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무명칼럼] 대국민 사기극은 안 된다

시장, 군수, 구청장 등 기초단체장과 기초의원 등 지방선거 입후보자에 대한 정당 공천 배제 공약이 대국민 사기극으로 끝날 것이라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굳이 대국민 사기극이라는 '듣기 거북한' 이름을 붙인 것은 지난 연말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여야 없이 정치권이 일제히 나서서 약속해 놓고, 선거가 끝나자 확 달라진 태도 때문이다. 대선이 끝난 지 벌써 5개월인데 진도는 한 치도 나가지 못했다. 이런 식의 허송세월이라면 내년 6월 지방선거에서 적용이 어려워질 수도 있다. 이미 '물 건너갔다'는 이야기도 파다하다. 심지어 기초단체장까지 둘 다는 어렵고 기초의원만 풀자는 '꼼수' 같은 이야기도 들린다. 지난 10년간 지방 사람들이 똘똘 뭉쳐, 대선 공약으로 만들어 넣고, 그것을 현실화시키려고 얼마나 많은 노력을 했는데 이럴 수가 있나?

정말 대국민 사기극으로 결론이 날까? 그럴 공산이 없지는 않다.

시간표를 따져보자. 선거 120일 전 예비 후보 등록이 시작되므로 내년 1월 말까지는 모든 정비가 마무리되어야 한다. 또한 정당 공천을 배제하면 원칙적으로 비례대표 의원이 있을 수 없다. 의원 정수에 변화 요인이 생긴다. 의원 정수를 그대로 한다면 지역구 선출 의원 수를 늘려야 한다. 아니면 비례대표제를 존치시키기 위한 제도적 장치가 별도로 마련돼야 한다. 선거구 조정도 필요해 보인다. 6월 임시국회에서 여야가 대책 기구를 구성하고 머리를 맞대도 물리적으로 될까 말까 한 일이다.

이런 중차대한 일에 대해 서울 정치권에서는 어느 누구도 걱정하는 기색이 없다. 지방의 눈으로 보면 조짐이 영 이상하다. 여야 합의 불발, 대책 논의 부족, 법 규정 미비 등 되는 소리 안 되는 소리 다 동원해서 '불가' 판정이 내려지지는 않을까 걱정이다. 대선 공약이라도 현실적 여건을 봐가며 실행에 옮겨야 한다고 정당 공천 배제 약속 불이행론을 펴는 사람도 물론 있다. 하지만 이 공약은 돈이 드는 게 아니다. 경제민주화나 복지 확대 등은 수조 원에서 수십조 원이 들어가야 하지만 정당 공천 배제는 그냥 하면 된다. 지방자치제도가 부활한 1995년 선거에서는 원래 없었던 것을 2005년에 정치권이 슬그머니 집어넣은 것이므로 다시 원위치만 시키면 될 일이다.

더욱이 서울 정치권에서는 "정당 공천을 하지 않으면 지방 토호들이 기초의회를 장악한다"는 어처구니없는 이야기도 나돈다고 한다. 지방 사람들은 눈도, 귀도 없나? 서울 사람들 눈에는 지방 사람들이 어떻게 보이기에. 멀리 갈 것도 없다. 지난해 총선에서 정당 공천한 사람들도 별수가 없다는 걸 잘 보여주지 않았는가? 그런데도 무슨 지방 걱정을? 자기들 앞가림이나 먼저 하지 않고. 차라리 잡고 있는 이권을 놓치기 싫다고 솔직하게 이야기해라. 멱살잡이가 더 익숙한 정치권이 어찌 된 일인지 이 사안에 대해서만큼은 죽이 착착 맞는지 쓴웃음을 자아내게 한다. 여야를 불문하고 밥그릇 챙기기와 직결돼 있다는 것 외에는 달리 설명할 도리가 없다.

이런 가운데 여야 여성 국회의원들이 집단으로 "정당 공천 배제가 여성의 정치 참여를 줄일 우려가 있다"며 반대 목소리를 냈다. 물론 정당 공천 배제로 여성의 기초의회 진출 비율이 낮아질 가능성도 없지는 않다. 하지만 정당 공천 배제가 지방 사람들의 숙원이었다는 점을 고려하면 그런 이야기를 집단으로 나서서 떠들 것은 아니었다. 차라리 정당 공천 배제에 따른 여성의 정치 참여 확대 보완책 마련을 촉구하는 정도가 적당했다. 정당 공천 배제에 대한 지방의 요구는 어제오늘의 것이 아니다. 그들이 그 절절한 사연을 알고서도 집단행동을 했는지도 궁금하다.

지금이라도 정치권은 당당하게 나서라. 시간이 없는 만큼 서둘러야 한다. 혹시나 (국회의원들이 기득권을 버리는 일) 했다가 역시나(절대로 밥그릇이나 영향력이 줄어드는 일은 하지 않는다)로 끝내서는 안 될 일이다.

대통령 이야기도 빼놓을 수 없다. 정당 공천 배제는 박근혜 대통령의 정치 분야 대표 공약이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국민들은 이번에는 바뀌겠구나 생각을 하게 된 것이다. 그런데 취임 후 대통령의 입에서 정당 공천 배제에 대한 추가 언급은 없었다. 박 대통령의 침묵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국회의 업무 태만 탓만 해서는 안 된다. 아직은 대통령이 마음먹으면 할 수 있다. 명분도 있다.

최신 기사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