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 다녀왔습니다!"
우렁찬 목소리와 함께 이동원(가명'11) 군이 미장원 문을 열고 들어왔다. 손님의 머리를 만지고 있던 어머니 구경숙(가명'47) 씨는 동원 군을 반갑게 맞았다.
"오늘 많이 더웠지? 아이스크림이라도 사 먹으렴."
구 씨는 동원이에게 천 원짜리를 쥐여주면서 내보냈다. 이를 본 손님이 동원이를 보면서 한마디 했다. "아이가 참 자그마하네요."
구 씨는 웃으며 대답했다. "글쎄요, 전 다른 친구들이 비정상적으로 큰 거 같은데요?"
◆키 작아도 기죽지 않는 아이
동원이의 키는 작다. 초등학교 4학년인 동원이의 키는 130㎝가 되지 않는다. 11세 남자 아이의 평균 신장이 145.9㎝이니 작아도 한참 작은 편이다. 그러나 동원이는 이를 대수롭지 않게 여긴다.
"신체검사할 때 친구들이 '너는 키가 왜 이렇게 작아?'라고 물어보기에 저는 그냥 웃으면서 '내가 좀 작긴 하지?'라고 했더니 친구들이 더는 키 이야기를 안 하더라고요. 그리고 저보다 키가 더 작은 여자아이도 한 명 있어 괜찮아요."
동원이의 등은 활처럼 휘어 있다. 동원이는 태어날 때부터 척추에 문제가 있었고 왼손도 제대로 쥐고 펴지 못했다. 지금도 동원이의 왼손 둘째, 넷째 손가락은 구부러져 잘 펴지지 않는다. 게다가 등이 활처럼 휘어져 있다 보니 가슴이 앞으로 튀어나와 있고, 이 때문에 장기가 자리잡히는 위치 또한 제대로 확보가 안 돼 있다. 그래서인지 동원이는 무리하게 운동을 하면 가슴이 아프다고 호소한다. 하지만 동원이는 "괜찮아요, 잠깐 쉬었다 다시 운동하면 돼요"라며 아무렇지도 않은 듯 말한다.
동원이는 친구들 사이에서 성격 좋고 활발한 친구로 통한다. 친구들과 축구하는 걸 아주 좋아하고, 얼마 전에는 운동회에서 달리기 1등을 했다.
"운동회 때 달리기 1등을 하니까 친구들이 '너 작년보다 더 빨라졌다'며 놀라워하더라고요. 선생님도 놀라셨어요. 다음에는 꼭 이어달리기 반 대표나 학년 대표로 나갈 수 있음 좋겠어요."
또래 친구들처럼 동원이의 꿈도 자꾸 바뀐다. 축구선수를 할까 하다가 소방관도 하고 싶고, 어머니가 의사를 하라고 하니 소아과의사도 되고 싶단다.
"왜 소아과 의사를 하고 싶으냐면요…. 수술하는 게 무서워서요. 소아과 의사는 수술을 안 할 것 같아서요."
◆동원이는 해맑게 웃지만…
동원이와 다르게 어머니 구 씨는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작은 키와 활처럼 휘어진 등이 동원이의 생명을 위협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구 씨는 임신 7개월 만에 동원이를 낳았다. 태어날 때부터 척추와 왼손 관절이 휘어져 있었다. 왼손을 잘 펴지 못해 병원을 찾았다가 척추측만이라는 진단을 받았다.
"맨 처음 척추측만이란 얘기를 들었을 때는 '좀 더 커서 수술하면 괜찮을 거야'라고 생각했어요. 하지만 의사 선생님 말씀은 더 심각하다더군요. 척추가 너무 휘어 있는데다 아직 성장 단계라 얼마만큼 더 휠지 모르는 상태에서 수술은 불가능하다고 하더군요."
더 심각한 문제는 척추가 휘면서 척추 안에 있는 신경들을 점점 더 누르게 될 것이고, 뇌로부터 신경전달물질이 제대로 전달 안 돼 정신질환이 발생하거나 심각하면 생명을 잃게 될 수도 있다는 점이다.
동원이의 키가 작은 것은 성장호르몬 분비에 문제가 있기 때문이다. 병원에서는 동원이의 뇌에서 분비되는 성장호르몬이 뇌로 전달이 잘 안 돼 성장이 또래에 비해 많이 늦어지고 있다고 했다. 성장이 지연되는 문제도 있지만 자칫 호르몬 분비에 문제가 생겨 다른 병이 발생할 수도 있다는 의사 선생님의 말에 구 씨는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아직은 어리니 괜찮은데, 곧 사춘기가 될 거잖아요, 친구들은 키도 크고 2차 성징도 나타나는데 자기만 나타나지 않는다면 동원이한테도, 동원이 친구들 사이에도 문제가 생기지 않을까요?"
◆지금 빨리 치료해야 하는데…
병원에서는 "지금 빨리 동원이를 치료해야 한다"고 하지만 구 씨 형편에 치료를 결심하는 게 쉽지 않다. 구 씨는 미장원을 4년 동안 같은 자리에서 운영하고 있지만 한 달 수입이 50만원을 넘은 적이 없다. 돈을 마련하기 위해 아르바이트로 목욕탕 청소도 해 보고 속눈썹 연장술 같은 미용시술도 해 봤지만 미장원 수입과 합쳐도 70만원이 될까 말까 했다.
갚아야 할 빚도 아직 남아 있다. 지금은 이혼했지만 구 씨의 전 남편이 음주운전으로 교통사고를 내 남편의 수입은 물론이고 구 씨의 미장원 수입까지 합의금과 벌금으로 내야 했다. 합의금이 모자라 여기저기서 빌렸던 돈은 점점 불어나 부부가 감당할 수 없을 정도가 됐다. 여기에다 전 남편이 폭력까지 휘두르자 참다 못한 구 씨는 2003년 이혼을 했고, 구 씨 명의로 빌린 돈은 모두 구 씨가 떠안아야 했다. 어쩔 수 없이 2008년 개인파산을 신청했고, 빚 대부분에 대해 면책특권을 받았다.
"아직도 1천만원의 빚이 남아 있어요. 지인들에게 빌린 돈인데, 매달 15만원씩 갚고 있지만 밀릴 때가 많아요. 그나마 다행인 건 돈을 빌려준 분들이 제 사정을 아시고는 크게 독촉하지 않으신다는 거죠."
구 씨는 동원이와 보증금 100만원, 월세 25만원인 미장원에 딸린 방에서 살고 있다. 50만원도 안 되는 수입으로 빚과 월세를 내는 것도 힘에 부친다. 올해 11세인 동원이는 지금부터 치료를 시작하면 성과를 볼 수 있다. 하지만 현재 사정으로는 동원이 치료는 엄두도 낼 수 없는 일이다.
구 씨는 동원이가 바르게만 자라준다면 무슨 짓이든 할 수 있다는 마음으로 살고 있다.
"학교 선생님들이 동원이가 키는 작아도 친구들과 잘 어울리고 학교생활 열심히 하는 걸 보고 '마음이 참 단단하고 밝은 아이'라고 말씀하세요. 동원이가 계속 밝은 성격을 유지하면서 자라줬으면 좋겠는데, 최악의 사태가 생기면 어쩌나 싶어 그게 제일 걱정이에요."
이화섭기자 lhsskf@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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