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비용 줄인 작은 결혼식, 지루함도 줄였다

불황의 시대, 신세대 결혼 신풍속도

지난달 대구 한 고교 강당에서 콘서트 형식으로 열린 정휴준 씨의 결혼식. 김태형기자
지난달 대구 한 고교 강당에서 콘서트 형식으로 열린 정휴준 씨의 결혼식. 김태형기자
초청 가수 대신 신랑이 자신의 결혼식 축가를 부르는 풍경은 호응이 좋아 점차 확산되는 추세다. 독자 박효근 씨 제공
초청 가수 대신 신랑이 자신의 결혼식 축가를 부르는 풍경은 호응이 좋아 점차 확산되는 추세다. 독자 박효근 씨 제공

'삼포세대'라는 신조어가 유행이다. 치솟는 물가'취업난 등 경제 상황이 좋지 않아 연애'결혼'출산을 포기하는 요즘 젊은 세대를 뜻한다. '허니문 푸어'(honeymoon poor), '웨딩 푸어'(wedding poor)라는 말도 등장했다. 막대한 비용 때문에 결혼과 동시에 빚을 떠안게 되는 이들을 의미한다. 미혼 남성의 40.4%, 미혼 여성의 19.4%가 경제적 이유로 결혼을 하지 않는다는 조사 통계(보건복지부)가 나올 만하다.

그렇다고 '웨딩마치'가 어느 날 갑자기 중단될 리는 없는 법. 주말이면 어김없이 수많은 커플이 '검은 머리가 파뿌리가 되도록 사랑하겠다'고 맹세하고, 예식장 예약조차 원하는 날에 잡기가 쉽지 않다. 하지만 트렌드는 조금씩 변화하고 있다. 가장 뚜렷하게 나타나고 있는 경향은 '작은 결혼'이다.

◆'간소' '생략'이 키워드

결혼 비용 목록 중 가장 먼저 '살생부'에 오른 건 예물이다. 억대 예물을 장만하는 경우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지만 10쌍 중 8쌍은 300만~500만원 수준에서 마련한다는 게 업계의 전언. 인생에 한 번뿐이라는 이유로 다소의 거품을 감수했던 관행에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는 것이다.

지난 2월 결혼한 송종섭(35) 씨는 신부와 함께 18K 커플 반지만 맞췄다. 예물 시계 역시 면세점에서 50만원대의 제품을 선택했다. 기본만 갖춘 셈이다. 송 씨는 "앞서 결혼한 친구들도 예물은 다들 간소하게 했다"며 "굳이 비싼 제품을 골라야 할 이유가 없는 것 같다"고 했다.

대구 교동시장에서 귀금속매장을 운영하고 있는 유병완(50) 씨는 "예전에는 다이아몬드'루비'사파이어 등 보석 종류별로 몇 세트씩 장만하고는 했지만 요즘은 세트라 할 것도 없이 반지'귀고리'목걸이만 준비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며 "예물 간소화 분위기가 갈수록 뚜렷해지고 있다"고 귀띔했다.

필수 코스처럼 여겨졌던 스튜디오 촬영도 점차 줄어드는 추세다. 촬영은 하더라도 결혼식 당일 식전에 하곤 한다. 야외 촬영은 드문 케이스라고 한다. 남들과 똑같은 포즈를 취하는 '어색한' 사진이 식상해진 까닭이다.

요즘 유행은 자신들만의 웨딩 스토리를 담은 '데이트 스냅'이다. 연애 과정의 추억이 어린 곳에서 평상복을 입고 찍거나 결혼 준비 과정 등을 자연스럽게 촬영한다. 비용은 많이 추가되지만 신혼여행까지 사진업체가 동행하는 경우도 있다.

대구에서 ㅇ웨딩을 운영하는 손근수(43) 대표는 "스튜디오 촬영을 하는 대신 스냅 촬영을 하면 드레스 대여료'메이크업 비용이 빠져 전체 금액이 많이 줄어든다"며 "30페이지 정도의 앨범 1권이 70만원 정도"라고 전했다.

모바일 청첩장'개량 한복이 경제적 부담이 적고 간편하다는 이유로 인기를 끌면서 인쇄 업계나 한복 업계에도 '작은 결혼'의 불똥이 튀고 있지만 예외인 곳도 있다. 결혼식의 피날레인 신혼여행을 다루는 여행업계다.

요즘 떠오르는 '핫 플레이스'는 유럽과 하와이. 지난해까지는 전체 신혼여행객의 10% 정도에 불과했지만 올해는 30% 정도를 차지할 정도로 비중이 높아졌다. 비용은 1주일 정도의 여정에 하와이는 250만~300만원, 유럽은 350만원 이상이다. 과거 인기 지역이었던 발리'푸껫'세부 등은 시들해졌고, 괌'사이판 등은 프라이버시가 보장되는 '풀 빌라'가 없는 탓에 거의 찾지 않는다고 한다. ㅅ여행사 서보익(51) 대표는 "유럽'하와이에서 촬영한 TV프로그램이 많아진 영향"이라며 "다른 웨딩산업보다는 상대적으로 경기 영향을 덜 받는 것 같다"고 했다.

◆이벤트는 진화한다

실용주의는 결혼식의 풍경도 많이 바꿔놓았다. 지난해 연말 하와이로 신혼여행을 다녀왔다는 박효근(30) 씨는 결혼식에서 '셀프 축가'를 불렀다. 곡명은 가수 정엽의 '나싱 베터'(nothing better). 연애 시절 사진과 웨딩 촬영 사진이 담긴 3분가량의 영상편지를 배경으로 애틋한 '세레나데'가 흐르자 신부의 눈가에는 행복한 눈물이 맺혔다.

박 씨는 "친구 결혼식에서 축가를 자주 불렀는데 아내가 우리 결혼식에서도 노래하는 게 당연하다고 해서 마이크를 잡았다"며 "하객으로 오신 분들이 '신랑 잘한다'고 칭찬해주셔서 기분이 좋았다"고 자랑했다.

'지루한 결혼식'의 상징이었던 판박이 주례사도 갈수록 보기 힘들 전망이다. 학창 시절 은사나 직장 상사를 주례 선생님으로 모시는 대신 혼주들이 직접 나서서 덕담을 들려주는 경우가 증가하고 있는 것이다.

지난 3월 아들을 장가보낸 김유연(55) 씨는 결혼식에 앞선 상견례 자리에서 주례를 따로 두지 않기로 사돈과 의기투합했다. 김 씨는 '가정을 잘 지키고 신랑을 잘 섬기며 사회에 꼭 필요한 사람이 되라'고 며느리에게 당부했고, 사돈은 '청춘을 헛되이 보내지 말고 열심히 살아야 한다'는 덕담과 함께 축가를 불러줬다. 김 씨는 "결혼식이 끝난 뒤 하객들로부터 보기 좋았다는 말씀을 많이 들었다"며 "인생과 사회 선배로서 솔직한 이야기를 들려주는 게 아이들에게도 의미 있는 일이 아니겠느냐"고 했다.

결혼식 이벤트의 진화는 점입가경이다. 스킨스쿠버 동호회 회원들의 '수중 결혼식', 신랑'신부'하객이 모두 가면을 쓰고 무도회처럼 올리는 '가면 결혼식', 예비 부부의 연애담을 바탕으로 하객 앞에서 신랑'신부가 공연을 하는 '무대 결혼식' 등도 종종 눈에 띈다.

정휴준(36'대구가톨릭대 음대 산학협력교수) 씨 부부는 지난달 대구 한 고교 강당에서 콘서트 형식의 결혼식을 올렸다. 하객들을 위해서 클래식 특별공연을 펼치며 예식을 축제의 장으로 만들었다. "고비용의 결혼 문화를 저비용과 나눔의 문화로 바꿔보자는 생각에서 아이디어를 냈다"는 정 씨는 축의금과 축하 물품은 복지재단 등에 기부하고 신혼여행은 양로원 봉사활동으로 대신했다.

◆그래도 바뀌지 않은 것들

대구경북은 보수적인 색채가 강해 결혼 문화가 아직은 무난한 쪽을 선호하는 편이다. 주5일제가 되면서 서울에서는 평일 결혼식이 낯설지 않을 정도가 됐지만 지역에서는 토요일과 일요일이 단연 인기다.

지역 웨딩업계에 따르면 '바람달'에 대한 미신도 뿌리 깊다. 음력 2월에 결혼하면 바람이 난다는 설 때문에 이 기간에는 결혼식이 거의 열리지 않는다. 특히 다른 지방의 경우 결혼식이 연중 고르게 치러지지만 지역에서는 봄'가을 선호가 뚜렷해 여름이 시작되는 6월부터는 완전한 비수기로 접어든다. 4년마다 돌아오는 음력 윤달에도 결혼식이 실종되는 현상이 빚어진다.

ㅇ웨딩 손근수 대표는 "6월부터 8월 사이에 결혼하면 전체 예식 비용을 20%가량 할인받을 수 있다"며 "금요일 오후 결혼식의 경우 보통 친지 위주의 단출한 형태가 많은데 실속을 원하는 현명한 신혼부부라면 한 번쯤 고려해 볼 만하다"고 소개했다.

결혼 비용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주택 마련도 아직까지 큰 변화가 없다는 게 부동산업계의 설명이다. 대부분의 신혼부부들이 30평형대의 아파트를 찾는다고 한다. 이유로는 크게 세 가지 정도가 꼽힌다. ▷결혼하기 전까지 부모님과 함께 사는 경우가 많아 갑자기 소형 아파트에서 생활하는 게 어색하다 ▷맞벌이 부부가 대부분이라서 중대형 아파트 대출에 대한 부담이 적다 ▷신혼부부들이 좋아하는 소형 새 아파트 찾기가 힘들다 등이다. 대구 동구 ㅅ공인중개사무소의 윤종순(48) 씨는 "전세 물건이 귀해서 기다리다 결국 구입하는 경우도 꽤 있다"며 "매매나 전세의 명의를 신부 앞으로 하는 경우도 점점 늘고 있다"고 전했다.

실제로 신랑 몫으로 치부돼 왔던 신혼집 마련 자금에 여성들이 돈을 보태는 사례는 증가 추세다. 보건복지부'보건사회연구원이 지난달 발표한 '2012년도 전국 결혼 및 출산 동향조사'에 따르면 남성의 경우 3년 전 조사보다 결혼비용이 245만원 늘어났지만 여성은 1천963만원 증가했다. 전세금 상승으로 남성과 여성이 공동으로 돈을 모아 집을 마련하고 있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한편 이 조사에서 2010~2012년에 결혼한 신혼부부의 경우 남녀 1인당 평균 결혼비용은 남성 7천545만원, 여성 5천226만원이었다.

이상헌기자 davai@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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