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강성률의 줌인] 스크린 점령한 '아이언맨3'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었을까? 극장이 온통 '아이언맨3'로 도배되었다. 말 그대로 도배! 들리는 바에 의하면 전주의 특정 멀티플렉스는, 멀티플렉스라는 이름이 무색하게, 모든 스크린에서 '아이언맨3'를 상영하고 있다고 한다. 지난달 25일 개봉한 '아이언맨3'를 상영하는 스크린이 무려 1천300개 내외로 고정되어 있다. 이 수치가 얼마나 무시무시한 수치인지 확인하려면 전국의 스크린 수를 파악하면 단번에 가능하다.

현재 전국의 스크린은 대략 2천400개 정도이다. 이렇게 보면 전체 스크린의 50% 이상을 특정 영화가 장악하고 있는 것이다. 과연 여기가 미국인가, 한국인가? 미국도 이렇게까지 '아이언맨3'에 열광하지는 않는다. 미국은 특정 영화가 전체 스크린의 10% 이상을 차지하지 않는다. 그러나 미국보다 더 미국 같은 여기에는 그런 룰조차 없다. 29일 현재 '아이언맨3'는 1천380개의 스크린에서 상영하고 있고, 총 관객 290만7천550명으로 압도적인 수위를 달리고 있다. '아이언맨3' 앞에 다른 영화는 없다.

이 현상을 어떻게 볼 것인가? 왜 우리는 이렇게까지 '아이언맨3'에 열광하는가? 보는 이에 따라, '아이언맨3'가 전작에 비해 뛰어난 영화라고 평가할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은 영화라고 평가할 수도 있다. 더 뛰어난 영화라고 평가하는 이들은 이 영화가 인간적인 토니 스타크를 그리는 것을 먼저 들 수 있다. 트라우마를 지닌 채 거의 잠을 자지 못하면서 인간적인 고뇌를 하는 슈퍼 히어로의 모습은 스크린에서 거의 보지 못했다. 게다가 스타크의 저택이 공격당하는 장면이나 후반부의 항구 대결처럼 큰 볼거리뿐 아니라 소소한 액션과 잔재미의 긴장이 많아 그리 지루하지 않다는 점에서도 긍정적인 평가를 받는다. 원작 만화와 다르게 악당을 그리면서, 또는 여러 수트에 대한 예상을 깨면서 기대치를 높였다는 점에서도 그렇다.

그러나 이 영화를 부정적으로 평가하는 이들도 만만치 않다. 이들은 먼저 악당의 존재를 꼽는다. 슈퍼 히어로가 등장하는 시리즈물의 경우, 갈수록 강한 악당의 존재가 필연적으로 등장해야 하는데, '아이언맨3'의 악당은 현실적인 느낌이 거의 들지 않는다. 주사 한 방에 괴물로 변해 로봇보다 더 로봇 같은, 마치 '터미네이터2'의 T-1000 같은 불사신으로 설정된 것을 쉽게 받아들이기는 어렵다. 게다가 후반부에서 죽었던 페퍼가 살아나는 것도 어색하다. 다르게 말하면, 영화 속 필연성과 인과성이 충분하지 않아 개연성이 떨어진다는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모든 평가가 무색하게 '아이언맨3'는 엄청난 속도로 흥행을 구가하고 있다. 지난주말 관객 점유율이 무려 83.8%를 차지했다. 특정 영화가 100명의 관객 가운데 84명을 빨아들였다는 말이다. 진공청소기도 이런 진공청소기가 따로 없다. 흥행 2위였던 '전설의 주먹'이 겨우 5%의 점유율을 차지했던 것과 비교하면 이 수치가 얼마나 대단한 것인지 선명하게 드러난다. 좌석점유율도 53.6%나 되었다. 이 기록은 당분간 깨기 어려울 것이다. 이번 주말 중고생들의 중간고사가 끝나면, 지난주말 대학생들의 중간고사 특수와 같은 문전성시가 재연될 것이 명약관화하다. 어쩌면 이 영화가 '아바타' 이후 두 번째로 1천만 관객의 외화로 기록될지도 모른다. 지금의 기세를 보면 충분히 가능해 보인다.

그러나 여기서 간과해서는 안 되는 것이 있다. 지금과 같은 독점 구조는 위험해 보인다는 것이다. 이렇게 엄청난 독점은 분명 문제가 있다. 봉준호 감독의 '괴물'이 스크린 독과점으로 문제가 될 때, 겨우(?) 전체 스크린의 30%를 차지했었다. 그런데 이제는 50% 이상의 스크린을 차지하고 있는 영화가 등장했다. 이 말을 다르게 하면, 영화 한 편이 다른 영화의 상영 기회를 원초적으로 막아버리고 관객들의 선택권마저 막아버렸다는 말이다. 획일화된 문화는 획일화된 사고를 낳는다. 지금도 한국 영화 시장은 한국 영화와 미국 영화로 충분히 획일화되어 있다. 두 나라의 영화가 95%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 이런 나라의 국민들에게 깊고 넓은 영화 문화와 사고를 기대할 수 있겠는가? 단연코 없다. 이럴 거라면 왜 멀티플렉스를 만들었는가? 다양한 영화를 한 공간에서 관람할 수 있는 여건을 조성하기 위해 만든 것이 아닌가? 악용이라는 용어는 이럴 때 사용하라고 있는 모양이다.

그 어떤 것보다 지금 우리에게 중요하고 필요한 것은 문화의 다양성을 확대하는 것이다. 문화가 돈벌이의 수단으로 전락해 획일화되는 것만큼 위험한 것은 없다. 나는 특정 영화가 전체 스크린의 30% 이상을 차지하는 것에는 결단코 반대한다. 10개 스크린을 가진 멀티플렉스에서 3개를 확보한 것만으로도 충분히 많다. 다음으로 10개 이상의 스크린을 가진 멀티플렉스에는 의무적으로 1개 이상의 독립영화관을 설치하도록 법률로 정해야 한다. 반드시 법률로 정해야 한다. 그래서 최소한 다양한 영화를 선택할 수 있는 기회를 관객들에게 돌려줘야 한다. 이것이 건강한 사회를 만드는 지름길이라고 나는 굳게 믿고 있다. 다시 말하지만, '자본주의 천국'이라는 미국에서도 이렇게까지는 하지 않는다. 왜 우리는 스스로 우리 문화를 죽이고 있는가?

강성률 영화평론가, 광운대 교수 rosebud70@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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