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중 정부는 1999년 지방이양추진위원회를 설치해 중앙정부의 행정권한을 하나하나 지방자치단체로 이양하기 시작했다. 이 정책은 이후 노무현 정부가 2003년에 만든 정부혁신지방분권위원회의 활동과 상승작용을 일으키며 활기를 이어갔다. 그런데 의원입법에 의해 이들 두 위원회를 폐지하고 2008년에 신설된 지방분권촉진위원회는 중앙정부를 두둔하고 살찌운 4대강 사업 등에 밀려 소기의 성과를 내지 못했다.
이명박 정부 때는 이와 더불어 2010년의 의원입법에 의해 이듬해 마련된 지방행정체제개편추진위원회도 하는 일 없이 예산과 정원의 행정자원을 낭비했다. 2005년 이후 정치권이 부단히 시도해 온 지방행정체제의 개편은 시·도와 시·군·자치구로 이루어져 있는 지방자치단체의 이층체제를 단층으로 바꾸며 시·군·자치구를 큼직큼직하게 합치려는 속셈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런데 단층으로의 이행은 시·도에서 하고 있는 사무·사업의 상당 부분을 국가로 넘기겠다는 중앙집권적인 발상이며, 그러지 않아도 평균 규모가 OECD 회원국 중에서 가장 큰 시·군·자치구의 덩치를 더욱 키우는 것은 주민자치의 원리에 찬물을 끼얹겠다는 뜻이다.
지방행정체제개편추진위원회는 최근 개점휴업 중이다. 관계 장관 등의 당연직 위원을 제외하고 위촉 위원들의 임기가 지난 2월 중순에 끝났는데도 박근혜 대통령이 제2기 위원들을 위촉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5년 한시법에 의해 설치된 지방분권촉진위원회는 이달 5월 말 시한을 맞이한다. 이런 상황에서 이들 두 위원회의 역할을 이어받는 지방자치발전위원회의 창설 등을 담은 '지방분권 및 지방행정체제 개편에 관한 특별법안'이 올해 3월 새누리당 박성효 의원 등에 의해 발의되어 지난 5월 7일 국회에서 가결되었다.
그런데 이 법안은 실은 안전행정부가 만들어 국회의원들에게 발의하도록 주문한 것이었다. 정부가 국회에 법안을 제출하는 정부입법은 '행정절차법'의 규정 등에 따라 중앙행정기관에서 법안을 초안한 다음 관계 기관과의 협의, 당'정 협의, 입법예고, 규제개혁위원회 심사, 법제처 심사, 차관회의, 국무회의 등 복잡한 절차를 거치지 않으면 안 된다. 이런 힘든 과정을 건너뛰기 위해 중앙행정기관이 소관 사항에 관한 입법을 국회의원들에게 청부하는 일이 있는데 이 특별법이 바로 이와 같이 탈법적인 청부입법으로 마련되어 곧 공포될 예정이다.
태생은 떳떳하지 않지만 이 특별법에 의해 설치될 지방자치발전위원회에 기대하는 것이 없지는 않다. 이는 지방행정체제개편추진위원회와 같이 안전행정부 장관 등 당연직 위원 3명을 비롯해 대통령이 추천하는 6명, 국회의장이 추천하는 10명, 그리고 시'도지사협의회 등 지방 4대 협의체의 대표자가 각각 2명씩 추천하는 8명으로 구성된다. 위원회의 구성에서 지적해 두고 싶은 것은 이명박 정부 때처럼 서울 등 수도권의 사람들로 위원회를 채워서는 안 될 것이다. 회의도 매번 서울에서만 열 것이 아니라 세종특별자치시 등 각지에서 개최하자.
지방분권에서는 지방이양추진위원회 이래 중앙정부가 가지고 있는 권한'재정의 일부를 지방자치단체로 넘기는 일에 주력해 왔는데, 앞으로는 이뿐만 아니라 지방자치단체가 행정조직 등의 제도를 자율적으로 선택하여 운용할 수 있는 여지를 넓히며 지방자치단체의 행정과정에 중앙정부가 승인'허가 등으로 끼어드는 관여를 점차 줄여나갈 것도 기대한다. 바꾸어 말하자면 지방자치단체가 다룰 수 있는 업무의 범위를 확장하는 종전의 노선과 그 행정활동의 자유도를 확충하는 새로운 노선의 투 트랙으로 지방분권을 추진하자.
그리고 지방행정체제의 개편에서는 지방자치의 이론과 실제에서 찾아볼 수 없는 공허한 논의는 그만하자. 인구나 면적이 과소해 합치는 것이 바람직한 자치구도 있지만 지방자치단체의 이층체제는 이대로 두자. 다만 시·군·자치구의 경계를 조정해야 할 곳은 더러 있다. 서울 광화문의 어느 빌딩을 1층에서 11층까지는 종로구가, 나머지 12층에서 20층까지는 중구가 각각 관할하고 있단다. 주민의 생활을 불편하게 하는 이런 얼토당토않은 경계가 전국의 시·군·자치구 사이를 관통하고 있는데 이런 것은 하루빨리 바로잡아야 한다.
강재호<부산대 행정대학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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