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고를 쳤습니다. 모 방송국의 합창단 모집공고를 보고 덜컥 원서를 낸 것입니다. 문제는 오디션이었지요. 평소 노래 부르기를 좋아하나 제대로 배워본 적이 없던 터라 가곡은 아무래도 무리였나 봅니다.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상상에 맡기겠습니다.
한마디로 의욕 과잉이었습니다. 집으로 가는 길 내내 웃고 말았지요. 어느새 도전이라는 이름으로 무모함이 멋대로 자라나고 있었던 것입니다. 잇따라 사고를 친 이유입니다.
그 원인을 곰곰이 생각해봤지요. 바로 조급함이었습니다. '은퇴한 사람이 웬 조급함'이라고 생각할 수 있겠습니다. 그런데 그게 아니었습니다. 무언가를 해야 한다는 압박감이 대단했던 모양입니다.
뭔가 하지 않으면 정말 낙오자가 되어버리지 않을까 하는 강박증에 가까운 압박입니다. 그래서 눈에 띄는 대로 도전하고 대책 없이 후회하는 일을 반복하고 있었던 것이지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내놓은 자료에 따르면 우리나라 평균퇴직연령이 53세입니다. 환갑이 되기에도 까마득한 날들이 그들 앞에 놓여 있지요. 사실 50대 퇴직자들이 맞이할 시간들은 즐길 날이 아니라 싸워야 할 날들에 가깝습니다. 시시각각 몰려오는 불안함과 싸워야 하고 과거의 화려함과도 싸워야 합니다. 사회의 따가운 눈초리도 이겨내야 하고 가족들의 시선도 극복해야 할 대상입니다. 가장 힘든 것은 이렇게 시간을 허비해서는 안 된다는 강박감과의 싸움입니다.
그들에게 은퇴는 삶의 자연스러운 한 부분으로 다가오지 않습니다. 억울하고 의기소침하고 때론 분노의 대상이 되기도 하지요. 몸과 마음이 극렬하게 저항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를 두고 어리석다고, 심지어 즐길 줄 모른다고 이야기할 수도 있겠지요.
정년 연장에 대한 불만 또한 만만치 않습니다. 정년 연장이 '젊은이들의 일자리 빼앗기'라는 시각 때문이겠지요. 늙음에 대한 우리 사회의 부정적 인식도 한몫하고 있겠지요. 박범신의 소설 '은교'에 이런 대목이 있습니다. '너희 젊음이 너희의 노력으로 얻은 상이 아니듯. 내 늙음도 내 잘못으로 받은 벌이 아니다.' 아주 명쾌하지요.
늙음이 그렇듯, 은퇴 역시 자신의 잘못으로 인한 벌이 아닐 것입니다. 오늘도 무엇인가를 해야 한다는 초조함에 좌충우돌하고 있을 50대 퇴직자에게 힘을 보내고 싶습니다.
김순재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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