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에 둘째 아이가 다니는 초등학교에서는 부모님 직장 체험 학습이라는 것을 했다. 부모님 직장에서 부모님 일하시는 모습을 보고, 부모님께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도록 하고, 참된 진로 교육을 한다는 취지의 프로그램이었다. 예전에 나도 기획 업무를 맡았을 때, 학부모 참여 프로그램들을 많이 만들어서 학교 교육 우수 사례로 발표도 하고 했었는데, 막상 학부모가 되어 보니 참 몹쓸 짓을 많이 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반성을 하면서 아이와 함께 학교로 출근을 했다.
학교에 데려다 놓자 아이는 신나게 학교 여기저기를 돌아다녔다. 과학실에 가서 개구리 해부 모형 가지고 놀고, 남아공에서 온 원어민 선생하고 자기가 알고 있는 모든 영어를 동원하여 이야기를 했다. 우리 학교 총각 선생님하고 자기 담임선생님 사이의 사랑의 메신저가 되겠다고 자처하며 총각 선생님하고 찍은 사진을 바로 자기 반 홈페이지에 올리기도 했다. 집에 와서 아이한테 오늘 제일 기억에 남는 게 뭐냐고 물었더니 아이는 "음, 선생님들한테서 용돈 받은 거!"라고 답했다. 다른 건 기억나는 게 없느냐고 물었더니, "개구리 해부한 거. 총각 선생님이랑 4D 프레임 만든 거, 형아들이랑 공놀이 한 거…." 계속 이야기가 나왔지만 '부모님께 감사하는 마음'이나 '참된 진로 교육'과 연관시킬 만한 내용은 없었다. 그렇지만 나는 "녀석, 진정한 재미를 아는구나" 하고 웃으며, 이런 기회를 만들어준 아이 학교에 감사했다.
일이 계획한 대로 진행되지 않거나 목적한 것과 다르게 엉뚱한 길로 빠지는 것을 흔히 '삼천포로 빠진다'고 한다. 왜 하필 삼천포냐에 대해서 진주로 가야 하는데 차를 잘못 타 삼천포로 가는 경우가 많아서 그런 말이 생겼다고 설명하기도 하고, 열심히 일 잘하던 사람이 삼천포에 가서는 거기의 자연에 매료되어 천하태평이 되어서 돌아온다고 해서 그렇다고 하기도 한다. 대부분의 어원 풀이가 그렇듯이 믿거나 말거나인데, 표준국어대사전에서는 앞의 것을 정설로 인정하고 있다. 그래서 삼천포 사람들은 '삼천포로 빠진다'는 말이 부정적인 의미를 가지고 있다고 싫어한다고 한다.
그러나 일이 계획한 대로만 진행되고, 목표한 것에 착실히 가기만 하는 것이 좋은 것이고, 엉뚱한 방향으로 빠지는 게 나쁜 것이라고 단정하기는 어렵다. 박민규의 소설 '삼미 슈퍼스타즈 마지막 팬클럽'에서는 계획대로, 목표를 이루며 살아온 주인공이 실은 매우 무미건조한 삶을 살았다는 것을 깨닫고, 실직을 계기로 삼천포로 빠져 보는 내용이 나온다. 그래서 얻은 깨달음이 진정한 삶의 재미는 삼천포에 있다는 것이다. 우리 아이도 목적대로 직업의 세계를 탐구하고, 부모님이 일하는 것이 얼마나 힘든지만 보려고 했다면, 그날 하루 누렸던 재미있는 모든 것들은 얻지 못했을 수도 있다. 원래 목적지로 가는 것도 좋지만 아름다운 바다와 시인 박재삼이 있는 곳, 삼천포에 푹 빠져 보는 것도 좋을 것이다.
민송기<능인고 교사·chamtc@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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