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문화칼럼] 바람이 불 때 鳶(연)을 띄워야

가히 한류 파워이다. 자고 나면 달라지는 유튜브 조회 수 갱신 소식에 모두가 중독된다. 빌보드 차트를 식은 죽 먹기로 넘나들고 기네스 기록도 손쉽게 갈아치우고 있다. '젠틀맨'이 세계를 놀라게 하고 있는 것이다. '강남스타일' 후광효과에 그칠 것이라는 전망도 숙지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흥행이 남의 집 잔치처럼 씁쓸함으로 다가오는 건 왜일까. B급 정서를 풀어놨다는 세간의 뮤직비디오 비판에 동의해서가 아니다. 아무리 들여다봐도 미루어 짐작해 볼 행간의 의미를 놓치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다.

한류의 출발로는 1990년대 후반, 전통 가족 드라마 '사랑이 뭐길래'를 꼽는다. 이때의 시장은 중국을 비롯한 동남아까지였다. 뒤이은 '대장금'은 지역과 정서적 한계를 빠르게 극복해 중동과 아프리카를 비롯한 60여 개국 이상으로 뻗어 나갔다. 같은 시기 배용준, 보아, 동방신기 등의 활약으로 일본 대중문화계도 초토화됐다. 여기까지는 놀랍지만 '그럴 수도 있는 일'이었다. 하지만 2010년 즈음의 K팝 등장은 다르다. 전 세계를 휘어잡은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패러다임의 한류를 몰고 왔기 때문이다. 그 정점에 싸이가 있다. 그의 등장은 급기야 문화 현상이 되어 여러 담론을 낳고 있다.

혹자는 서양식 음악을 한국적 정서로 만들어 세계로 재발신한 성공을 두고 오래된 서구 콤플렉스라고 비판하기도 한다. 하지만 그 관점의 행간은 이렇다고 본다. 싸이 현상은 목적 지향의 마케팅 결과물이 아니다. 유튜브라는 디지털 로드를 통한 성과이다. 세계의 소비자들이 자발적으로 참여했다는 점이다. 과거 서구로부터의 일방통행적 문화 유입을 넘어선 반가운 일이다. 이러한 변화는 영역과 장르를 뛰어넘을 수 있다는 자신감을 준다. 싸이의 출현을 기점으로 앞으로의 한류는 지금과는 크게 다를 것이기에 다음 가정을 전제로 자문자답해 본다. 영국 시사 주간지 이코노미스트와 골드만삭스의 전망처럼 가까운 미래에 우리나라가 세계 경제 대국에 올라선다면, 싸이 현상에서 무얼 봐야 하나?

이 예측은 세계의 중심축이 아시아, 한국으로 이동한다는 관점이다. 세계로 발신할 모든 콘텐츠가 한류가 된다는 점이다. 즉 우리에게 익숙한, 우리도 잘 몰랐던, 우리의 삶 속 라이프 스타일 하나하나가 한류의 발신 콘텐츠라는 얘기이다. 또 다른 측면은 한류의 중심축이 서울이 아닐 수도 있음을 일깨운다. 바꿔 말하면 대구도 한류의 발신지가 될 수 있다는 의미가 된다. 개인적으로 서울과는 차별화된 콘텐츠가 있기에 지방이라 불린다고 생각한다. 서울을 향해 목을 뺄 이유가 없다는 이야기이다. 오히려 세계를 타깃으로 하면 상황은 달라진다는 사실을 이미 실감하고 있지 않은가.

생각해 보면 소위 한류 15년여 동안 대구는 없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드라마에서 출발해 싸이에 이르는 동안 한류의 발신지는 오로지 서울이었다. 대구가 문화 관련 슬로건을 몇 년째 외치고 있는 건 그 분위기를 잘 간파해서 일까. 아닌 것 같다. 한류의 키워드가 오래전부터 문화 장르를 넘어서고 있다는 사실에 비춰보면.

외교부 자료에 따르면 한류 팬클럽이 73개국 843개로 회원 수가 670만 명에 달한다고 한다. 대중문화 팬이 이 정도 규모라면 또 다른 장르에서도 '포스트 싸이'를 기대하게 한다. 지금까지는 대중문화가 한류를 주도한 성장판 이었다면 이제는 다르다. 의료와 관광의 융합 등 장르가 무한대로 확산되고 있으니 말이다. 새로운 한류의 시각으로 대구의 콘텐츠를 정리할 때라고 본다. 지금까지 온갖 좋은 말로 도시를 치장해 왔다면 그 기억과 낱말부터 걷어내면 좋겠다. 있는 그대로의 솔직함이 한류의 재료라는 점에서 그러하다. 도시 정책의 세계적 오피니언 리더인 에드워드 글레이저는 타 도시에 비해 실질소득이 낮은데도 사람들이 왜 뉴욕으로 몰려들겠느냐고 반문한다. '대구발(發)' 한류의 이유이기도 하고 과제이기도 하다.

한류는 단순히 미래 먹거리를 만들자는 이야기만은 아니다. 현재의 어젠다가 몰락하더라도 거뜬히 견뎌낼 훗날의 어젠다를 찾는 것으로 보면 어떨까. '대구발' 한류는 '포스트 싸이'의 다른 이름이다. 바람이 불 때 연(鳶)을 띄우는 법이다.

이권희/문화산업전문기업(주)ATBT 대표 lgh@atbt.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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