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사설] 대법원의 '부부 강간죄' 판결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16일 남편이 아내를 위협해 강제로 성관계를 맺을 경우 '부부 강간죄'가 성립된다고 판결했다. 이는 파탄에 이른 남편과 아내 사이에 강간을 인정한 과거 판례를 넘어 결혼 생활을 유지하고 있는 상태에서 나온 첫 '부부 강간죄' 판결이다.

정상적인 부부 사이에도 강간죄가 성립된다는 이 판결은 폭행이나 협박으로 성(性)을 강요해서는 안 된다는 선을 긋고 있다. 공공의 거리에서 발생하는 성범죄만큼이나 부부도 폭력을 앞세워 성을 강제하면 위법임을 분명히 한 것이다.

이로써 43년 전에 내려진 '실질적 부부 관계가 인정되면 배우자 강간죄가 성립하지 않는다'는 대법원 판례는 사망 선고를 받았다. '부부'라는 현실이 여성의 인격권과 행복추구권, 그리고 성적 자기결정권까지 무시해서는 안 된다는 판결이다. 지극히 사적인 관계인 부부를 둘러싼 법의 재해석이자, 비록 부부 관계라 하더라도 강간이라는 범죄를 면책받을 수 없음을 밝힌 판결이다.

지난 1993년 안전과 평안함 그리고 친밀함을 제공하는 궁극적인 장소여야 할 가정에서 공포와 섬뜩함을 동반하는 폭력이 발생할 때 공권력이 적극 개입할 수 있도록 한 가정폭력방지법의 발효에 이은 2013년 부부 강간죄 판결로 범죄와 섹스 그리고 자유 개념이 집 안팎에서 다르지 않음을 보여주었다.

하지만 대법원은 부부 사이에 민법상의 동거 의무가 있으며 여기에 배우자와 성생활을 함께할 의무가 포함돼 있다는 점은 받아들였다. 말하자면 결혼 생활이 정서적 사생활을 공유하고, 자유롭게 사랑할 수 있다는 원칙은 항상 유효하다는 것이다. 혼인이 개인의 성적 자기결정권 포기를 의미하지 않음을 분명히 한 이번 판결은 역설적으로 성숙하고 평등하며, 평화롭고 인간적인 부부 관계의 중요성을 더 느끼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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