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심장박동 불규칙·가슴 답답함…
# 억압된 감정이 신체증상으로
# 50, 60대 어머니 세대에 많아
# 환자 절반 정도 우울증 동반
울화병(화병)은 우울하고 답답해 생기는 마음의 화(火)라고 말한다. 한의학에선 억울하고 분한 마음을 삭이지 못해 생기는 병적인 증상이라고 표현한다. 질투, 노여움 등의 감정이 마음속에서 북받쳐 일어나는 답답한 느낌이며, 결국 몸에 열감이 많은 상태로 진행하게 된다. 단순한 우울증과 달리 신체 증상을 동반한다. 입맛이 떨어지고 잠을 자지 못하는 증상 외에도 숨쉬기가 힘들고 심장박동이 불규칙하거나 빨라지며, 온몸에 통증이 있고 명치 끝에 뭔가 걸린 느낌 등이 있다.
◆참고 참다가 터지는 병
대구시 북구 대현동에 사는 주부 최순분(가명'57) 씨는 늘 어깨가 아파서 자주 병원을 다녔지만 도무지 낫지 않았다. 용하다는 병원 이곳저곳을 다니다가 실패하고 결국 정신건강의학과를 찾았다. 만성적인 어깨 통증도 문제였지만 가슴이 답답하고 속에서 화가 치밀어 오르며 성격이 공격적으로 바뀌었다고 했다.
사연은 이러했다. '남편은 성실한 사람이었다. 하지만 원칙주의자이면서 어떤 문제가 생기면 우유부단해서 결정을 내리지 못했다. 고민을 들어줄 상대가 돼주지 못했다. 특히 집안의 장손으로 시댁과 관련된 일은 거절하지 못했고, 결국 떠맡은 일은 내 차지가 됐다. 시댁의 관혼상제에 일일이 관심을 보여야 했고, 시동생들을 부모처럼 키우다시피 돌봐주었다. 그러나 칭찬이나 보답은커녕 힘들게 참고 견뎌왔던 일들이 이제는 당연히 해야 하는 일이 돼버렸다. 불만을 얘기하면 '이전에는 해놓고 왜 요즘은 하지 않느냐'는 비난만 돌아왔다. 이렇게 힘이 드는데도 시댁일은 끝없이 계속될 것 같다. 퇴직한 남편은 보기만 해도 화가 치민다. 남은 노후를 어떻게 보낼지 정말 답답하기만 하다.'
최순분 씨의 이야기는 울화병의 전형적인 예다. '화병'은 원래 민간에서 전통적으로 사용돼왔던 병명 중 하나다. 말 그대로 분노가 조절되지 않는 병으로 가슴속에서 뭔가 치밀어 오른다는 느낌이 가장 전형적인 증상이다.
울화병은 유교문화나 남성우월주의 등 사회문화적 틀에 적응하기 위해 여성들이 분노, 절망, 억울감 등의 감정반응을 장기간 억제해서 발병하는 것으로 이해된다. 이를 단적으로 표현한 말이 바로 '귀머거리 3년, 장님 3년, 벙어리 3년'이다. 기원이 이렇다 보니 화병은 50, 60대 여성에게 많고, 특히 사회경제적 수준이 낮고 보수적인 계층에서 많이 생긴다.
◆우울증이나 분노장애와도 달라
울화병을 우울증의 한 유형으로 보는 학자도 있지만, 울화병과 우울증은 서로 다른 특성을 가지고 있다고 보는 견해가 더 많다. 특히 한국인의 우울증 양상이 신체적 증상도 강하게 갖고 있기 때문에 울화병과 우울증이 뒤섞인 경우도 있고, 실제 연구에서도 울화병 환자의 절반 정도는 우울증을 갖고 있다.
그러나 우울증 환자가 주로 침울하게 가라앉아 있고, 대답을 잘 안 하며, 정신적인 증상 특히 우울감을 주로 호소하는 데 비해 울화병 환자는 치밀어 오르며 적극적으로 자신의 증상을 표현하고 특히 분노와 억울함을 많이 호소하는 특성을 갖고 있다. 대개 울화병이나 우울증이 만성화되면서 서로 겹치며, 증상도 더 심하게 표현되는 것을 볼 수 있다.
울화병은 우울증처럼 주변 환경의 스트레스가 원인이지만 한국 특유의 문화적 배경이 상당한 영향을 준다. 우울증은 개인이 감당하기 힘든 스트레스 탓에 세로토닌 등 뇌의 신경전달물질에 이상이 생기고, 결국 우울감'불면'식욕 저하'의욕 상실 등 증상으로 나타난다. 울화병도 스트레스 탓에 우울 증상이 생기는 것은 마찬가지다. 다만 분노와 같은 감정이 사회적으로 용납되지 않기 때문에 환자가 감정을 억누르고 내면화하면서 억압된 감정이 신체 증상으로 나타나게 된다.
경북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이승재 교수는 "분노 조절을 잘 못하는, 즉 분노장애 환자를 많이 접하는데 단순히 '화를 낸다'는 증상에만 초점을 맞춰서 최근 울화병이라는 용어를 지나치게 남발한다는 우려가 있다"고 했다.
집이 못산다고 부모에게 공격적인 행동을 보이는 학생, 자신을 무시한다며 '묻지마 폭행(폭언)'을 해대는 청년들을 울화병으로 진단해서는 곤란하다는 것. 이승재 교수는 "울화병을 호소하는 우리 어머니 세대들은 다른 사람을 배려하고 희생한 인고의 시간이 있었다. 그리고 참으려고 아무리 노력해도 더 이상은 못 참겠다는 인간적인 한계가 느껴진다. 이런 점에서 울화병은 다른 분노장애와 반드시 다르게 이해해야 한다"고 했다.
도움말=경북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이승재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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