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이슈 논쟁] 대구문화재단 이사-시의회 갈등

市의회 조례개정에 재단이사 집단사퇴…사태 해결 '출구전략' 없어

대구시의회와 갈등을 빚고 있는 대구문화재단의 운영이 일부 이사들의 사퇴로 파행을 겪고 있다. 30일 대구 중구 대봉동 대구문화재단 건물 모습. 우태욱기자 woo@msnet.co.kr
대구시의회와 갈등을 빚고 있는 대구문화재단의 운영이 일부 이사들의 사퇴로 파행을 겪고 있다. 30일 대구 중구 대봉동 대구문화재단 건물 모습. 우태욱기자 woo@msnet.co.kr

◆대구문화재단(이하 재단) 이사들과 대구시의회(이하 시의회) 갈등이 점입가경이다.

이번 사태의 발단은 무엇이며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지 짚어보기로 한다.

◆사건의 발단

김정길 대표이사가 임기 시작 1년도 안 된 지난 3월 20일 돌연 사임했다. 새 대표가 누구냐는 이야기가 나올 때쯤해서 '대구시의회에서 재단 관련 조례를 개정하려 하니, 그 과정이 끝나야 새로운 대표가 선임될 수 있다'는 이야기가 전해졌다. 재단 조례 개정을 주도한 이는 이재녕 시의회 문화복지위(이하 문복위) 위원장. 이 위원장에게 재단 운영상 문제점을 제기한 것은 재단 이사 12명(당연직 이사 제외) 가운데 한 명인 전영평 이사(전 대구경실련 대표)이다.

전 이사는 "첫 번째 회의에 가니, 이사장이 회의를 진행해야 하는데 나오지도 않고 대표이사가 이사회 의장으로 앉아 관행적으로 진행을 하고 있었다. 대표이사가 행정을 이사회에 보고하고 회의를 진행하며 심의, 의결에도 참가하고 있는 모습을 보고 문제 제기를 했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김정길 전 대구문화재단 대표이사는 "이사회 운영 규정을 보면 대표이사가 이사회 의장을 맡도록 되어 있으며 회의 진행만 할 뿐 표결권은 없다. 가부동수일 경우에만 표결권을 행사할 수 있다. 모든 것이 정관에 나와 있다"고 말했다.

시의회 문복위에서 이 조례안을 대표 발의한 이재화 의원은 "이사들 중 일부가 의견을 내봐야 소용없다는 말을 했고, 이를 참고로 조례 개정이 시작됐다"고 말했다. 이재녕 위원장은 김정길 대표이사 전임자인 김순규 대표이사 시절부터 대표이사의 운영 방식에 이사들이 제동을 걸지 못하는 모습을 보고 대표이사의 권한을 줄이는 조례 개정의 필요성을 느끼고 있었다고 했다. 그러나 시의회가 문화재단의 운영에 중대한 변화가 불가피한 조례 개정안과 관련해 다양한 이해 관계자들의 의견을 모으는 데 소홀했다는 지적은 피할 수 없다.

결국 조례 개정안은 몇 차례 수정을 거치면서 23일 문복위를 통과했고, 26일 시의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사태의 전개

재단 이사들은 시의회의 조례 개정 움직임과 관련, 세 차례 긴급 모임을 갖고 조례 개정안에 대해 반대 의사를 모았고, 문복위에서 개정안이 통과되자 25일 9명의 명의로 된 반대 성명서를 발표했다. 이들은 여기에서 조례 개정안이 대구시의회 본회의를 통과할 경우 일괄 사퇴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들이 이렇게 강경하게 나온 것은 대표이사의 권한을 제한하고 중요 사항을 시의회 상임위에 사전 제출토록 하는 것은 자율성을 제한하는 조치라는 이유에서였다.

그러나 26일 본회의에서도 조례 개정안은 '예상대로' 이의 없이 통과됐다. 이재녕 위원장은 26일 보도자료를 통해 이사들의 성명서에 대한 답변을 발표했다. 재단 이사들의 '이사회를 무시하는 처사'라는 주장이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내용이었다. 이사들도 가만히 있지 않았다. 서명에 참여하지 않았던 한 명의 이사가 가세해 당연직 2명을 제외한 13인의 이'감사 가운데 10명이 서명한 '대구문화재단 이'감사 10인의 입장'을 밝혔다. 이 위원장의 주장이 근거가 없다고 다시 반박한 것이었다.

이번 사태의 배경을 두고 다양한 해석이 나오고 있다.

한 문화계 관계자는 "시의회의 과잉"이라고 말했다. "왜 유독 대구문화재단인가. 이런 식이면 대구시의 출자기관 모두 다 정관을 개정해야 한다. 게다가 민간재단이 이사장 승인 전에 시의회에 정관 제정 또는 변경 사항을 제출해야 하는 의무조항을 넣는 것은 법리적으로도 문제가 있다"고 했다.

그러나 이번 사태는 이미 자존심 대결로 번진 양상이다. 이재화 시의원은 "이사들이 사퇴했으니 다시 뽑으면 된다"면서 이사진들의 의견 수렴이 부족했다는 지적에 대해서는 "왜 우리가 이사들에게 조례 개정안을 낼 때 보고해야 하는가. 이사들의 자존심도 있지만 우리들의 자존심도 있다"고 했다. 반면 사의를 표명한 이사들은 "시민들의 민의를 대표하는 의회가 공개적인 여론수렴과정을 거치지 않고, 더구나 상임위 통과 전 이사들이 의견서까지 보냈지만 묵살하고 한두 명의 말만 듣고 조례개정을 추진하는 '밀어붙이기식'에 경악을 금치 못하겠다"고 했다.

◆쓸 수 있는 카드가 별로 없다

앞으로가 더 문제다. 대구시와 시의회, 재단이 취할 수 있는 방법이 별로 많지 않다. 시의회는 이미 본회의에서 개정안을 통과시킨 만큼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 그리고 재단 이사들 역시 사퇴 의사를 밝힌 만큼 앞으로 이사로서 더 이상 할 수 있는 여지가 많지 않다.

당장 상정할 수 있는 카드는 재단 이사장인 대구시장이 이사들의 사의를 만류하고(사표를 반려하고), 현 이사진들을 그대로 유지한 상태에서 합의점을 찾아나가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대표도 현 이사회에서 뽑으면 된다. 이렇게 되기 위해선 사퇴도 불사하겠다는 이사들을 설득할 만한 명분이 필요하다.

또 하나의 방법은 새로운 이사들을 뽑아서 하루빨리 재단 정상화에 나서는 것이다. 하지만 조례 개정안이 문화계의 반발을 사고 있는 현 시점에서 갈등을 봉합하지 않고 무조건 정상화로 밀어붙이는 것 역시 모양새가 좋지는 않다. 상처만 가득한 정상화여서 후유증이 만만치 않을 전망이다.

◆집행부는 제대로 역할을 했나

집행부인 대구시가 중재 역할을 잘못했다는 지적도 적지 않다. 분명히 이 사태의 한쪽 당사자임에도 과연 할 일을 제대로 했느냐에 대해서는 비판의 소리가 많다. 한 문화계 관계자는 "애초 시의회에서 이런 이야기가 나오기 시작했을 때 재단 사무처와 대구시가 함께 시의회를 설득하거나 발 빠르게 이사들의 의견을 묻는 등 조치를 취했다면 지금 이런 사태까지 오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또 재단 이사들을 임명한 것이 대구시임에도 불구하고 지금에 와서 갈등 양상에서 발을 빼는 듯한 인상을 주는 것 또한 무책임하다는 것이다. 이사장인 대구시장도 지금까지 침묵하고 있다. 여기에다 재단 사무처의 대응도 미숙했다는 지적도 많다. 시의원과 이사들 사이에서 설명하고 설득하는 작업이 부족했다는 지적이다. 사안이 이만큼 심각해질 정도라면 대응도 달랐어야 한다는 것이다.

한편 문화정책을 사이에 둔 대구시와 대구시의회 간에 입장 차이는 비단 이뿐만이 아니다. 오페라재단 설립, 대구예술발전소 운영 주체 등을 놓고 대구시와 대구시의회는 오랫동안 합의점을 찾지 못하고 있다. 대구시는 이번 사태가 행여나 다른 사안에까지 불똥이 튀지나 않을지 고심하고 있는 눈치다.

◆정작 급한 것은 기금 적립

한편 재단 운영에서 가장 시급한 문제는 재단 적립금을 늘리는 문제라는 지적도 있다. 대구시와 대구시의회가 재단 적립금 문제는 도외시한 채 운영의 문제에만 급급하고 있다는 것.

경기문화재단의 경우 재단 적립금이 1천억원, 인천문화재단도 500억원 이상이지만 대구문화재단은 적립금이 217억원에 불과하다. 재단 창립 이후 대구시에서 단 한 번도 적립금을 내놓지 않았다. 다만 2011세계육상선수권대회 잉여금 30억원만 추가됐을 뿐이다. 한 문화계 인사는 "현재 경기, 인천, 부산 등은 매년 시에서 적립금을 늘려가고 있어 대구와 차이가 점점 커지고 있다. 이 같은 재단 운영의 본질에 대구시와 의회가 집중하길 바란다"고 말했다.

최세정기자 beacon@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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