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매일춘추] 콘셉트의 재발견

몇 해 전 백화점 첫 바겐세일 행사에 쓰일 멋진 광고를 만들기 위해 전 직원들은 머리를 싸매고 회의에 회의를 거듭했습니다. 직원들 간의 회의도 때로는 격렬하게, 때로는 지루하게 이어졌습니다. 하지만 큰 진전은 없었습니다. 언제나 그렇듯 콘셉트가 문제였습니다. 모든 업무가 그러하지만, 특별히 광고에서는 좋은 콘셉트가 곧 좋은 광고의 보증수표와 다름없는데 도통 '이거다!'하는 콘셉트를 찾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그사이 마감일은 코앞으로 다가오고 마음이 급하니 좋은 콘셉트가 떠오를 리가 만무했습니다.

하지만 콘셉트는 하늘의 계시처럼 내려오지도, 철저한 논리와 이론으로 탄생하지도 않았습니다. 모든 문제는 신입사원이 핸드폰 카메라로 아무렇게 찍어온 사진 한 장으로 해결되어 버렸습니다. 그 사진은 백 발이 성성한 노인 한 분이 보드복과 스노보드를 들고 지나가는 모습을 담고 있었습니다. 웃어넘길 수도 있었던 그 사진에서 우리는 나이를 넘어선 한 사람의 꿈과 인생의 즐거움을 발견했고, 그 콘셉트를 단초로 삼아서 광고의 제작은 일사천리로 이루어질 수 있었습니다.

백화점은 흔히 상품만 파는 곳이라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그리고 럭셔리해야 하며 스타일리시해야 한다는 의무적인 고정관념에 사로 잡혀있기 십상입니다. 업계에 오랫동안 몸담고 있는 사람일수록 그런 고정관념에서 빠져나오기가 도리어 더 어려운가 봅니다. '그 노인은 보드복을 구매하며 어떤 생각을 했을까?''아마도 멋진 영상 한 편을 머릿속에 그리며 눈밭을 누비는 자신을 상상하지 않았을까?' 이런 유쾌한 상상이 저의 고정관념을 깨뜨렸습니다. 백화점은 상품만 파는 것이 아니라 그와 동시에 그들에게 꿈을 팔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백화점은 소비자에게 판매자(Seller) 그 이상이 되어야 합니다. 광고제작을 맡은 저와 직원들은 백화점 역시 소비자와 꿈을 이어주는 드림플래너(Dream Planner)가 되어야 한다는 통찰을 그 사진을 통해 얻은 것입니다.

단지 광고를 제작할 때뿐 아니라 창의성을 요구하는 많은 상황들 가운데서는 콘셉트가 결국 승부를 가릅니다. 그래서 이런 일이 있은 후 콘셉트에 대해 곰곰이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사전적 의미를 따져보면 콘셉트는 '개념'이라는 뜻으로 풀이됩니다. 국어사전은 '어떠한 사물이나 현상에 대한 일반적인 지식'이라고 말합니다. 좋은 콘셉트의 도출은 사전에도 있는 아주 간단한 일입니다. 멀리 있는 것을 찾아가는 '모험'이 아닌 항상 일상에서 즐길 수 있는 '산책'과 같은 것. 일상을 관찰하는 마음의 여유와 대상을 바라보는 애정 어린 시선, 그것이 바로 좋은 콘셉트를 만나기 위한 첫 번째 준비가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최정숙 대구YWCA 회장'대구백화점 상무 jschoi812@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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