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등산 뒤 짜장면…사제지간 통했어요"

SNS 학교폭력예방위 회원 대구 경암중학교 앞산 동행

SNS 페이스북을 통해 친분을 쌓은
SNS 페이스북을 통해 친분을 쌓은 '대한민국 SNS 학교폭력 자살예방위원회' 회원들이 18일 대구 앞산 큰골입구에서 사제동행 등산에 앞서 '학교폭력 반대' 스카프를 펼쳐보이고 있다. 이채근기자 mincho@msnet.co.kr

18일 오전 9시쯤 대구 남구 봉덕동 앞산 공영주차장. 등산복을 차려입은 어른 30여 명이 모여 있었다. 이들은 '대한민국 SNS 학교폭력 자살예방위원회' 회원이다. 이들의 직업은 교사, 청소년 상담사, 학부모, 교수, 의사 등 다양하다. 이들은 특별한 사제(師弟)동행 등산을 하기 위해 모였다. 이날 회원들이 동행할 학생들은 대구 경암중학교 학생 9명. 한 명 한 명이 모두 일일 선생님이 돼 학생들과 앞산 정상까지 사제동행을 떠나는 것이다.

◆교사, 선'후배, 친구 모두 '산행 동지'=앞산 사제동행이 시작된 것은 지난 2005년 4월. 첫 출발은 대구 경암중 이명우(51) 교사와 5, 6명의 학생으로만 이뤄졌다. 이 교사는 "여고에서만 쭉 근무하다가 9년 전 처음으로 남녀 공학 학교로 왔는데 여학생과의 소통 방법은 어느 정도 익혔지만 남학생과는 도통 어떻게 대화를 해야 할지 몰랐다"며 "교실을 벗어나 대화를 해보자는 생각에 무작정 학생들에게 앞산으로 떠나자고 제안했다"고 말했다.

처음에는 선생님의 제안에 선뜻 산행에 나서겠다는 학생들이 많지 않았다. 한 달에 한 번이지만 학원이며 친구들과 약속 등 산행을 피할 핑계들이 수두룩했다. 무엇보다 선생님과의 교실 바깥 외출이 뭔가 어색하게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결국 이 교사는 '산행 후 짜장면'이라는 묘안을 냈고, 호기심으로 산행에 동참했던 5, 6명의 학생은 어느덧 15~20명으로 늘었다. 이날 10번째 산행 길에 오른다는 이재현(16'대구 달서구 죽전동) 군은 "학교에서는 선생님과 대화를 나눌 시간이 거의 없었고 그러다 보니 선생님과 가까이하기 어려웠다"며 "처음에는 선생님의 설득에 산을 올랐지만 이제는 밖에서 선생님과 친구들을 만나는 일이 즐거워 스스로 산행에 동참한다"고 했다.

선생님과의 학교 밖 나들이는 평소 학교에서 하지 못한 모든 것들이 '무장해제'되는 순간이다. 귀걸이, 팔찌, 밀짚모자 등으로 한껏 치장한 채 개성을 뽐내도 된다. 앞서거니 뒤서거니 산을 오르며 숨겨뒀던 운동실력을 뽐내기도 한다. 학교에서는 데면데면했던 친구, 후배, 선배들도 이날만은 앞산을 오르는 동지가 된다.

이날 남학생을 제치고 가장 먼저 정상에 오른 학생은 하승연(15'대구 달서구 감삼동) 양. 하 양은 "매년 여름 아버지와 설악산 등반을 했던 실력을 오늘 드디어 뽐냈다"며 뿌듯해했다. 개그맨이 꿈이라는 김동원(15'대구 달서구 감삼동) 군은 이날 개그 실력을 한껏 드러내 산행길을 웃음바다로 만들었다.

◆학교폭력, 청소년 자살 막는 '예방주사'=앞산 사제동행이 인기몰이를 하자 올해는 예년보다 판을 크게 벌였다. 올 3월 이 교사는 평소 SNS 페이스북을 통해 친분을 쌓았던 사람들과 '대한민국 SNS 학교폭력 자살예방위원회'를 결성했다. 꼬리에 꼬리를 물고 연결된 회원 수만 현재 1천300여 명에 달한다. 회원들은 산에 오르면서 학생들의 고민 상담사가 되어 주고, 자장면 값 1만원도 지원한다. 두 번째 산행이라는 섬유업체 대표 김욱주(59) 씨는 "학생들과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평소 이해하기 어려웠던 청소년들의 행동, 생각들도 이해가 된다"며 "학창시절 선생님과 이런 추억거리를 만들지 못했다는 점이 아쉽다"고 했다.

이날 산행에는 우동기 대구시교육감도 동참했다. 우 교육감은 "학생과 선생님의 바깥나들이는 서로 벽을 없애고 가깝게 다가가는 데 많은 도움이 된다"며 "앞으로 이런 사제동행이 제도화될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했다.

이 교사는 학생들과의 앞산 산행이 최근 문제가 되고 있는 학교폭력, 청소년 자살을 해결할 수 있는 '예방주사'가 될 수 있다고 믿는다. 그는 "학교라는 울타리를 벗어나 학생들의 이야기에 귀 기울여주고 공감해주는 것만으로 많은 청소년 문제를 방지할 수 있다"며 "앞으로도 학생들과 꾸준히 산행 길을 오르며 학생들의 친구 같은 선생님이 되고 싶다"고 전했다.

신선화기자 freshgirl@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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