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의 달이지만 어린이를 둔 학부모들의 마음은 편치 않다. 동심을 멍들게 하는 사건이 잇따라 신문 사회면을 장식하고 있는 탓이다. 부산'수원'인천에서는 어린이집 원장'보육교사가 유아들을 폭행한 사실이 밝혀져 충격을 줬고, 광주에서는 원생을 태운 채 만취 음주운전을 한 어린이집 운전기사가 입건됐다. 그럴 뿐만 아니다. 어린이집 비리는 공금 빼돌리기, 보육교사 급여 갈취, 불량 급식 등 자고 일어나면 한 건씩 터질 정도로 잦다. 올해부터는 무상보육이 본격 시행되면서 늘어난 보조금만큼 허위청구'횡령이 증가할 것이란 우려도 나오고 있다. 그러나 모든 어린이집이 '비리의 온상'처럼 비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대구시와 경상북도의 보육정보센터의 추천을 통해 운영을 잘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 어린이집들을 찾아봤다.
◆숲, 유기농, 인성교육…
"자, 두 손을 모으고 눈을 감은 채 숲 속에서 무슨 소리가 나는지 들어보자.""송아지 울음소리요.""늑대 소리요."
"왱하는 소리는 무얼까?""전기톱으로 나무 자르는 소리요.""그럼, 나무는 왜 가지치기를 해줘야 할까?"
이달 7일 오후 대구 달서구 이곡2동 불미골 쉼터. 코흘리개들의 야외 수업이 한창이다. 인근에 있는 큰별어린이집(공립)의 원생들이 와룡산을 찾은 것이다. 사실 공부라 할 것도 없다. 루페(lupe'확대경)로 나뭇잎을 살펴보거나 할미꽃, 진달래꽃을 관찰하는 게 대부분이다. 1주일에 한 번씩 진행하는 숲 체험 프로그램은 지식 습득보다는 사회성 강화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하지만, 아이들의 모습은 사뭇 진지했다. 선생님의 설명에는 귀를 쫑긋 세웠고, 질문에는 앞다퉈 손을 들었다. 김덕선(46) 원장은 "자연의 기쁨을 느낄 수 있는 숲에서는 아이들 마음의 키가 한 뼘씩 더 크는 것 같다"며 "7년째 숲 프로그램을 운영하는데 학부모들의 평가가 좋다"고 귀띔했다.
어린이집에 아이를 보내는 부모들의 큰 걱정거리 중의 하나는 먹거리다. 실제로 국립농산물품질관리원 경북지원이 최근 대구경북지역 어린이집'유치원 등 200여 곳을 대상으로 원산지 관리 실태를 점검한 결과, 11곳이 적발됐다. 그런 점에서 대구 중구 남산동 백합어린이집(법인)은 '안전지대'라 할 만하다. 250여 명 아이들이 먹는 음식 재료의 90%가 샬트르 성바오로 수녀원의 수녀님이나 지인들이 키운 유기농 농산물이기 때문이다. 여미리암 원장 수녀는 "채소류는 어린이집 텃밭에서 재배한 걸 쓰고 쌀'계란 등은 친환경 인증 농장에서 구입한다"며 "아토피 증상이 있는 아이들도 우리 어린이집에서 몇 년 생활하면 낫는다고 소문이 나 대구 전역에서 학부모들의 문의가 이어지고 있다"고 했다.
이곳은 아이들의 정체성 확립과 인성교육에 중점을 두고 있다. 아이 스스로 '우리나라의 기둥'이라는 인식을 갖게끔 5월 한 달 동안 무궁화 코사지를 달아주고 있으며, 어버이날 선물도 부모님 심부름 등으로 받은 '사랑의 쿠폰'으로 아이들이 직접 구입하도록 지도했다. 여 원장은 "두 달에 한 번씩 열리는 학부모 교육의 참석률이 90%에 이른다는 것도 빼놓을 수 없는 자랑"이라고 덧붙였다.
◆독특한 프로그램, 다문화 어린이집도
남구 대명3동 병아리어린이집(민간)은 '발도르프 교육'을 하고 있다. 세계적으로 1천여 개의 학교와 2천여 개의 유치원에서 운영되고 있는 이 교육방식은 독일 철학자 루돌프 슈타이너가 1919년 설립한 학교 이름에서 비롯됐다. 아이들의 성장 단계에 맞춰 상상력과 감성 등 정서 발달을 강조하며 모방과 모범을 통한 학습, 감각 교육 등을 중요하게 여긴다.
이곳에서 아이들이 갖고 노는 인형들은 모두 교사들이 손수 만든 것들이다. 또 복도에는 밤처럼 생긴 마로니에 열매와 작은 자갈을 깔아 놓아 아이들이 감각을 키울 수 있도록 해놓았다. 특히 시, 노래, 율동이 담긴 리듬적인 놀이를 일컫는 라이겐
(reigen)은 발도르프 교육만의 특징이다. 김태숙(52) 원장은 "플라스틱이 아닌 원목, 헝겊인형 놀이를 통해서 아이들의 정서가 훨씬 밝아진다"며 "간식도 아이들이 직접 뜯어온 쑥으로 떡을 빚어 내놓곤 한다"고 소개했다.
결혼이민자가 크게 늘면서 국내 다문화가정 자녀 숫자는 10만 명을 헤아린다. 유엔 미래보고서는 2050년이면 다문화가족과 자녀들이 우리나라 인구의 21.3%를 차지할 것이란 전망을 내놓기도 했다. 그런 면에서 2008년 국내 1호 다문화 시범어린이집으로 선정된 경북 예천군에 있는 성락어린이집(법인)은 다문화 보육정책의 본보기가 되고 있다.
2005년부터 다문화교육을 실시하고 있는 이곳에는 현재 베트남'중국'필리핀 등에서 온 부모를 둔 어린이 40여 명이 보통 아이들과 함께 다닌다. 외국 전통 옷을 입고 다문화 패션쇼를 하거나 외국 요리를 만드는 광경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아이들의 놀이 이름도 '켄다마' '포사다''따까오' 등등 글로벌하다.
김혜숙(45) 원장은 "각국의 문화, 놀이를 익히면서 아이들이 어릴 때부터 다문화가정에 대한 편견을 갖지 않게 된다"며 "아이들이 문화의 차이에 대해 충분히 이해하게 하고 편안하게 상호작용을 하도록 지도하고 있다"고 했다. 김 원장은 2010년 전국우수보육프로그램 공모전에서 최우수상을 받은 데 이어 2011년 전국보육인대회에서 대통령 표창을 받은 바 있다.
◆어린이 전용차량에다 가족 같은 분위기
2001년 문을 연 구미시 고아읍 태양어린이집(민간)에는 자랑거리가 여럿 있다. 매월 구체적인 인성교육 운영계획을 수립, 실천해온 점을 높이 평가받아 지난해 보건복지부'교육과학기술부로부터 경북지역 최우수 인성교육 어린이집에 선정되기도 했다. 아이들을 위한 시설도 뛰어나다. 660㎡(약 200평)에 이르는 마당은 맘껏 뛰어놀 수 있는 잔디밭이고, 실내에는 수영장도 마련돼 있다.
특히 이곳은 드물게도 어린이 전용으로 설계된 통학차량을 운영하고 있어 눈길을 끈다. 좌석이 어린이 신체에 맞게 디자인돼 있어 아이들이 안전벨트를 매기 편하고, 승차 발판도 일반 차량보다 낮다.
오대호(46) 원장은 "통학차량 사고를 예방하기 위해 3년 전 약 6천만원을 들여 구입했다"며 "어린이 사고를 운전기사 개인의 부주의 탓만으로 돌려서는 안 된다"고 했다.
직장 어린이집은 워킹맘들에게 최고의 선택으로 꼽힌다. 기업의 특성에 맞춘 탄력 근무, 기업의 각종 지원 혜택 등으로 인기가 높다. 포항시 남구 대잠동에 있는 포항성모병원 어린이집도 그런 곳 가운데 하나다. 병원 직원 자녀 60여 명이 영'유아반으로 나뉘어 다니는 이곳은 학부모들에게 항상 개방돼 있어 아이를 가까이 두고 볼 수 있을 뿐 아니라 맞춤식 운영을 통해 여성취업 활성화에도 기여하고 있다.
박정화(38) 원장은 "종교단체에서 수탁운영하고 있어 학부모들의 신뢰가 높은 편"이라며 "일반인들에게도 문을 열고는 있지만, 항상 대기자가 많은 상태이다"고 전했다.
전국 4만3천 개에 이르는 어린이집 가운데 가장 많은 유형은 가정형이다. 절반가량 된다. 20명 이하 소규모의 인원이 일반 가정집과 비슷한 환경에서 생애 첫 사회활동을 배운다는 게 장점이다. 포항시 북구 득량동의 한 아파트 1층에 자리 잡은 야호어린이집은 지난해 보건복지부가 실시한 어린이집 평가인증에서 우수 어린이집에 선정됐다. 포항시 평가인증 컨설턴트로도 활동하고 있는 전양미(45) 원장은 "엄마 품을 처음 떠나보는 아이들은 자기 집 같은 분위기에서 분리불안을 덜 느끼게 된다"며 "4세 이상 원아들은 규모가 더 큰 어린이집'유치원으로 옮기도록 하고 있다"고 했다.
이상헌기자 davai@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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