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지도부가 들어섰다. 당명도 갈아치웠다. 18대 대선에서 패배한 지 넉 달 보름 만의 일이다. 그동안 민주당의 곪아 터진 속은 만천하에 드러났고 대부분의 국민이 등을 돌렸다. 임시변통으로 비상대책위원회 체제가 당을 이끌었지만 역부족이었다. 120석이 넘는 의석에도 불구하고 현재 민주당은 반 식물정당이다. 두 차례의 대선과 총선에서 연전연패한데다 서울시장과 경기도지사 본선에서는 명함조차 못 내밀었다. 최근에는 실체도 없는 안철수 신당 앞에 한 자릿수 지지율로 곤두박질쳤다. 모름지기 민주화 이후 제1야당의 최대 위기 국면이다. 이러한 참화는 순전히 민주당의 자중지란에서 자초되었다. 패배에 대한 성찰도 없었거니와 진흙탕 내분으로 날 새는 줄도 몰랐으니까.
민주당의 가장 큰 고질병은 계파 패권주의와 정치적 책임윤리의 부재이다. 두 병은 동전의 배면과 같이 한 쌍의 몸으로 독을 퍼뜨려왔다. 민주당 내에는 여러 스펙트럼의 계파가 존재한다. 이 중 주요 계파들이 당을 좌지우지하는 사이 그들은 패권화되었다. 더 큰 문제는 민주당 내 패권 계파가 스스로를 실체가 없는 집단이라 여긴다는 것이다. 그러니 성찰할 일도 책임질 일도 없을 것이다. 그런데 대선평가를 분탕질하는 시도에서 그들의 실체는 더욱 분명하게 드러났다. 또 하나의 문제는 국민 여론과 동떨어진 착오적 인식이다. 패권 계파는 애당초 이길 수 없는 대선에서 그나마 선방했다고 자조한다. 정권교체 열망에 뒤통수를 치는 변명이다. 이런 식이라면 다음 선거에서도 국민들에게 표를 달라고 할 자격이 없다. 누가 패배주의에 찌든 정당에 사표를 갖다 바치겠는가.
민주당의 패권 계파는 정치적 책임윤리를 망각하고 있다. 이들의 인식은 가령 이런 식이다. "어떤 놈은 게으름 피우고 훼방까지 놓았는데 왜 열심히 일한 내가 독박을 써야 하느냐?" "완장 떼어놓고 물러나 있는데 더 이상 무엇을 책임지라는 말이냐?" 마치 골이 잔뜩 난 초등학교 급장의 모습을 연상케 한다. 이들은 "대선 패배가 정녕 내 탓이오"라고 국민의 흉금을 울린 적이 없다. 엊그제까지 집권의 청사진을 펼치던 제1야당의 책사들이 이런 식이면 곤란하다. 최선을 다했을지언정 더 큰 권한과 자원을 가진 이들이 무한 책임을 지는 것이 정치적 책임윤리이다. 그래야 아름다운 패배로 기억되고 다시 일어설 기회가 주어지는 것이다.
이번 민주당 전당대회에서 패권 계파는 뒷방으로 밀려났다. 그러나 스스로의 발걸음이 아닌 타력에 의해서였다. 이것이 민주당 정치적 책임윤리의 한계다. 정치 무대에서 지고지선은 존재하지 않는다. 오히려 나만이 옳다는 독선은 파시스트처럼 돌이킬 수 없는 참화를 불러일으킨다. 그러나 아직 소생의 씨앗이 있다. 천금 같은 당권 도전 기회를 저버린 김부겸의 '내 탓이오' 선언이 그것이다. 그리고 더 이상 주류집단에 안거하지 않겠다는 486 진보행동의 해체가 그것이다. 성찰과 책임 없는 혁신은 전도망상이자 이율배반적인 레토릭이다. 국민들도 혁신을 민주당이 입에 달고 사는 소음쯤으로 여긴다. 이제라도 계파 명찰을 쓰레기통에 처넣자는 신임 당대표의 호소는 초계파적인 '내 탓이오' 운동으로 구체화되어야 한다. 쓰라린 패배 앞에서 "정녕 내 탓이오"라고 고백하는 것이 정치적 책임윤리의 숙명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것이 민주당이 내일 승리할 수 있는 첩경이기도 하다.
장우영/대구가톨릭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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