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0년대 중반의 어느 날 김포 공항에 도착했을 때였다. 당시 삼성의 새로운 광고 문구를 보았는데 광고판 자체가 매우 커서 시선이 마주치는 사람들에게 큰소리로 소리치는 듯해 보였다. 'Samsung-The best company in the world'.(삼성-세계 최고의 회사) 순간 웃음이 나왔고 잠시 후 이 광고 문장이 재미로 보는 작품 같은 것인지 아니면 진짜 광고인지 한순간 의아한 생각이 들 정도였다.
어쨌든 한국에 와서 처음으로 배운 것들은 이곳의 모든 것이 '최고' '최대' '최선'의 것들이라는 것이었다. 독일에서는 겸손을 미덕으로 여겨선지 이런 큰소리치는 듯한 자랑식의 표현이 오히려 역효과를 낸다. 오히려 최대, 최고 등의 수식어가 붙은 것들에 대해서는 맞지 않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한 이유를 찾아보게 만든다.
어떤 이가 다가와서는 나는 최고라고 말을 걸어왔다면 순간 어떤 생각이 들겠는가? 순간 정상적이고 자연스런 반응으로 이상하다고 말하고 싶은 욕구가 생길 것이다. 그래서 통역가와 컨설턴트로 더 많은 일을 하게 되면서부터 한국 회사들에 우선적으로 부탁하는 것 중의 한 가지가 국외 비즈니스 상대들에게 좀 더 겸손하고 지나치게 과장하지 말라는 것이다.
2008년 약 20여 개 나라의 대사들로 이루어진 대표단과 함께 여수를 방문했던 적이 있다. 그들이야말로 지구촌 곳곳에 대해 많은 것을 보고 알아온 국제적 감각이 뛰어난 사람들이었다. 2012 엑스포가 어떤 것인지에 대한 홍보 애니메이션 영상물을 보기 위해 여수엑스포 홍보관에 들어가게 되었다. 10분간 상영된 영상물은 내가 짐작한 그대로였다. 멋진 컴퓨터 그래픽과 메시지는 현실과는 동떨어진 것이었다.
영상물은 2012년 여수는 새로운 중심이 될 것이며, 전 세계는 오직 여수를 바라보게 될 것이며, 여수엑스포는 세계 역사를 바꾸게 될 거라는 식이었다. 홍보 영상물을 보고 있는 동안 그 자리에 있던 사람들은 웃음이 새어 나오는 것을 참아야 했고 끝났을 때 그날 통역을 부탁받은 나는 방문단에게 일종의 사과를 하고 영상물에 대해서는 재미있고 즐거운 것으로 받아들여 주기를 부탁했다. 왜냐하면 영상물이 전달하고자 하는 내용을 누구도 심각하게 받아들일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다시 삼성에 관한 얘기로 돌아가 보자. '디 에아츠테'(의사들)라는 독일의 한 유명한 펑크록 밴드가 있다. 그들은 자신들을 '세계 최고의 밴드'라고 늘 주장한다. 그러나 그들의 음악은 완전히 말도 안 되게 웃기고 늘 기발하고 능청스러운 재미를 만들어낸다. 그들은 자신들의 '세계 최고'라는 선전 구호를 절대로 진지하게 받아들이길 원치 않는다.
같은 문화권 안의 사람들에게는 대단하고 동기부여가 될 만한 말들이 다른 문화권의 사람들에게는 그저 웃기거나 모욕적인 이야기로 들릴 수도 있다. 그래서 같은 문화적 배경으로부터 떨어져 있는 이들에게 어떤 메시지를 보내기 전에는 목표 대상을 정확히 이해하는 사람들에게 자문하는 것이 현명할 것이다.
이제 삼성은 세계 최고란 선전 문구를 지속적으로 내건 지 20여 년이 되었고 그동안 큰 성장을 하며 많은 것을 배웠음에 틀림없다. 그러나 최근 미국 뉴욕에서 있었던 갤럭시4의 론칭 이벤트에서 그들은 브로드웨이식의 쇼를 넣었고 결국 이것은 세계 곳곳에 참으로 큰 헤드라인을 장식하는 결과를 불러일으켰다. 안타깝게도 모두 호평이 아니었다.
그 일이 있은 지 몇 주 후 인도에서 개최되었던 또 다른 한 론칭 행사에서는 '강남 스타일'을 '삼성 스타일'로 개사한 저급한 퍼포먼스를 선보였다. 이는 현지인에게는 너무도 기이하고 선정적으로 비쳐 또 한 번 조롱당하고 말았다. 분명 삼성이 돈이 없었다곤 생각하긴 어렵다. 그러나 꼭 그렇게 해야 할 필요성을 못 느낀다면, 아니면 자문가와 일을 하면서도 조언을 듣지 않는다면 어떻게 지구촌 사람들과 소통할 수 있을까?
지난 1990년대와 비교해 본다면 한국은 지난 20년간 더욱더 국제화되었고 삼성과 같은 한국의 기업들은 세계 시장을 관통하고 있다. 그러나 그들이 바른 메시지로 한국과 그들의 상품과 행사를 홍보하는가를 생각하면, 여전히 개선해야 할 여지가 남아 있다고 확신한다.
안톤 숄츠/코리아컨설트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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