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력자의 관심과 지원은 문화계를 육성하는 자양분이지만, 부적절한 개입은 문화계를 황폐화시키는 독이 된다. 지금 대구 사회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지닌 문화계의 절대 갑(甲)으로는 김범일 대구시장과 일각에서 '문화 부시장'으로 불리는 이재녕 대구시의회 문화복지위원장을 빼놓을 수 없다. 그만큼 행동 하나, 말 한마디가 수많은 문화계 을(乙)에게 영향을 끼친다.
우선 김범일 대구시장부터 보자. 김 시장은 최근 대구 시민의 혈세를 들여 서울 수지오페라단을 초청하기로 했다. 수지오페라단은 국내 오페라단 가운데 후원금을 가장 많이 받는 '빵빵한' 오페라단이다. 수지오페라단의 이런 여유는 올해만 해도 5억 원을 후원한 BMW 코리아 김효준 대표의 전폭적인 지원에서 비롯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근데 BMW 김 대표가 수지오페라단의 차기작 '리골레토'를 초청해 달라고 김범일 시장과 송영길 인천시장에게 각각 타진했다. 인천시장은 거절했고, 대구시장은 받아들였다. 여윳돈이 별로 없는 대구시는 수지오페라단 초청 비용(3억 원 선)을 댈 방법을 찾다가 대구오페라하우스가 연말 기획 공연(11월 29, 30일)하는 방식으로 해결하기로 결정했다.
기름기 도는 수지오페라단의 대구 공연에 시민 혈세를 들이기로 한 대구시장의 선택은 당장 10월 대구오페라축제로 불똥이 튀었다. 대구오페라하우스는 그간 매년 3억 원 내외 예산으로 대구오페라축제에 참여했는데, 올해는 수지 건으로 빠지게 됐다. 자연 대구오페라축제 예산은 쪼그라들게 됐고, 돈이 부족해 작년 매회 전석 매진 기록을 남긴 어린이 인형극(오페라를 주제로 한 가족 관람극)을 올리지 못하게 됐다. 축제 관람객을 위한 포토존이나 전시물도 궁색하게 작년 것을 재활용하게 됐다.
이재녕 대구시의회 문화복지위원장의 문화계 간섭도 연타석으로 이어지고 있다. 최근에는 이 문복위원장이 주도한 대구문화재단 조례개정안이 대구문화재단 이사진의 큰 반발을 불러일으키며 선임직 이사들의 집단 사퇴 사태로 번졌다. 당연직을 제외한 문화재단 선임직 이사 12명 가운데 3분의 2인 8명(유재성 이하석 배성혁 문무학 배선주 안혜령 홍문종 노병수)의 이사와 선임직 감사(문병우)가 개정안 수용 불가를 외치며 반발하고 있다. 대구문화재단 조례개정안을 분석한 대구지방변호사회 관계자도 문제점을 지적했다. 첫째는 집행부 일에 대구시의회가 간섭할 여지를 남겼고, 대구시장의 영향력을 지나치게 강화시켰으며, 임의조항이 많아서 이럴 수도 저럴 수도 있는 여지가 너무 많다는 것이다.
과연 개정안처럼 이사가 되지 못하는 상근 대표 또는 이사가 될 수 있는 비상근 대표가 얼마나 창의적인 발상으로 문화를 융성시키며, 국비 프로젝트를 열심히 따오려고 노력할까? 만약 수지오페라단 초청 건을 대구시장이 대구문화재단에 떠맡기려 했다고 상상해 보자. 대구문화재단 차기 상근 대표가 그를 반대한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 수 있을까? 엄청 기분이 나빠진 대구문화재단 이사장인 대구시장이 이사회의 의결을 거쳐서 해임할 수도 있다. 이런 일이 벌어지지 말라고 누가 보장할 수 있는가?
모두들 무서워서 앞에서는 바른말을 하지 못하는 것으로 알려진 이재녕 문화복지위원장이 의도했든 아니든 대구시장은 이번 개정안이 발효된다면, 권한이 크게 강화된다. 대구문화재단 대표가 이사장인 대구시장의 지휘를 받도록 명문화해 놓았기 때문이다. 지난 금요일 대구시 고위 관계자는 "대구시의회와의 관계를 생각해서 이번 개정안은 그냥 받아들이고, 지역 문화계의 바람대로 시장이 문화재단이사회 의장을 맡지 않는 방향으로 재개정하는 것을 염두에 두고 있다"고 한 말이 사실이라면 김범일 대구시장의 선택은 분명해진다. 다시 한 번 더 실수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대구문화재단 대표이사가 중도 사퇴했으면 대번에 이사회를 소집하고, 공청회나 토론회와 같은 공론장에서 의견을 수렴하는 적극성을 보였어야 했으나 아무런 공식 행사도 갖지 않았다. 세간에서 이번 개정안을 두고, 김범일 대구시장이 이재녕 대구시의회 문화복지위원장과 뒤로 손잡고 있는 게 아니냐는 의혹이 그래서 나온다. 만약 그게 아니라면, 대구시장의 선택은 하나뿐이다. 대구문화재단 개정조례안에 대한 재의를 요구하는 것이다. 만약 재의가 나오지 않으면 대구 시민과 대구 문화계는 내년 2014년 지방선거에서 이들을 평가하는 길 외에는 방법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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