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매일춘추] 원서 족

'행정'은 보편적이고 공정한 가치를 추구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특정인을 겨냥해서 법이나 제도를 만들지는 않는다. 행정인도 보편적인 사고로 행정을 집행할 수밖에 없다. 예술은 어떤가? 예술은 언제나 '다름'이 요구된다. 따라서 예술인은 항상 창의적 사고를 꿈꿀 수밖에 없다. 행정인과 예술인은 사고에 있어 매우 대척점에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동안 대구시는 민선 자치제 이후에 타 도시보다 예술인의 사기진작 차원에서 대구문화예술회관과 오페라하우스, 시립미술관과 몇몇 구'군의 문화예술회관 수장자리에 예술인들을 채용했다.

이 같은 취지가 예술인의 사기진작보다는 심사에서 탈락한 응모자들이 구설에 휘말리고, 임명된 사람도 무슨 무슨 방법으로 채용되었다는 등 구설에 휘말려 상처를 받는다. 자기 일에 충실한 다른 다수의 예술인까지도 집단으로 명예가 실추되는 일이 잦았다. 간혹 일부 예술인들은 이런저런 자리에 스펙을 쌓아 이들 기관으로 진출하려는 소위 '염불에는 관심이 없고 잿밥에만 관심이 있다'라는 옛 속담이 실감 나게 하는 행동을 해왔다.

예술인이 무대나 작업실을 외면하고 공석인 행정기관의 자리마다 원서를 제출하며 줄을 대는 소위 '원서 족'들이 판을 친다. 공모도 하기 전에 '누구누구는 어느 자리도 간다더라''어느 자리는 누가 내정되었다더라'라는 소문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퍼지는 가하며, 상대보다 불리하면 조그만한 약점을 잡아 사정기관에 투서를 넣는 것도 다반사였다. 예술인이 행정기관에 와서 수장 자리를 한다는 것은 적어도 10년 정도의 기간이 주어지면 모를까? 지금과 같이 길어야 5년 정도로는 자신의 뜻을 펼치기는 매우 어렵다. 대부분은 리허설만하다가 그만두는 경우를 무수히 보아왔다.

예술단체장을 채용하는 행정기관은 그 사람이 어느 예술분야에서 구체적으로 얼마만큼 기여했는가를 엄정한 잣대로 판단하고, 많은 예술인들에게 존경을 받는 사람을 채용하는 자세 또한 필요하다. 오페라축제 10회, 뮤지컬축제 7회라고 자랑하고 있지만 아직 배급작품이 아닌 지역 예술인들이 자체적으로 제작한 작품이 전국을 돌며 장기공연하고, 해외에 진출하여 지속적으로 호응을 받는 사례를 보지 못했다. 불멸의 무수한 밤을 지새우며 어려운 형편에도 작은 작품 하나를 만들어 서울로, 해외로 진출하려는 감독들, 무대에서 끊임없이 기량 연마를 위하여 노력하는 공연예술가들, 작업실에서 새로운 창작을 위하여 고민하는 화가 및 문인들이 많아질 때 진정한 대구예술의 발전이 있지 않을까? 또 이곳이 진정한 예술인들의 자리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시인 gm3419@daegu.g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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