아직 현직에 남아 있다.

600명 졸업생 중에 기자와 작가가 무려 20명 가까이나 배출되었다는 건 아무래도 이상하지 않은가? 우리 기수는 도광의 시인에게 3년이나 배웠다. '도광의 바이러스'에 가장 많이 감염된 기수인 것이다. 무슨 일로 선생님은 학년을 따라오면서 우리들을 가르쳤다. 많은 국어 선생님이 계셨는데도 말이다. 1년만 배워도 내면 깊숙이 침잠되어 있던 문학적 감성이 자극된다는데, 3년이나 배웠으니 말해서 무엇하겠는가. 또 우리가 수학할 때는 선생님의 시 '갑골길'이 현대문학 추천을 받기도 했다.

요즘 선생님을 만나 술잔을 올리면 쑥스러운 듯 한때의 '외도'를 인정하면서 나중에는 수업을 충실히 한 교사가 되었다고 변명 아닌 변명을 하신다.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교과서 진도에 충실한 모범적인 국어교사가 되고부터는 더 이상 문인이 배출되지 않았다. 이걸 무엇으로 설명해야 할까? 적어도 국어 교육만은 교과서 위주가 아닌 도광의 시인이 외도했던 그 수업방식이 효과적인 것이다. 여러 제자의 배출이 그것을 증명해주고 있다. "우린 선생님을 만나 너무 행복했습니다."

장삼철/삼건물류 대표 jsc1037@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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