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대구사랑 대구자랑] <18> 삼성을 키운 도시

호암이 선택한 대구, 그를 도시 대표브랜드로 삼자

호암 이병철 회장이 대구를 사랑했듯이, 대구 시민들이 삼성을 사랑했듯이 대구와 삼성이 상생(相生)을 통해 서로에게 도움을 주기를 대구 시민들은 바라고 있다. 대구 오페라하우스 광장에 있는 호암 동상. 정운철 기자
호암 이병철 회장이 대구를 사랑했듯이, 대구 시민들이 삼성을 사랑했듯이 대구와 삼성이 상생(相生)을 통해 서로에게 도움을 주기를 대구 시민들은 바라고 있다. 대구 오페라하우스 광장에 있는 호암 동상. 정운철 기자

올해는 삼성 창립 75주년이 되는 해이다. 세계적 기업으로 손꼽히는 삼성이 75년 전 세상에 첫발을 내디딘 것이다. 그 역사가 100년을 훌쩍 넘는 서양의 기업과 달리 75년이란 짧은 기간 동안 글로벌 기업으로 우뚝 선 삼성이 태어난 곳이 바로 대구다. 삼성의 탄생지인 것은 물론 삼성이 굴지의 기업으로 자리 잡는 데 중추적 역할을 한 도시 역시 대구이다. "삼성을 키운 도시=대구"라는 명제가 성립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이병철 회장, 각별한 대구 사랑

삼성 창업주 호암(湖巖) 이병철(李秉喆'1910~1987) 회장은 28세 때인 1938년 3월 1일 대구 중구 인교동 61-1번지(당시 수동'현재는 이른바 '오토바이 골목' 끝자락)에 가게를 세웠다. 지상 4층, 지하 1층의 목조건물인 가게 간판엔 '삼성상회'라고 씌어 있었다.

호암이 글로벌 기업 삼성의 출발지로 대구를 선택한 까닭은 뭘까. 경남 의령 출신인 호암은 전국은 물론 중국 각지까지 여행을 하며 사업을 준비했다. 무역업을 하기로 결심한 호암은 최적지로 대구를 골랐다. 영남의 한가운데 위치한 대구는 농수산물과 화물이 모여드는 곳이었고, 경부선철도를 비롯해 각종 기반시설이 일찍부터 갖춰져 있었다. 대구 만한 경제도시가 없다는 것이 호암의 판단이었다.

삼성(三星)이라고 회사 이름을 지은 것도 연유가 있다. 화로나 삼발이 다리가 3개인 것처럼 3이라는 숫자는 '쓰러지지 않는다'는 의미를 갖고 있다. 크고, 강력하고, 영원하라는 의미에서 삼성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그 이름에 걸맞게 삼성 브랜드는 전 세계를 누비고 있다.

삼성상회는 대구 인근 청과물과 포항 등지에서 들여온 건어물을 중국 등에 수출했다. 제분기와 제면기도 설치, 국수도 만들었다. 삼성상회가 만든 별표국수는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삼성상회 설립 1년 뒤 호암은 조선양조까지 인수, 양조업도 시작했다.

삼성을 시작한 대구에 대해 남다른 애정을 가진 호암의 대구사랑은 계속 이어졌다. 1954년, 해방 이후 단일 공장 규모로는 대한민국 최고였던 제일모직의 입지로 대구 침산동을 선택한 것. 이미 서울로 사업 근거지를 옮겼지만 삼성의 출발지인 대구에 제일모직을 지었다. 사계절의 기온 차가 심한 등 모직공장으로는 불리한 입지였지만 호암은 대구에 제일모직을 세웠다. 이 제일모직을 기반으로 삼성은 한국을 대표하는 기업으로 성장했다. 호암은 1982년 프로야구 출범 때에도 삼성라이온즈의 연고지를 주저 없이 대구로 했다.

◆미래가 더 기대되는 대구+삼성

호암이 삼성상회를 설립했을 초기, 호암은 달성 출신의 부인 박두을 여사와 장녀 인희, 장남 맹희, 차남 창희, 차녀 숙희 등 모두 5명의 가족을 두고 있었다. 호암이 삼성을 대구에서 시작했기 때문에 삼성그룹을 비롯해 한솔그룹'CJ그룹 등 현재 범 삼성가(家)를 이루고 있는 호암의 자녀들이 거의 모두 대구를 거쳐 간 것이다. 삼남인 이건희 삼성 회장 역시 대구 삼성상회 시절 태어났다.

대구와 떼려야 뗄 수 없는 인연을 지닌 삼성의 자취도 고스란히 대구에 남아 있다. 대구 오페라하우스 야외 광장에는 호암 이병철 회장의 동상이 건립돼 있다. "기업의 존립기반은 국가이며 따라서 기업은 국가와 사회발전에 공헌해야 한다"는 동상 뒤편 글귀와 함께 호암 동상은 대구 시민은 물론 대구를 찾는 이들의 명소가 되고 있다. 삼성상회 터에는 야외박물관이 조성돼 있다. 대구 오페라하우스 앞 도로는 제일모직로에서 호암로로 이름이 바뀌었다. 호암이 살았고, 이건희 회장이 태어난 집도 보존돼 있다.

그뿐만 아니라 대구 오페라하우스는 삼성의 기부채납으로 건립됐고, 대구야구장 역시 삼성이 힘을 보태 건립 공사에 들어갔다. 호암에서 비롯된 대구와 삼성과의 인연이 줄기차게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그에 따라 호암을 대구 대표 인물 브랜드로 만들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세계적 기업 삼성을 일군 호암은 대구의 자랑인 만큼 호암을 기리고 대구의 상징으로 삼는 작업을 지속적으로 추진하자는 것. 최고를 지향하고 사람을 중시하며, 미래를 대비하고 변화에 신속하게 대응하기 위한 혁신경영을 끊임없이 추구해온 호암의 기업가 정신을 대구가 중심이 돼 조명을 해야 한다는 얘기도 있다.

세계 굴지의 기업 삼성의 발상지가 대구라는 사실은 보존하고 발전시킬 분명한 가치가 있다. 하나의 예로 경북도청이 옮겨간 이전터에 삼성의 역사와 제품, 성공 노하우 등을 보여주는 삼성관을 만든다면 세계적 명소가 돼 전 세계에서 사람들이 몰려올 것으로 기대가 된다. 문제는 대구와 삼성이 이를 어떻게 푸느냐는 것이다. 호암이 대구를 사랑했듯이, 대구 시민들이 삼성을 사랑했듯이 앞으로도 대구와 삼성이 상생(相生)을 통해 서로에게 도움을 주기를 대구 시민 모두가 염원하고 있다. 이대현기자 sky@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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