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은 비록 무사시(도쿄 인근 지명)의 들녘에서 썩어가더라도, 남겨지는 야마토다마시(大和魂'일본의 정신)….'
비장함을 느끼게 하는 시다. 과격한 양이 사상가 요시다 쇼인(吉田松陰)이 1859년 막부에 의해 처형되기 전에 남긴 것인데, 사무라이의 의기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작품으로 평가된다. 그러나 그는 과거 일본 제국주의가 그렇게 부르짓던 '정한론(征韓論)과 '대동아공영론'의 주창자였다. "쉽게 손에 넣을 수 있는 조선과 만주, 그리고 중국의 영토를 점령하여 강국(유럽)과의 교역에서 잃은 것을 약자에 대한 착취로 메우는 것이 상책이다." 사무라이의 사고치고는 비겁하고 졸렬한데도, 일본 극우파는 그를 정신적 스승으로 숭배한다.
그의 사상은 메이지유신(明治維新)을 성공시키는 것으로 끝나야 했지만, 군국주의의 토대를 제공하고 오늘날까지 일본인들에게 인류의 보편적 양심을 저버리게 하는 결정적 역할을 한다. 그가 키운 제자와 추종자들이 타 민족, 특히 우리에게 저지른 죄악은 엄청나다. 이들은 명성황후 시해부터 을사늑약, 한일병합을 조직적으로 기획하고 실행했다. 초대 조선통감 이토 히로부미를 비롯해 2대 통감, 초대 총독, 2대 총독 등은 모두 요시다 쇼인과 동향인 조슈번(長州藩'현재의 야마구치 현) 출신이다. 이들의 당파는 '조슈번벌(藩閥)'이라 불렸는데, 일본 사계에서는 한일병합은 조슈번벌의 '작품'이라 평가하기도 한다.
5년 전 취재차 야마구치 현 시모노세키 시(市)에 갔다가 총선을 앞두고 시내 곳곳에 붙어 있는 국회의원 후보자의 포스터에서 현 총리인 아베 신조의 얼굴을 발견하고 다소 놀랐던 기억이 난다. 그 역시 극우파의 본향 출신이라 그들과 비슷한 세계관을 갖고 있지 않을까 싶었다. 얼마 전 아베 총리가 침략 전쟁을 부인하고 '천황 만세'를 외친 것만 봐도, 약탈적 제국주의 시대를 연 조슈인의 속성에서 한치도 벗어나지 못하고 있음을 보여줬다. 그의 정치적 스승이자 외할아버지인 기시 노부스케 전 총리가 종전 후 A급 전범으로 체포돼 복역하면서 요시다 쇼인의 시 '생명을 구걸하기 위해 이름을 더럽히지 말라'를 계속 읊조렸다는 일화나, 국회의원을 지낸 그의 아버지 아베 신타로의 밀랍인형이 '요시다 쇼인 기념관'에 전시돼 있는 현실도 그의 사고 형성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선진국의 정치 지도자라는 분이 아직도 군국주의 망령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니 씁쓸하기 짝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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