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장인 기린 사위 둘 '700년 가연'…가창 박곡서당 '강선계'

옥산 전·아산 장·밀양 박씨 매년 시제·묘사 함께 봉행, 동문수학 하며

19일 강선계에 참석한 옥산 전씨, 아산 장씨, 밀양 박씨 세 가문의 계원 100여 명이 달성군 가창면 상원리 박곡서당 추모비 앞에서 기념촬영을 했다.
19일 강선계에 참석한 옥산 전씨, 아산 장씨, 밀양 박씨 세 가문의 계원 100여 명이 달성군 가창면 상원리 박곡서당 추모비 앞에서 기념촬영을 했다.
전봉진 강선계 회장, 장봉채 강선계 고문, 박만동 강선계 전 회장.
전봉진 강선계 회장, 장봉채 강선계 고문, 박만동 강선계 전 회장.

두 사위가 장인을 기리는 마음에서 출발한 인연이 세 가문의 후손들에 의해 700여 년 세월 동안 이어지고 있어 '세상 인정 바뀌는 게 출렁이는 파도'와 같은 요즘 세태에 귀감이 되고 있다.

19일 대구시 달성군 가창면 상원리 박곡서당(樸谷書堂)에선 옥산 전(全)씨, 아산 장(蔣)씨, 밀양 박(朴) 씨 세 가문 후손 100여 명이 '강선계'(講先契)를 열었다. 강선계는 가문의 인연을 잇고 선조를 추모하며 유지를 받든다는 취지로 매년 음력 4월 10일 세 가문이 번갈아 개최하고 있다. 올해는 유사 가문인 옥산 전씨가 조선 초 예조판서를 지낸 전백영 선생의 추모 장소이자 후학들의 강학소인 박곡서당에서 계를 열었다.

세 가문의 인연은 700여 년 전 고려 말로 거슬러 올라간다. 고려 말 판밀직사를 지낸 전의룡(全義龍)의 첫째와 둘째 딸이 각각 동래부사 장흥부(蔣興膚)와 대사헌 박해(朴해)에게 시집을 가면서 장인과 사위의 인연을 맺고 교의를 두텁게 쌓아갔다. 특히 세 가문은 경산시 인근에 거주한 공통점이 있던 터에 두 사위 집안은 전의룡 사후에도 현재의 경산시 남천면에 있는 그의 묘소를 찾아 한 해도 빠짐없이 시제(時祭)를 올렸다. 세 가문은 이후 왕래를 대물림하면서 한 번 맺은 혈연을 다져갔고, 선대의 가풍을 이어 동문수학하면서 조선조에 많은 인재를 배출했다.

세 집안끼리의 인연은 국난의 시기였던 일제강점기에 더 도드라졌다. 1923년 가문의 인연을 더욱 활성화하기 위해 '전(全) 밀직공, 장(蔣) 부사공, 박(朴) 대사헌공의 업적을 기리고 세의를 돈독히 함을 목적으로 하는' 강선계를 조직하고 규약 16조를 만들었다.

올해 91년째를 맞은 강선계는 당시 박 대사헌공의 후손들이 종중 땅 1천여㎡을 희사해 계금으로 충당하자, 전씨와 장씨 후손들이 연이어 비용을 추렴해 오늘의 가연(佳緣)에 이르게 된 것.

전봉진(77) 강선계 회장은 "강선계는 세 분 선조 모두 청백리로서 시대의 사표가 된 행적과 아름다운 인연이 세월이 흘러도 잊히지 않도록 선조의 뜻을 강론하고 우의를 돈독히 한다는 의미"라고 설명했다.

이런 결의의 결과로 세 가문은 조선조를 통틀어 걸출한 인재들을 많이 배출했다. 옥산 전씨는 조선 건국공신인 전백영(1345~1412)과 대구 최초로 연경서원을 건립해 성리학 학풍을 일으킨 전경창을, 아산 장씨는 청송부사 장문도와 임진왜란 때 경남 밀양 일대에서 북진하는 왜구의 선봉을 꺾은 의병장 장문익을, 밀양 박씨는 조선 성종 때 빼어난 학덕으로 임금에게 호를 하사받은 홍문관 수찬인 청풍당 박영손 등을 키워냈다.

장봉채(86) 강선계 고문은 "먼 시대의 조상을 함께 섬겨온 세 가문의 문중문화는 역사적으로도 전무후무한 일로 기록된 것"이라고 했다.

박만동(82) 전 강선계 회장은 "인연을 가볍게 여기는 요즘 세태에 강선계는 타의 모범이 될 모임"이라며 "앞으로 친목도모뿐 아니라 후손들의 장학사업 등 사회공헌활동에도 적극 참여하는 방안을 논의할 것"이라고 밝혔다. 우문기기자 pody2@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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