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나이에 '서른 즈음에'를 듣는다. 음유 몽환의 가수 김광석이 부른 노래다. 어떤 때는 듣다 말고 따라 부르다 내가 깜짝 놀란다. "점점 더 멀어져 간다/ 머물러 있는 청춘인 줄 알았는데/ 비어가는 내 가슴속엔/ 더 아무것도 찾을 수 없네." 노랫말이 나를 향해 "왜, 네 얘기 같니"라며 웃는다. 킥킥! 서른의 두 배를 넘게 살아온 내가 맛이 갔는지 아니면 이 노래를 부르고 요절한 광석이가 돌았는지 둘 중 하나다.
내가 김광석의 '서른 즈음에'를 알게 된 것은 꽤 오래전 일이다. 아내의 투병을 뒷바라지하던 친구가 CD 한 장을 건네주며 "이 노래 한 번 들어봐" 했다. 그 노래는 '어느 60대 노부부의 이야기'란 노래였다. 들어보니 너무 애절했다. 그 CD에는 '서른 즈음에'란 노래도 있었다. 두 노래는 서른과 예순이란 연륜의 차이는 있어도 인생은 '매일매일 이별하며 살고 있는' 방식이 너무나 닮아 있었다.
김광석은 1964년 1월 22일 대구 방천시장 부근에서 3남 2녀 중 막내로 태어났다. 대학 때 노래를 시작하여 젊은이들로부터 폭발적인 인기를 얻었으나 1996년 1월 6일 서른셋에 자살로 생을 마감했다. 당시 유족으론 부인과 여섯 살 난 서연이란 예쁜 딸이 있었다.
그는 무엇 때문에 서른 즈음이란 젊디젊은 나이에 세상을 등졌을까. 김광석의 니힐리즘은 어디에서 출발하여 어디로 달려갔는가. 그가 부른 노래들을 굳이 색깔로 구분한다면 분명 슬픈 우수로 덧칠되어 있음을 부인할 수 없다. 그러나 음색의 슬픔이 목숨을 끊는 비극으로 이어지리란 생각은 아무도 하지 않았다.
김광석의 동영상을 보면 '거리에서'란 노래를 부르기 전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흔히들 가수의 운명은 그가 부른 노래의 가사처럼 된다는 말이 있어요. 나의 생도 그렇게 될까 봐 이 노래를 한동안 부르지 않았어요. 오늘 한 번 불러 볼게요."
"유리에 비친 내 모습은/ 무얼 찾고 있는지/ 옷깃을 세워 걸으며/ 웃음 지려 하여도/ 허한 눈길만이 되돌아와요/ 그리운 그대/ 아름다운 모습으로/ 마치 아무 일도 없던 것처럼/ 내가 알지 못하는/ 머나먼 그곳으로 떠나 버린 후/ 사랑의 슬픈 추억은/ 소리 없이 흩어져/ 이젠 그대 모습도/ 함께 나눈 사랑도/ 더딘 시간 속에 잊혀져 가요."
그는 가요계에 떠도는 '노랫말처럼 되는 인생'이란 징크스를 몹시 싫어했다. 사실 이 말은 헛소문만은 아닌 듯했다. 윤심덕의 '사의 찬미'로부터 김정호의 '이름 모를 소녀'와 차중락의 '낙엽 따라 가버린 사랑', 그리고 '울어 봐도 소용없고 후회해도 소용없는' '곡예사의 첫사랑'을 부른 박경애까지 하나같이 가사를 닮은 삶을 살다 유명을 달리했다.
"7년 뒤 마흔 살이 되면 하고 싶은 게 하나 있어요. 마흔 살이 되면 오토바이 하나 사고 싶어요. 할리 데이비슨, 멋진 걸루, 돈도 모아 놨어요. 그걸 타고 세계 일주하고 싶어요. 괜찮은 유럽 아가씨 뒤에 태우고. 나이 마흔에 그러면 참 재미있을 것 같아요. 그리고 환갑 때 연애하고 싶어요." 김광석이 이런 말을 할 땐 어디에도 죽음의 그림자는 드리워져 있지 않았다.
언젠가 방천시장 둑방 밑에 있는 '김광석의 길'을 걸어보고 싶었다. 그러나 세대 차라는 간극이 차일피일 미루게 하는 게으름을 부추겼다. 그럴 때마다 나도 모르는 새 '서른 즈음에'란 노래가 이명(耳鳴)처럼 들려오면 소리통에 CD를 올려놓고 김광석의 목소리를 듣는 일이 잦아졌다.
오늘은 이상하게도 서른 즈음으로 돌아가고 싶었다. 오후 내내 그의 노래를 듣다가 '일어나'란 노래가 흘러나오자 도저히 가만히 앉아 있을 수가 없었다. "검은 밤의 가운데 서 있어/ 한 치 앞도 보이질 않아/ 어디로 가야 하나 어디에 있을까/ 인생이란 강물 위를 끝없이/ 부초처럼 떠다니다가/ 어느 고요한 호숫가에 닿으면/ 물과 함께 썩어가겠지/ 일어나 일어나/ 다시 한 번 해보는 거야"
그 길로 바로 방천시장으로 달려갔다. 그곳에는 노래하는 광석의 모습이 벽화로 그려져 있었고 공중에 매달린 스피커에선 쉴 새 없이 노래가 흘러나왔다. 그러나 그는 일어나지 않았다. 수성교 입구 대로변 코너에서도 그는 아끼던 기타 '마틴 M36'을 메고 동상으로 그냥 앉아 있었다.
골목 안 허름한 주점으로 들어가 요절한 영혼의 안식을 위한 추모 의식을 치르기 위해 막걸리와 부추전을 시켰다. 스피커에서 흘러나오는 '서른 즈음에'가 살그머니 기어 들어와 내 옆자리에 앉았다. "나도 좀." "그래 그래."
수필가 9hwal@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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