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자포자기 삶이 굳어지기 전에…자립의 손길 내밀어야

[청년 노숙인, 사회 단절을 이어주자] 가족 해체→학업 중단→취업 포기

따뜻한 날씨 속에 대구 국채보상운동기념공원에서 민소매 차림의 한 젊은이가 벤치에 누워 잠을 청하고 있는 한 노숙자 곁을 지나고 있다. 노숙자의 봄은 언제 올는지? 우태욱기자 woo@msnet.co.kr
따뜻한 날씨 속에 대구 국채보상운동기념공원에서 민소매 차림의 한 젊은이가 벤치에 누워 잠을 청하고 있는 한 노숙자 곁을 지나고 있다. 노숙자의 봄은 언제 올는지? 우태욱기자 woo@msnet.co.kr

20, 30대 젊은 노숙인들이 사회 문제로 급부상할 조짐이다. 기존 노숙인은 40, 50대 중장년층이 주류를 이뤘다. 해직을 겪거나 사업이 망하면서 가정 해체 또는 가정에서 반(半) 자발적 일탈 등을 통해 노숙인으로 전락하던 것이 일반적인 행태였다.

하지만, 최근 들어 취업할 기회조차 얻지 못한 채 사각지대로 내몰리는 20, 30대들이 노숙인으로 전락하는 사례가 빈번해지고 있다. 그럼에도, 노숙인 지원 재활의 책임을 진 지방자치단체는 이들의 실태 파악조차 못 하고 있다. 이런 와중에 PC방, 만화방, 찜질방 등을 중심으로 잠재적 노숙인들도 서서히 증가하고 있다.

◆증가하는 20, 30대 노숙인

20, 30대 젊은 노숙인이 시간이 갈수록 늘어날 전망이다. 어린 나이에 가정 해체 또는 해체 직전의 아픔을 겪은 20, 30대는 이미 청소년기에 가출을 경험했거나 가족들로부터 관심을 받지 못한 경우가 적잖다. 가족의 지원을 받지 못한 채 성인이 됐고 사회에 발을 디뎠다.

통계청이 최근 발표한 '2012년 이혼 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이혼 건수는 무려 11만4천 건으로 조사됐다. 이처럼 이혼 등으로 가정이 해체되면서 정상적인 보호를 받지 못한 아이들이 성인이 되면서도 자립 기회를 얻지 못하고 있는 것.

노숙인쉼터에서 5개월째 생활하는 A(29) 씨는 "부모가 어린 나이에 이혼했고, 아버지도 정상적인 사회생활을 하지 못했다"며 "20대 초반에 집을 나온 뒤 휴대전화 명의를 빌려주면서 빚을 졌고, 지금은 도저히 빚을 갚을 수 없어서 집에 갈 엄두도 못낸다"고 했다.

장기화된 경기 침체 탓에 일자리를 얻기 어려워지자 젊은 노숙인들은 더욱 늘고 있다. 과거 가정해체 탓에 홀로 된 젊은이들이 주유소, 편의점 등지에서 아르바이트하며 미래를 꿈꿨지만 최근 들어 이마저도 불가능해졌다. 대학생들이 이런 일자리를 점령했기 때문이다.

건설업까지 불황을 겪으면서 이른바 막노동조차 구하기가 어려운 실정이다. 이 때문에 매달 최소 생계비라도 마련할 수 있는 정상적인 일자리를 얻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해졌다.

현시웅 대구노숙인상담지원센터장은 "제조업과 건설업이 함께 침체를 겪으면서 젊은 노숙인들이 돈을 벌기 점점 더 어려워지고 있다"며 "고학력에다 자격증까지 갖춘 젊은 노숙인이 있지만 취업할 곳이 없다"고 했다.

더 큰 문제는 현재 통계에 잡히는 20, 30대 노숙인은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1주일에 하루, 이틀만 일하고 PC방, 찜질방, 만화방 등지를 전전하는 20, 30대들이 적지 않다는 것.

김동옥 동대구노숙인쉼터 소장은 "PC방에서 하루에 한두 끼를 라면으로 때우면서 돈 없이 1주일 정도 버티다가 결국 쉼터로 찾아오는 20, 30대가 많다"며 "쉼터에 오더라도 주변의 시선 탓인지 오래 머무르지 않고 어디론가 떠난다"고 했다.

◆노숙의 노하우 전수

대구시가 추정하는 노숙인은 270여 명. 노숙인상담지원센터와 시내 5곳의 쉼터를 활용하거나 동대구역, 대구역 인근에서 지내는 노숙인들을 대상으로 한 통계다.

아직까지 전체 노숙인 중 20, 30대 노숙인이 차지하는 비중은 크지 않지만, 문제는 중장년층 노숙인과 함께 어울리면서 이른바 '노숙의 노하우(?)'가 자연스레 전수되고 있다는 것이다. 노숙인센터나 쉼터에서 장기간 함께 생활하면서 불거지는 부작용이다.

중장년층 노숙인들은 젊은 시절 비교적 다양한 직업을 경험하다가 막다른 골목에 몰리면서 불가피하게 노숙인으로 전락했다. 이 때문에 삶을 비관하는 염세주의나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패배주의에 빠지거나, 알코올 중독에 빠져 무차별 폭력을 휘두르는 경우도 흔히 발생하고 있다.

이런 전철을 밟지 않기 위해서라도 젊은 노숙인들에 대해 차별화된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으고 있다. 실제로 20, 30대 노숙인들은 동기를 부여하기도 어렵고 주변 환경도 극히 열악하지만 나름의 '희망'을 잃지 않고 있다는 분석이다.

김동옥 소장은 "중장년 노숙인들은 아무리 의지를 북돋워도 받아들이지 않지만 젊은 노숙인들은 나름 자신 만의 미래를 꿈꾼다"며 "이들에게 새 기회를 줄 수 있는 여건이 하루빨리 만들어져야 다시 사회로 복귀할 수 있다"고 했다.

◆주택지원과 직업 교육을 병행해야

전문가들은 젊은 노숙인에게 개인 공간을 마련해 주는 것이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젊은 노숙인들에게 부정적 학습이 이뤄질 우려가 있는 노숙인센터나 쉼터에서 벗어나 자신만의 공간을 마련해주고 스스로 자활할 수 있도록 도와줘야 한다는 것이다. 실제 젊은 노숙인들의 취업 걸림돌 중 하나가 주거 공간이 일정치 않다는 것이다. 노숙인센터에서 만난 B(28) 씨는 "공장에 취업하려고 해도 주거 공간이 없는 탓에 신분을 믿지 못하는 눈치였다"고 했다.

이에 따라 현재 시행되는 임시주거지원사업과 단신자주택제도 등을 더 활성화해 젊은 노숙인들이 집을 갖도록 하자는 것. 한국도시연구소 서종균 박사는 "독립해서 살아본 적이 없는 젊은 노숙인들이 자립할 수 있을 때까지 주택을 지원하고 그 밖에 필요한 각종 지원을 체계적으로 해 주는 방안이 외국에서도 현실적인 대안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고 했다.

현실성 있는 직업교육의 필요성도 나왔다. 컴퓨터 관련 자격증이나 건설업 관련 자격증을 소지한 젊은 노숙인이 있지만, 관련 업종 취업은 쉽지 않다. 따라서 비교적 취업이 손쉬운 서비스업 관련 직업교육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현시웅 센터장은 "제조업이나 건설업, 컴퓨터 관련 자격증보다 서비스업 관련 직업교육을 많이 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이에 대해 대구시 관계자는 "젊은 노숙인들에게 저렴하게 주택을 공급하는 제도가 이미 시행되고 있으며 앞으로 더 활성화할 예정"이라며 "직업교육의 일환으로 스스로 기술을 배워 활용할 수 있도록 소규모 작업장을 제공하는 '자활공방' 사업도 계획 중"이라고 했다.

기획취재팀=이창환기자 lc156@msnet.co.kr 황수영기자 swimming@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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