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펜대 놓은 교수님 행주 들었다…이문조 전 영남대 교수

팔공산케이블카 CEO 변신…주방일 하며 직원과 소통 "육체노동으로 겸손

대학교수에서 팔공산케이블카 경영자로 변신한 이문조 전 교수가 손님에게 서빙을 하고 있다.
대학교수에서 팔공산케이블카 경영자로 변신한 이문조 전 교수가 손님에게 서빙을 하고 있다.

지난달 30일 오후 3시쯤 대구 동구 용수동 팔공산케이블카. 해발 820m에 있는 정상역 내 식당 주방에서 흰머리에 주름이 깊은 한 노인이 숟가락과 젓가락을 닦고 있었다. 그는 20대 남성 손님이 식사를 끝낸 뒤 빈 그릇을 반납하자 얼른 받아들고 "감사합니다"라며 고개를 숙였다. 곧바로 식탁으로 가 행주로 음식 찌꺼기를 치웠다.

그는 이문조(73) 전 영남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다. 그는 2006년 6월 퇴임한 뒤 2008년부터 팔공산케이블카의 경영자로 변신했지만 식당보조로서 식당일에도 직접 팔을 걷어붙이고 있다. 봄과 가을 사람들이 붐빌 때 매일 식당에서 일을 거든다. 수저 정리에서부터 식탁 청소, 설거지, 음식 나르기 등 굳은일을 마다하지 않는다. 그는 "몸으로 일하면서 삶에 대해 겸손함을 배웠고 점심도 제때 못 먹거나, 거르기 일쑤인 직원들을 보면서 얼마나 열악한 환경에서 고생을 하는지 알게 됐다"고 말했다.

식당보조를 하면서 처음엔 힘들고 서툴렀다. 허리가 아파 서 있기도 어려웠다. 일주일이 지나고 난 뒤 일이 몸에 배기 시작했다. 이 전 교수는 "평생 연구실에서 공부를 해왔기 때문에 주방일은 눈물이 날 정도로 힘들었지만 이내 그만둔다면 직원들 볼 면목이 없어서 참았다"고 회상했다.

처음에는 손님 중에 제자 등 아는 사람을 만나면 자신을 어떻게 볼까 염려도 했었다. 하지만 막상 마주친 지인들은 이 전 교수를 격려해주었다. 많은 나이에도 남들이 꺼리는 일을 나서서 하는 모습이 무척 새롭고 또 다른 가르침이 된다고 입을 모았다.

이 전 교수가 팔공산케이블카의 경영을 맡게 된 데는 코오롱그룹과의 인연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지금은 별도 법인으로 운영되는 팔공산케이블카는 1985년 코오롱그룹이 만들었다. 이동찬 코오롱그룹 명예회장의 맏사위이자 이웅열 코오롱그룹 회장의 매형인 그는 낙후돼가는 케이블카를 보고만 있을 수 없어서 선뜻 경영을 맡았다.

2008년부터 3년에 걸쳐 민자 30억원을 투자받아 건물과 시설을 대대적으로 개'보수했다. 콘크리트벽으로 막혀 있던 케이블카 정상역의 3층 건물을 유리벽으로 바꿨다. 낡은 기계 시설의 주요 부품을 전부 갈았다.

"개인이나 가족, 사회, 국가를 움직이는 원리는 다르지 않습니다. 공자, 아리스토텔레스 등 정치학에서 배운 내용을 나름대로 응용해 경영에 접목, 성과를 내고 보람을 느끼고 있습니다."

시설에 투자하고 서비스 질이 좋아지면서 팔공산케이블카는 최근 3년 사이 수익률은 10여% 늘어난 5억원대로 진입했고 방문객은 23만 명에서 27만 명으로 늘었다. 올해 4월부터는 27년 만에 처음으로 직원들의 규칙적인 휴식을 위해 월요일 휴무제를 시작했다. 또 올해부터 물이 부족한 아프리카 사람들을 돕기 위해 매년 수익의 일부를 유니세프에 기부할 계획이다.

이 전 교수는 "팔공산은 대구의 대표 관광지로 아름다운 봉우리와 토착신앙과 불교, 유교 등 다양한 이야기와 문화재가 있다"며 "돈을 번다는 생각보다 시민들에게 좋은 휴식공간을 제공해 지친 몸과 마음을 충전할 수 있게 하는 데 의미를 찾고 있다"고 말했다.

무엇보다 은퇴 이후 건강하게 살아가는 방법 중에 제일은 쉬지 않고 일을 하며 보람을 찾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늙어간다고 가만히 처져 있는 것이 아니라 육체노동을 하면서 감당해야 할 고통과 수고를 마다하지 않는다면 오히려 젊어진다는 걸 느낍니다."

서광호기자 kozmo@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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