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별별세상 별난 인생] 솟대의 매력에 빠진 고교 교사 이성철 씨

깎고 다듬고 푹 빠져 10년…전문작가 됐지요

'밥 짓는 연기가 낮게 휘감아 도는 길을 따라 오래된 마을로 들어서면 노을 진 하늘가에 나무 새 한 마리가 떠 있다.' 우리나라 전통문화인 '솟대'를 표현한 말이다. 우리나라의 솟대는 고대로 올라갈수록 천상의 세계와 관계된 상징성이 강하다. 하지만 후대에는 마을을 지키는 액막이와 풍요를 기원하는 대상이 되었다. 대구공업고등학교 자동차과 연구실. 벽걸이 시계 모양 등 다양한 솟대로 빽빽하다. 앙증맞은 소품에서부터 농구선수처럼 키가 큰 작품 등 다양한 솟대 모양이 눈길을 사로잡는다. 이색 풍경이다. 마을 앞에 수호신으로 서 있어야 할 솟대가 왜 이곳에 자리 잡고 있을까?

이 솟대의 주인은 이 학교 이성철(54) 교사다. 이 교사는 10년이 넘도록 솟대 사랑에 빠져 있다. 틈만 나면 이상하게 생긴 나무를 쓱싹쓱싹, 자르고 깎고 다듬는 재미에 시간 가는 줄 모른다. 이 교사는 솟대와 운명처럼 만났다.

"친구와 함께 전통찻집에서 차를 마시던 중 찻집에서 판매하는 솟대 작품을 본 순간 '저 정도라면 나도 만들 수 있겠다'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어릴 적부터 그림 그리기와 붓글씨, 만들기 등 손기술이 남달라 솟대를 보는 순간, '직접 솟대를 만들고 싶다'는 강렬한 욕망이 솟았다는 것.

처음엔 솟대를 만들어 자랑도 할 겸 주변 사람에게 선물했다. 한결같이 '예술작품'이라며 감탄했다. 용기를 얻었다. 그리고 본격적으로 '나만의 솟대 만들기'에 나섰다.

우리나라 전통문화유산의 한 분야인 '솟대'. 전문 작가들도 많다. 하지만 이 교사의 작품은 단순히 긴 장대 끝에 나무로 깎은 새를 매달아 세운 솟대 모양과는 다르다. 솟대를 현대 장식 미술과 접목해 '표정이 살아있는 솟대' 만들기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이 교사는 "관광지나 시중에서 파는 솟대는 모양과 표정이 거의 비슷한 모습이라 좀 더 예술적인 작품으로 승화시키고 싶다"고 한다. 우리나라 솟대의 모습은 지역에 따라 오리, 기러기, 갈매기, 따오기, 왜가리, 까치, 까마귀 등의 새 모습이다.

솟대는 새를 머리, 목, 몸통 등 삼등분한 모양인데다 받침도 나무토막으로 만든다. 특히 마을 앞에 서 있는 솟대의 모습은 대부분 새의 머리가 수평으로 앞만 바라보는 모양이다. 이러한 기존작품의 모습은 만들기는 쉬우나 멋스러움이 덜하다는 데 착안한다. 그는 전통의 답습을 거부한다. 이 교사의 작품은 솟대에 매달린 오리가 머리를 하늘로 치들고, 뒤돌아보고, 아래로 숙이고 있는 등 다양한 몸짓이다. 새들의 살아있는 모습 그대로를 표현하고 있다. 한결 부드럽고 자연스러운 모습이다. 하지만 그는 "솟대에 매달린 새의 머리 방향을 바꾸는 '인식의 전환'을 하는 데만 10년이 걸렸다"고 털어놓는다. 그만큼 전통이란 것은 바꾸기 힘든다. 우리나라 전통문화유산이라 무엇인가 다르게 표현하면 큰일 나는 줄 알았다.

그는 주로 향나무와 대나무로 솟대를 만든다. 향나무를 삶아 껍질을 벗겨 자연미를 살리고 강에서 채집한 자연석을 받침대로 사용한다. 솟대와 돌과의 접목을 토대로 작품을 만들고 있다. 솟대를 깎는 일은 물론 돌 받침대를 만드는 일은 아무나 흉내 내기 어렵다. 기계공학과 출신인데다 남다른 손재주가 있어 가능하다.

"처음엔 단순히 호기심과 재미로 솟대 만들기를 시작했다. 그러나 작품 수가 늘어나 수백 점이 되면서 주변의 권유로 몇 차례 개인 작품전을 했다"고 한다. 첫 개인전은 2009년 2월 울산 다운재 갤러리에서 '마음의 고향'이란 주제로 소품 130여 점을 선보였다. 정식으로 솟대 작가의 반열에 오르면서 용기가 생겼다. 5개월 후 대구 수성아트피아에서 두 번째 개인전을 펼쳤다. 2011년 1월엔 대백프라자 갤러리에서 25㎝ 정도의 소품에서부터 2m가 넘는 대작까지 다양한 크기의 작품 80여 점의 작품으로 세 번째 개인전을 했다. 전문가들로부터 '전통적인 솟대를 현대적 조형예술품으로 승화시켰다'는 호평을 받았다.

현재 150여 작품이 그의 연구실을 지키고 있다. 그는 솟대를 배우고 싶어하는 제자들에게 기술 전수도 하고 있다. 몇 해 전 본격적인 작품활동을 하기 위해 청도 이서면에 작업실 겸 갤러리를 마련했다. 주말과 휴일엔 주로 청도 작업실에서 지낸다. 부인 채태희(하빈초교 교사) 씨 등 가족도 이 교사의 솟대 작품 제작을 돕는다. 방학 때와 휴일에는 함께 배낭을 메고 솟대 받침대용 돌 채집에 나선다. "앞으로 돌'나무 등의 천연소재를 이용해 자연스러움을 추구하며 솟대에 희'노'애'락을 표현하고자 노력할 것"이라고 포부를 밝힌다.

사진'박노익 선임기자 noik@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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