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안상학의 시와 함께] 벼랑의 일각수

# 벼랑의 일각수 -김충규(1965~2012)

벼랑에서 일각수가 기이한 울음을 흘립니다

목숨 있는 것들의 최후가 왜 죽음이어야 하는지

죽지 않고 사라질 수는 없을까요

팽팽하게 잡아당긴 화살을 거두세요

일각수의 뿔이 다른 세상을 향하여

신호를 뿜어내고 있는 듯 환하게 빛납니다

죽음 직전이 처연히 찬란하다면

그건 일각수의 불행이 아니라 사냥꾼의 불행입니다

일각수의 시체를 메고 내려가다 실족할 수 있습니다

우리 눈앞에 문득 다시 나타난 일각수입니다

숲을 쑤시고 다니다가 스스로 벼랑으로 간 일각수입니다

선택은 일각수가 하게 내버려 두세요

죽여 놓고 노루나 사슴이었다고 둘러댈 건가요

그 말을 누가 믿겠습니까

일각수가 스스로 벼랑 아래 몸을 던진다면

그건 일각수의 운명입니다

다만 목숨 있는 것들의 최후가 죽음이 아닐 수만 있다면

좋겠네요 일각수는 우리의 금지된 일탈이니까요

-격월간 《시를 사랑하는 사람들》(2011년 9, 10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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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행복하게 살기 위해 삶의 전부를 소모한다. 그런 의미에서 삶은 어쩌면 덜 행복하거나 불행하다. 그러나 진정 불행한 것은 다른 데 있다. 바로 죽음이다. 덜 행복하거나 불행한 삶조차도 더 이상 지속할 수 없는 어떤 지점, 바로 죽음이다. 사람들은 대체로 행복 추구와 죽음에 대한 인식을 늘 유념하며 살아간다. 생각을 넓혀보면 이 두 가지가 인류 진화의 양대 축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이 시는 인간의 삶과 죽음을 일각수(유니콘)에 빗대어 풀고 있다. 그러나 가만 보면 죽음이 자연스럽지가 않다. 일각수처럼 잔꾀에 당하거나 스스로를 내던지는 목숨에 대한 의문을 제시하고 있다. 자연사가 드문 야만의 시대에 대한 일갈이다.

위의 생몰년에서 알 수 있듯이 김충규 시인은 젊은 나이에 죽음을 맞이했다. 이 시처럼 그도 다만 사라질 수만은 없었던 것이다.

안상학<시인·artandong@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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